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야스오는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곤 했다. 그나마 완곡하게는 그의 존재가 어쩌다 범한 판단 실수라고 했고, 심하게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고도 했다. 대다수의 고통이 그렇듯이 이러한 평가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숨어 있었다. 야스오 어머니의 삶 속에 훗날 야스오의 아버지가 될 남자가 가을바람처럼 찾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던 과부였다. 그리고 바로 그 외로운 계절처럼, 아이오니아의 겨울이 이불이 되어 이 작은 가족을 덮어 주기 전 그는 사라져 버렸다. 야스오의 이부형제인 요네는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우며 성실한 아이로 야스오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지만,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야스오를 놀리면 요네가 곁에 서서 동생을 지켰다. 그러나 야스오에게는 인내심이 없는 대신 결단력이 있었다. 요네가 마을의 유명한 검술 학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하자 어린 야스오는 형을 따라가 거센 장맛비를 맞으며 무작정 밖에서 기다렸다. 선생들은 결국 마음이 약해져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동급생들에게는 눈엣가시였겠지만 야스오는 타고난 재능을 보였고, 마침내 전설적인 바람의 검술의 마지막 전수자인 수마 원로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수마는 이내 야스오의 잠재력을 알아보았으나, 충동적인 제자였던 야스오는 억제할 수 없는 회오리바람처럼 수마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요네는 동생에게 오만함을 버리라고 간곡하게 당부하면서 학교의 가장 큰 교훈인 겸손을 상징하는 단풍나무 씨앗을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야스오는 수마 원로의 제자이자 동시에 스승의 개인 호위무사라는 직책을 받아들였다. 녹서스 침공의 소식이 학교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나보리의 플레시디엄에서 일어난 위대한 저항에 고무되었고, 곧 마을은 젊은이들이 흘린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야스오는 대의를 위해 검을 뽑기를 열망했으나, 심지어 동급생들과 요네가 모두 전투에 동원되었을 때에도 그는 남아서 원로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침공은 전쟁으로 불거졌다. 마침내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던 어느 날 밤, 녹서스군의 행진을 알리는 북소리가 바로 옆 계곡에서 들려왔다. 야스오는 어리석게도 자신이 대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서 명을 어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는 전장을 찾을 수 없었다. 녹서스군과 아이오니아군의 시신 수백 구가 있을 뿐이었다. 처참하고 끔찍한 사태가, 검 한 자루로는 막을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없었다. 그로 인해 땅까지도 오염된 듯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든 야스오는 다음 날 학교로 돌아왔으나, 그를 맞이한 것은 칼을 겨누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수마 원로는 죽었고, 야스오는 직무 유기뿐만 아니라 살인의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진범을 처벌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혐의가 사실로 굳어지리라는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학생들과 싸우며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제 전쟁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아이오니아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야스오는 진범에게 인도할 실마리를 찾아 헤맸다. 그러는 와중에도 야스오는 그를 오해하는 동료들이 끊임없이 추적해 왔기 때문에, 그들과 맞서 싸우고 해를 입힐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야스오가 기꺼이 치르고자 하는 대가였으나, 마침내 가장 두려워하던 이가 야스오를 찾아내고 말았다. 바로 형 요네였다. 예법에 따라 그들은 서로를 탐색하며 빙빙 돌았다. 형제의 칼이 마침내 만나자 야스오의 바람 마법이 요네의 쌍검을 압도했다. 번쩍이는 한 번의 섬광에 야스오는 형을 쓰러뜨렸다. 야스오는 용서를 구하며 빌었으나, 요네의 마지막 말은 수마 원로를 죽인 것은 바람의 검술이었으며, 그 검술을 아는 사람은 야스오 한 명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잠잠해져, 용서의 말을 건넬 틈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 스승도 형도 모두 잃은 야스오는 칼집 없는 검처럼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산속을 방랑하며 전쟁과 상실의 고통을 술로 달랬다. 그러다 눈 속에서 그는 녹서스군에서 도망친 탈리야라는 슈리마 출신의 젊은 바위술사를 만났다. 