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65년 11월 13일 바하마 나소 인근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2. SS 야머스 캐슬
1925년 5월 1일 건조된 증기선 에반젤린(Evangeline)호는 이듬해 2월 12일에 첫 항해를 시작해 1954년까지 보스턴과 뉴욕, 노바스코샤의 야머스를 오고 갔다. 내부엔 음악실과 도서관, 댄싱룸, 흡연실, 유리로 장식된 갑판이 있는 등 호화 여객선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군에 징집되어 군용 화물선으로 쓰이기도 했다.그렇게 1954년까지 쓰인 에반젤린호는 이후 라이베리아의 선박회사로 팔려가 야머스 캐슬(Yarmouth Castle)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렇게 1963년까지 운용됐다. 그리고 파나마의 한 선박회사에 팔리게 됐다. 그곳에선 마이애미와 나소를 오고갔다. 007 살인번호의 나소 항구 씬에서 배경으로 살짝 출연도 했다.
다만 이렇게 회사와 나라가 바뀌면서도 리모델링은 의외로 얼마 없었는데, 리모델링 하면서 무게가 증가하면 배가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무로 만들어진 갑판이나 장식 등은 그대로 놔두었다.
3. 사고 당시
1965년 11월 13일, 야머스 캐슬은 평상시처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바하마의 나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당시 승객 376명과 승무원 176명이 탑승했었다. 선장은 35세의 바이턴 부치나스(Byton Voutsinas)였다.그러던 중 새벽, 마이애미로부터 동쪽으로 192km, 나소로부터 96km 떨어진 지점에서, 보일러실과 너무 가까워 덥다는 얘기가 나오던 610번 방을 창고로 쓰고 있었는데, 매트리스를 전구에 너무 가까이 둔 바람에 불이 붙어 화재가 시작됐다. 당시 방은 매트리스와 페인트통으로 가득찬 상태였다. 이 둘은 불이 엄청 잘 붙는다. 거기다 스프링클러 시스템이 설치되지 않아 불이 더 크게 번졌다. 새벽 1시경, 큰 화상을 입은 승객들이 뛰쳐나왔다. 승무원들은 승객을 치료하면서 배에 불이 난 사실을 알게됐다. 승무원들은 부치나스 선장에게 화재 소식을 알렸고, 선장은 화재 알람을 울리라 했다. 하지만 알람 시스템은 이미 불 때문에 전선이 다 타버린 상태였고 결국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승무원과 승객들은 곳곳을 골라다니며 문을 두드리거나 소리쳐 화재 소식을 알렸다.
화재 알람이 울리지 않으면서 스프링클러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불은 배 내부의 환기 시스템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나무 갑판과 장식, 나무 패널, 곳곳에 있던 캔버스들을 잡아먹으며 불은 더 거세졌다. 구명정들에도 불이 붙어 몇몇은 타고 내려갈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멀쩡한 구명정 마저 내리는 줄에 페인트가 너무 칠해져서 윈치에 걸려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소방호스를 꺼내 불을 끄자니 물이 충분치 않고, 라디오 시스템도 불타버려 다른 배에 SOS신호도 보낼 수 없는 상황. 승객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구명조끼를 메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지나가던 다른 선박 핀펄프(Finnpulp)호와 바하마스타(Bahama Sar)호가 화재를 목격했다. 바하마스타 측에선 미국 해안 구조대에 연락을 해서 불이 난 사실을 알렸고 구명정을 내려 승객, 바다에 뛰어내린 승객들을 구조했다. 핀펄프 측도 구명정을 내려 승객들을 구조했다. 몇몇 승무원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기에 바빴다. 핀펄프측에서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 사람들을 처음으로 구조했을 때, 거기에 탔던 사람 중에는 선장도 있었다. 핀 펄프 측은 화를 내며 배로 돌아가라고 소리쳤으나 이내 어쩔수 없이 구해줬다. 반면에 자기 목적에 충실한 승무원들은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 승객들에게 입혔고, 겁에 질려 뛰어내리지 못하는 승객을 직접 바다에 던졌다. 새벽 2시 30분, 해안 구조대에서 출동한 헬리콥터와 비행기가 도착했다. 바하마 스타호는 승객 240명과 승무원 133명을 구조했고, 핀펄프는 승객 51명과 승무원 41명을 구조했다. 새벽 4시 쯤에 바다에 뛰어내렸던 모든 승객과 승무원들을 구조할 수 있었다. 구조 된 승객 중 화상을 너무 크게 입은 41명은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다. 승객들을 구조한 핀펄프호와 바하마 스타호는 같은 날 나소에 도착했다.
야머스 캐슬호는 계속해서 불타다 6시가 될 때 쯤 한쪽으로 기울더니 6시 3분 3,240m 아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결국 화재로 9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88명은 승객, 2명은 승무원이었다. 87명은 아예 탈출도 하지 못했다. 배와 운명을 같이한 승무원 2명은 스튜어디스 필리스 홀(Phyllis Hall), 선상 내 의료진 리사도 디아스토런스(Lisardo Diaz-Toorens)였다.
4. 안전불감증
사고 이후 야머스 캐슬호의 안전불감증이 대대적으로 지적됐다.선장이 배를 버리고 달아났고, 불에 쉽게 타는 물질을 천장까지 쌓으면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데다, 배의 알람 시스템이 전선 하나로 유지되는 바람에 그게 끊기면 알람 시스템 전체가 무용지물이 됐고, 라디오 오퍼레이터는 원래 2명이 타야 하는데 1명만 탔고, 모든 객실에 구명조끼가 있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고, 승객들에게 화재 대피법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화재 때 방화벽이 닫히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화재가 일어나기 불과 3주 전에 있었던 안전 점검을 통과한것으로 드러나 더 문제가 됐다. 여기서 또 문제가 드러났는데, 배가 파나마 회사 소유가 되면서 미국의 안전법을 따르지 않아도 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5. 사고 이후
배를 버리고 달아난 바이턴 부치나스 선장과 승무원들은 의무위반등의 혐의로 기소됐다이후 50명 이상 탑승하면서 밤새 운항하는 배는 반드시 불에 타지 않는 물질로 배를 장식하고, 충분한 양의 구명조끼와 구명정을 갖추도록 법으로 지정됐다.
가수 골든 라이트풋은 야머스 캐슬에 대한 노래인 "야머스 캐슬의 발라드(The Ballad of Yarmouth Castle)"을 작곡, 1969년 공개했다. # 이후 에드먼드 피츠제럴드호 침몰 사고에 대한 노래도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