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5:48:58

영성군(이천계)

1. 개요2. 생애3. 이교주와의 동일인 문제4. 가족 관계

[clearfix]

1. 개요

李天桂
(? ~ 1376)

조선의 추존 대군인 완창대군 이자흥 혹은 추존왕 환조 이자춘의 아들이다. 태조 이성계 사촌 또는 이복형이다.

2. 생애

부친 이자흥 천호가 되었으나 일찍 사망하고 그의 어린 아들인 이천계(이교주)가 너무 어려 천호 직위를 이어받지 못하자 이자춘이 이천계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돌려주기로 하고 일단 천호직을 임시적으로 세습하였으며 이자춘 원나라 다루가치직도 자연스럽게 세습받았다. 그러나 이천계가 어른이 되어서도 천호직과 다루가치직을 돌려주지 않았다.[1] # 이자춘이 죽자 이천계가 자신이 적장자임을 내세워 이성계를 모해하여 난을 일으키려다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천계는 이자춘, 이성계 부자보다 일찍 고려에 투항해서 관직을 얻었지만 권세가와 다투다가 투옥되어 처형당했다.

이천계는 환조 이자춘의 아들 자격으로 1872년(고종 9년)에 영성대군(永城大君)으로 봉군되었다.

3. 이교주와의 동일인 문제

태조실록》의 기사에는 이자흥의 아들이 이교주(李咬住)로 적혀있다. 하지만 또다른 기사에는 이교주와 이천계가 동일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그래서 이천계와 이교주가 과연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린다.

저 문제는 당대는 물론, 500여 년이 지난 고종 때에도 논쟁이 됐던 모양이다. 1900년( 광무 4년)에 완순군 이재완이 이자춘의 능인 정릉(定陵)의 비문과 옛 선원보략을 근거로 #, 이천계가 이자흥의 소생임이 판명되었으니 작호에서 대자를 빼고 그냥 영성군(永城君)으로 봉하기를 고종에게 청해 허락받았다. # 이로 보아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이교주와 이천계를 동일인으로 판단한 듯하다. 현재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이천계를 완창대군의 아들로 보는 듯하다. # 이자춘 사망 당시 세워진 이자춘신도비에도 이천계의 이름은 누락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천계가 이자흥의 아들인 이교주와 별개의 인물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그에 따르면 이천계는 이성계의 배다른 형제 중 한 명 즉 이성계의 이복형이며, 이자흥의 아들 이교주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양자로 보내주었다는 견해이다.

4. 가족 관계



[1]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원계, 이천계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성계 계통의 정통성을 위한 윤색으로 보고 있다. [2] 성준(成俊)의 모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