그녀에게서 야스오는 뜻밖에도 학생의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서는 더욱 뜻밖에도 스승의 모습을 보았다. 야스오는 마치 바람으로 돌을 조각하듯, 수마 원로의 가르침을 이제야 진심으로 깨우치며 탈리야에게 원소 마법의 길을 전수했다. 그들의 세계는 신이 되어 새로 등극한 슈리마의 황제에 대한 소문으로 변화를 맞았다. 각자의 길로 헤어지면서 야스오는 탈리야에게 소중한 단풍나무 씨앗을 전해 주었다. 씨앗이 품고 있는 교훈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탈리야가 고향인 사막의 모래로 돌아가자, 야스오는 실수를 바로잡고 스승을 살해한 진범을 꼭 찾아내겠다고 다짐한 채 자신의 고향 마을로 길을 나섰다. 공회당의 차디찬 돌벽 안에서 수마 원로의 죽음이 사고였음이 밝혀졌다. 녹서스 출신의 추방자 리븐이 저지른 실수였으며, 그녀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스오는 스승을 버리고 떠났던 자신을, 결국 요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잘못된 선택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1] 야스오는 결국 웨흘레에서 열리는 영혼의 꽃 축제로 향했다. 그러나 축제의 치유 의식으로 마음이 편해지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악마 같은 존재, 고통과 후회를 먹고 살아가는 '아자카나'와 마주쳤다. 그때 가면을 쓴 자가 난입해 정의에 찬 분노로 아자카나를 쓰러뜨렸다. 그자는 야스오가 아는 자, 바로 요네였다. 요네의 복수를 기다리던 야스오는 요네가 씁쓸한 축복의 말만 전하며 자신을 보내 주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땅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 야스오는 속죄의 마음과 죄책감으로 자유로운 바람을 억누르며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
2. 파멸을 향한 길
어렸을 때 형은 내게 물었다. '바람은 도망가는 걸까, 아니면 쫓아가는 걸까?' 오랫동안 나는 도망가기를 선택했다. 죽음이 등 뒤에 쫓아왔기 때문이다. 추적자들은 한때 나를 친구라고 불렀었다. 이제는 칼을 겨누고 나를 살인자라고 부른다. 한 명씩 그들은 나를 찾아냈다. 첫 번째는 아이오니아에서 유명한 힘의 검사였다. 우리가 어렸을 때 그가 검을 단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나무를 둘로 쪼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바람을 쪼갤 수는 없었다. 두 번째는 속도와 우아함을 겸비한 전사였다. 민첩하고 교활한 그녀는 숲 속의 영리한 여우보다 빨랐다. 그러나 바람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세 번째는 연민의 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만심 강한 아이에 불과했던 내게 인내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나의 조언자. 나의 친구. 나의 형.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가장 강한 바람조차도 마침내는 잠잠해지는 법. 그러나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실을 쫓아갈 것이다. 바람이 내 검을 인도하도록, 그리고 나를 내 손의 피에 대한 책임이 있는 진짜 살인범에게로 이끌도록. |
3. 칼집 없는 검[2]
검은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검사에게 죽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쉽다. 진짜 어려운 것은 죽이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동생의 첫 검술 훈련은 동생이 검을 잡자마자 검날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장면이다. 회랑에서는 동생을 과거의 검성들에 비견하는 속삭임들이 들렸다. 그렇지만 야스오가 성장하고 기술이 늘어가면서 그의 자의식 또한 커졌다. 동생은 충동적이고 자만심이 강했다. 스승들의 가르침을 무시했으며 인내하는 법이라고는 전혀 몰랐다. 동생이 정도에서 심하게 벗어날 것이 두려웠던 나는 동생에게 경고를 전하기보다는 그의 명예에 호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야스오에게 단풍나무 씨앗을 건넸다. 우리 학교의 최고의 교훈이지만 동생은 오래 전에 잊어버린 것 같은 가치인 ‘겸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씨앗은 그냥 씨앗일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법. 야스오는 씨앗을 받았고, 다음날 수마 원로의 제자가 되기로 서약했다. 나는 동생이 진정한 검사에게 요구되는 인내와 덕목을 배우게 되리라는 높은 희망을 품었다. 헛된 희망이었다. 오늘 야스오가 자신이 보호하기로 맹세했던 바로 그분을 살해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동생은 조국과 친구들과 자기 자신을 배신했다. 내가 씨앗을 주지 않았더라도 그가 이 어둠의 길로 쓸려 내려왔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 모든 자문은 쓸데없는 일이다. 나는 내 어깨에 짊어진 이 임무를 감당해야만 한다. 내일 동이 틀 때 나는 칼집 없는 검, 내 동생 야스오를 잡으러 떠날 것이다. |
4. 부러진 검날의 고백
리븐(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문서 참고 바람.5. 형제지간
