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여현구(呂鉉九) |
생몰 | 1889년 ~ 1920년 11월 5일 |
출생지 |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후리 |
사망지 | 평양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여현구는 1889년생이며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후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9일 밤 읍후리에 소재한 자신의 집에서 강원보, 박영서 등과 논의한 뒤 3월 11일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어 태극기를 만들고, 뜻을 같이할 사람을 모으기로 했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선언서를 장연읍 남문 성벽에 붙여 독립선언을 적극적으로 알렸다.이윽고 3월 11일 오후 1시경,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200여 명의 군중이 시장으로 모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경찰이 주도자를 체포하자 군중은 경찰서로 가서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경찰은 시장을 강제로 폐쇄하고, 단속을 한층 강화하는 등 탄압에 나섰다. 그후 체포된 여현구는 1919년 4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상고했지만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가된 뒤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1월 5일 평양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여현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