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colcolor=#000000,#dcdcdc> 발생일 | 1990년 8월 2일 |
유형 | 피랍 |
발생 위치 |
[[쿠웨이트| ]][[틀:국기| ]][[틀:국기| ]] 쿠웨이트 시티 |
기종 | B747-136 |
운영사 | 영국항공 |
기체 등록번호 | G-AWND |
출발지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런던 히스로 공항 |
1차 경유지 |
[[쿠웨이트| ]][[틀:국기| ]][[틀:국기| ]] 쿠웨이트 국제공항 |
2차 경유지 |
[[인도| ]][[틀:국기| ]][[틀:국기| ]] 첸나이 국제공항 |
도착지 |
[[말레이시아| ]][[틀:국기| ]][[틀:국기| ]]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
탑승인원 | 승객: 367명 |
승무원: 18명 | |
사망자 | 승객: 1명 |
생존자 | 승객: 366명 |
승무원: 1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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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5년 전,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찍힌 사고기의 모습. |
1. 개요
1990년 8월 2일 런던을 출발해 쿠웨이트 시티, 마드라스(現 첸나이)를 경유해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영국항공 소속 B 747기가 이라크군에 의해 피랍된 사건이다.2. 사고 진행
런던에서 APU 문제로 지연된 149편이 쿠웨이트 시티로 가던 중 불안정한 지역 정세 때문에 조종사들은 쿠웨이트 공항 관제탑과 쿠웨이트 시티에서 이륙한 복편 148편 L-1011과 교신해 공항에 착륙가능에 대한 여부를 확인받았다. 한참 149편이 쿠웨이트 시티를 향해 비행중 이던 1990년 8월 1일 늦은 밤 이라크는 쿠웨이트 침공을 시작한다.1990년 오전 1시 쿠웨이트 시티에 착륙한 149편은 30분 뒤 마드라스로의 비행을 준비했으나 공항이 2시간 동안 폐쇄되었고 그사이 이라크군이 활주로와 관제탑을 폭격했다. 오전 4시 30분 공항에 도착한 이라크군에 의해 승객과 승무원 전원은 공항 근처 호텔로 가게 되었다. 한편 이라크군은 747기를 폭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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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된 149편의 잔해 |
이라크군에 의해 피랍된 영국인 승객과 승무원들은 호텔로 옮겨졌고 다른 국적의 승객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에 갇혔다. 일부 승객과 승무원들은 이송 과정에서 이라크군에 의해 계속해서 성추행을 당했으며, 스튜어디스 한 명이 이라크군에게 강간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영국항공 측이 이에 항의하자 이라크군은 해당 군인을 즉시 체포해서 즉결처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승객과 승무원들이 탈출에 성공했다. 또 쿠웨이트 국적의 한 승객이 이라크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열흘 후 탑승객들은 군수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8월 말 에드워드 히스와 사담 후세인이 협상했고 여성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인질 반환이 시작되었으며 유일한 탑승객 사망자인 쿠웨이트인의 시신도 이때 반환되었다. 인질 반환 협상 중에도 이라크군은 남성 탑승객들을 고기방패로 삼았으나 사망자는 없었고, 12월 마지막 인질들이 반환되면서 기나긴 피랍은 끝났다.
3. 사고 이후
탑승객들은 영국항공에 소송을 걸었으며 일부 프랑스인 승객들은 250만 파운드의 보상을 받았다.4. 기타
해당 사건을 극화한 작품 Blackbox 149가 있다.전쟁이 일어난 쿠웨이트에 영국항공 149편이 착륙한 것은 영국 정부가 쿠웨이트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스파이들을 입국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훗날 언론인 스티븐 데이비스(Stephen Davis) 등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수상이었던 마거릿 대처는 비행기의 착륙 허가는 이라크의 침공 이전이었다면서 이러한 음모론을 일축했고 그 후임 존 메이저도 보수당 내각은 군사요원들이 당시 영국항공에 탑승하고 있다는 정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