울음소리를 낸 것은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키가 큰 나무 앞에서 내게 등진 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울음소리는 점차 훌쩍거리는 소리와 눈물 젖은 딸꾹질 소리로 변했다. 나는 숲 가장자리에 멈춰 아래쪽의 그늘진 도로를 돌아봤다. 무자비한 한낮의 햇볕은 아이가 있는 초원으로 밝게 쏟아져 내렸다. 아이는 다친 것 같지 않았다. 공터는 탁 트여 있어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 네 도움은 필요 없어. 계속 갈 길이나 가. 한동안 들려오지 않던 머릿속 목소리가 뚜렷해졌다. 나는 돌아섰지만 깊은 한숨 뒤 다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자 결국 몸을 돌렸다. 검 세 자루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마른 잔가지를 밟아 인기척을 냈다. 그 소리에 아이가 몸을 흠칫했다. "테오 형,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재빨리 사과하는 아이의 말소리가 얼굴을 문지르는 소매에 묻혔다. 마침내 날 본 아이는 그대로 굳었다. 아이는 급히 물러서다가 나무에 등을 퍽 부딪쳤다. "에마이가 형제단에 돈을 냈어요." 아이가 말을 더듬었다. "저도 길에서 안 놀았고요." 형제단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히 손이 검으로 향했다. 날 쳐다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밭은 숨소리로 바뀌었다. 나를 뭔가 갈취하러 온 나보리 형제단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널 범죄자라고 생각하는군. 난 아이를 겁주지 않기 위해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아니, 난 나보리 형제단이 아니야. 길에서 소리를 들었는데, 누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아이는 앞에 있는 낯선 이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축축한 뺨을 다시 소매로 닦았다. "그게 누구인지 아니?" 천천히 고개를 젓던 아이는 결국 사실대로 고했다. "저였어요. 그… 그냥 갖고 놀려고 했는데." 아이는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로 인정하며 위를 가리켰다. 높은 나뭇가지에 낡은 축제용 연이 걸려 있었다. 비단으로 된 연 꼬리가 실바람에 나풀거렸다. "테오 형 연이거든요." 아이의 눈이 다시 촉촉해졌다. 아이는 흙과 나무껍질로 거뭇해진 수액투성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올라가 보려고 했는데 나무가 너무 높아요. 테오 형이 엄청 화낼 거예요. 연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거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형제들은 자주 그런 말을 하지." 나는 중얼거렸다. 아이 앞에는 헤집어진 흙더미가 작게 쌓여 있었다. 무릎을 꿇고 윗부분을 털어 내자 안에서 새롭게 싹이 튼 나무 열매가 나타났다. "에마이가 나무술사거든요. 저도 배우는 중이고요. 그래서 혹시…"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 창피한 듯 고개를 떨궜다. 묘목을 자라게 하는 것도 한나절로는 모자랐을 것이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노력은 가상하구나." 아이의 시선이 세로로 파인 내 견갑에 머물렀다. "우리 마을 무늬가 아니네요." 아이가 경계심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옆 계곡에 있는 마을의 무늬도 아니고요." "난 웨흘레에 가는 중이다. 녹서스인들이 닦은 길 덕분에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지. 돌은 좀 딱딱하지만 말이야." 웃으려고 했지만 녹서스가 남긴 것을 썼다는 생각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저 좀 도와주실래요?" 나는 높은 가지에 살짝 걸려 있는 연을 올려다봤다. "나도 나무에 올라 본 지 꽤 됐는데, 꼬마야." "제 이름은 요압이에요."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입 안에서 내 이름이 맴돌았다. 치욕스러운 것이 된 지 너무 오래된 이름이었다. 왜 이러시나.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불렸으면서. "야스오다." 난 아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 그늘에서 벗어나 햇빛이 비치는 공터로 발을 옮겼다. 뜨겁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초원 끝자락에 남아 있는 작은 기류를 느꼈다. 작은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닿는 머리카락을 밀어냈다. "그냥 바람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무술은 아무 쓸모도 없어요." 연과 자신이 심은 나무 씨앗을 차례로 본 요압이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예전에 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 원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죽었대요. 그 원로의 제자도 바람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데, 에마이가 그 사람은 위험하댔어요. 자기 스승을 죽였다나…" 나는 옆에 있는 검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검을 뽑으며 마법을 집중했다. 바람이 검 주위를 빙빙 돌며 점점 더 강한 소용돌이가 형성됐다. 