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에밀리 드 브르퇴유 뒤 샤틀레 Emilie de Breteuil du Chatel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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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06년
12월 17일 프랑스 왕국 파리 |
사망 |
1749년
9월 10일 로렌 뤼네빌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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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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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근대의 과학자. 근대과학에서 최초의 여성과학자로 평가받는다.2. 생애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지 덕분에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다. 루이 14세의 수석 비서였던 아버지 루이 니콜라스 드 토넬리에 뒤 브르퇴유는 에밀리의 뛰어난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본 반면, 어머니 가브리엘 앤 드 프라우리(Gabrielle-Anne de Froulay)는 극렬히 반대했다. 딸을 수녀원에 보내려 했던 어머니는 예절 수업보다 수학, 과학, 문학에 더 열정을 쏟는 딸이 결혼을 못하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1725년, 18살의 에밀리는 당시 육군 장성이었던 34살의 샤틀레 후작과 결혼한다. 에밀리의 아버지는 사위가 딸에게 공부를 계속할 자유를 포함하여 멋진 인생을 보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의 남편은 대부분의 시간을 군대에서 보냈기 때문에 오랜 기간을 부인과 떨어져 살았다. 결혼 후 5년 동안 샤틀레 후작부인은 남편이 통치자로 있는 스뮈르 앙 오수아에서 살면서 딸과 아들을 각각 1726년과 1727년에 낳았고 이후 한 아이를 더 낳았는데, 부인으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 에밀리는 파리 상류사회에서 자유를 즐긴다. 리슐리외, 모페르튀, 클레로(Alexis Claude Clairaut, 1713년 5월 13일 – 1765년 5월 17일), 볼테르 등 여러 연인과 더불어... 에밀리의 연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볼테르일 것이다.
참고자료 : https://blog.naver.com/kbs4547/221363629532
3. 업적
뉴턴의 역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운동에너지에 대한 연구 : 당시에는 에너지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으므로 "운동하는 물체가 갖는 힘"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네덜란드 출신 과학자 스흐라베잔데(Willem 's Gravesande)의 실험결과에 대해 설득력 있는 결론을 제시하였다.
열, 빛, 불의 성질에 대한 연구 : 태양빛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충분한 실험을 한다면 서로 다른 색깔의 빛에서 발열의 힘이 뚜렷이 구분됨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여 훗날 적외선을 발견하는 데 주춧돌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