흙과 낙엽이 칼날 위에서 춤을 췄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회오리를 완성한 나는 손목을 튕겨 바람을 날려 보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무에 명중하자 나무줄기가 충격에 덜덜 떨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정령이 솟아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나뭇가지를 흔들던 힘이 마침내 연까지 전달됐다. 바람이 하늘 위로 돌아가며 가볍게 떠오른 형형색색의 비단은 이내 쭉 뻗은 내 손으로 천천히 떨어졌다. 아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가 급히 닫혔다. 두려움이 돌아왔다. "아저씨가 그 제자예요?" 아이오니아에서 널 모르는 자는 없어. 요압이 숲길 쪽을 바라봤다. 누군가 날 잡으러 오길 바라는지도 몰랐다. "도망쳤어요?" 아이의 속삭임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풀려났어요? 그러니까, 용서받은 거예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용서받을 수는 없지." 다른 사실은 애써 잊으며 머릿속 목소리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죽였으면서… 나는 숨을 깊고 고르게 쉬며 기억들이 떠오르지 않도록 등에 닿는 시원한 바람과 손에 쥔 연에 온 감각을 집중했다. 요압은 잠시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요압이 다른 질문을 하려고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숲에서 나타난 금속 물질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긴장하며 검을 들었지만 그곳에는 요압과 똑 닮았지만 조금 더 큰 아이가 긴 밧줄에 묶인 작은 농기구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무기를 내렸지만 이미 초원에는 두려움과 경계심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반응하기엔 너무 빠르고, 멈추기엔 너무 느리군. 아이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내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요압의 형 테오가 우리를 바라봤다. 테오는 숲 가장자리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요압." 테오가 부르자 고분고분 달려가던 요압은 농기구와 밧줄을 보고는 발을 멈췄다. 나는 미풍을 끌어당기며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그건 뭐야, 형?" 마침내 깨달은 요압이 화를 냈다. "내가 연을 가져갈 줄 알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고 있었던 게 당연했다. 형은 동생이 뭘 할지 항상 알고 있지. "그래, 넌 내가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잖아." 테오가 계속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요압은 뒤를 힐끗 보더니 몸을 기울여 테오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테오의 눈이 잠시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멸시로 날카로워졌다. "에마이가 밥 먹으래." 테오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요압은 팔을 잡아당겨 테오의 걸음을 늦추더니 테오의 귀에 다시 뭔가를 속삭였다. 나는 말이 실려 오는 바람을 잠재워 다음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아니, 저 사람은 안돼. '시리'잖아." 시리. 마침내 주변의 바람이 잦아들며 그 단어가 목구멍에 맴돌았다. 시리는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외부인이나 탐욕이 불러오는 불운이었다. 형을 졸졸 따라다니는 성가신 녀석… 내리쬐는 햇빛이 옆에 찬 검을 뜨겁게 달궜다. 그것은 평생을 들어온 단어였다. 네 도움은 필요 없어. 계속 갈 길이나 가. 나는 마음을 다잡고 형제 쪽으로 걸어갔다. "형 말 들어라, 꼬마야." 난 귀하디 귀한 비단 연을 요압에게 건네며 말했다. "형들은 모르는 게 없거든." 그리고 누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앞쪽에 놓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
6. 구 설정
6.1. 구 단문 배경
불굴의 의지를 지닌 검객 야스오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바람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적을 쓰러뜨린다. 야스오는 젊었던 시절 자부심이 너무 강한 탓에 많은 것을 잃었다. 자신의 지위, 스승, 급기야는 친형까지. 누명으로 명예가 땅에 떨어져 범죄자처럼 뒤를 쫓기는 야스오는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 바람이 검을 인도하는 대로 조국 땅을 배회한다. |
6.2. 구 장문 배경
불굴의 의지를 지닌 검객 야스오는 바람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적들을 쓰러뜨린다. 위엄 있는 풍채와 날렵한 검술을 겸비한 그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그러나 기구하게도 야스오는 더러운 누명을 뒤집어썼고 온 세상이 순식간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제 무사에게 주어진 것은 처절한 싸움의 나날뿐... 생존을 위해,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야스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름난 검술 도장에서도 야스오의 재능은 단연 눈에 띄었다. 언제나 남다른 실력을 자랑했던 그는 전설적인 바람의 검술을 완벽히 습득하고 구사했는데 이는 당대의 어떤 검객도 결코 성취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야스오가 위대한 검성으로 거듭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녹서스의 아이오니아 침공 앞에서 송두리째 뒤바뀌고 말았다. 자신의 검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야스오가 아이오니아 원로의 호위무사라는 본인의 직무를 등한시하고 전선의 난투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전선에서 돌아왔을 땐 원로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암살당한 후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명예를 우선시했던 야스오는 기꺼이 자수하여 자신의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고자 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그에게 내려진 혐의는 직무유기가 아니라 암살죄였다. 내가 반역죄를 지었다고? 원로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고통받던 그였지만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야스오를 믿어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직접 범인을 밝혀내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는 자유의 몸이 될 필요가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문파에 검을 겨누었는데 이는 아이오니아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행위였다. 그러나 진범을 밝혀내고 벌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든 모두 감수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몇 년간, 야스오는 혈혈단신으로 진범을 추적하며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실마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면서 그는 한때 아군이었던 무사들에게 끝없이 쫓기거나 마지못해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며 점점 진실에 가까워져 가고 있던 그의 앞에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무사가 나타났다. 가장 두려운 적수였던 그 사내의 이름은 요네… 야스오의 친형이었다. 결투의 예법은 형제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두 무사는 머리를 숙여 서로에게 예를 표했고 지체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달빛 아래의 정적 속에서 그들은 말없이 자신의 혈육을 바라보았다. 원을 그리며 상대의 빈틈을 노리던 두 사람은 마침내 검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네조차도 야스오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단칼에 형을 쓰러뜨린 동생은 곧바로 형을 향해 뛰어갔다. 손에서 검을 떨어뜨린 채 피를 흘리며 가쁜 숨을 쉬고 있는 형을 마주하자 야스오의 가슴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었다. 분노였을까? 슬픔이었을까? 야스오는 어떻게 혈육을 의심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형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원로가 바람의 검술에 당했는데 너 말고 또 누가 바람의 검술을 다룰 수 있겠느냐?" 요네의 답을 들은 야스오는 비로소 자신의 검술이 모든 오해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생은 형에게 자신의 결백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야스오의 앞을 가리는 가운데 형의 주검은 동생의 품속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머지않아 다른 무사들이 추적해 올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형을 묻은 야스오는 차오르는 슬픔을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요네의 전언은 야스오의 방랑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었다. 진범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손에 넣은 동생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형의 무덤을 돌아보았다. 굳은 맹세 속에서, 길을 재촉하는 야스오의 등 뒤로 다시 한 번 바람이 일었다. "검의 이야기는 피로 쓰여지지." - 야스오, 용서받지 못한 자 |
[1]
이 다음부터는 2020년 7월 25일
요네 공개 이후 추가된 부분이다. 이전에는 "아직까지 야스오는 방랑을 이어가고 있다. 속죄의 마음과 죄책감으로 자유로운 바람을 억누르며."로 내용이 끝났다.
[2]
요네의 독백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