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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5 20:24:43

야마무라 미사


1. 개요2. 생애3. 기타4. 작품

1. 개요

[ruby(山,ruby=やま)][ruby(村,ruby=むら)] [ruby(美,ruby=み)][ruby(紗,ruby=さ)], 1934년 8월 25일~ 1996년 9월 5일

추리소설 작가. '미스터리의 여왕', '트릭의 여왕',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 등으로 불린다.

교토를 무대로 한 젊은 여성이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미국 부통령의 딸인 금발벽안 백인 여성 캐서린 터너가 교토에서 활약하는 '캐서린 시리즈'가 유명하다.

2. 생애

교토에서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경성법학전문학교 학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부(지금의 서울)에서 자랐다. 경성사범부속소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일 고등여학교[1]에 다녔다. 이때 집안은 운전수 가정부까지 두고 부유하게 잘 살았는데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한국이 광복되어 일본으로 돌아올 때는 돈 한 푼 못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는 3년 간 실직 상태였고 다행히 1950년에 어머니의 고향 교토로 가서 교토대학에서 일자리를 얻어 집안이 겨우 안정되었다. 그의 나이 17살 때 일이다.

전쟁이 끝나기 전인 한국에 있을 때 징용당해서 비행기의 유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건강에 나쁜 유리 가루를 들이마셨고, 전후에는 고생을 많이 해서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해서, 천식을 지병으로 얻어서 평생 고생했다. 이 시절 교토에 옮겨와서는 고등학교에는 거의 가지 않고 집에서 쭉 책만 읽었다. 이런 요양생활을 할 때 에도가와 란포 등을 알게 되면서 추리소설 팬이 되고, 마침내 '추리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1957년에 교토부립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교토시립 후시미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제자들의 회상을 들어보면 "젊은 여선생이 자주 학교 근처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경찰서에서 인간 관찰 같은 것을 했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한동안 교사로 일하다 같은 학원에서 교사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추리소설 습작을 쓰고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일을 동시에 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고, 당시 일본/경제가 호황인 점도 있고 타고난 좋은 두뇌로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고, 1964년에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되어서 작가 도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 30살 때였다.

에도가와 란포상에 응모했지만, 3번이나 후보에는 들었지만 수상을 하지 못하고 낙방한다. "트릭은 훌륭하지만 문장력이나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제16회 란포상의 후보에 든 작품 『京城の死(경성의 죽음)』(1970)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경성부(지금의 서울)를 무대로 하고 있다. 1973년에도 후보작으로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 이런 그의 작품을 아깝게 여긴 고단샤 출판사의 어떤 편집자가 도와줘서, 그 후보작「ゆらぐ海溝」을「マラッカの海に消えた」로 제목을 바꿔서 다음해에 작가에 도전한 지 10년 만인 40살의 나이로 (잡지에 단편을 게재하는 것이 아닌) 정식으로 장편 단행본 출판을 하고 프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교토를 무대로 젊은 여성이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일련의 시리즈를 써내려갔고, 때마침 1980년부터 버블 경제와 함께 교토 붐이 일면서 잡지에 교토가 자주 소개되었다. 교토의 명소와 전통 축제 같은 문화, 교토 요리, 꽃꽂이, 다도, 일본무용 등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는 그의 작품을 젊은 여성들이 너나 나나 찾아 읽으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유행작가가 되었다. 특히나 1975년부터 써 내려간 미국 부통령의 딸인 금발벽안 백인 여성 캐서린 터너가 일본의 전통문화를 배우기 위해 교토에 머물면서 사건도 해결한다는 캐서린 시리즈는 대표적인 인기 시리즈가 되었다. 1983년에는 캐서린 시리즈의 [사라진 상속녀]가 제3회 일본문예대상을 수상하면서, 그동안 무관의 여왕이었던 것에 첫 수상을 맛보았다. 드라마화도 되었다. 그녀는 에도가와 란포를 정신적 스승으로 여기고 존경했는데, 에도가와 란포상에 3번이나 후보에도 올랐는데 결국 수상을 못하고 다른 상복도 거의 없어서[2] 작가생활하는 내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도가와 란포 선생님처럼 독자가 즐거워하는 소설을 쓰면 그것으로 좋다고 여겼다고 한다.[3]

야마무라의 작품은 인기를 얻고, 여러 작품이 TV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소설보다 드라마로 더 친근할 정도이다.

1996년 9월 5일, 심부전으로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있는 제국호텔에서 급사했다. 향년 62세.

3. 기타

트래블 미스터리로 유명한 니시무라 교타로와의 우정이 유명하다. 스캔들 등의 소문이 날 것이 분명한데도 교토에서 료칸으로 쓰던 저택을 공동으로 구입해서 본관은 니시무라가, 별관은 야마무라가 이용하는 형식으로써 서로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두 집사이에는 연결된 비밀 통로도 있었다. 니시무라는 야마무라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기혼이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무명 작가 당시 니시무라에게 야마무라가 팬레터를 보낸 것이 계기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니시무라는 야마무라를 여대생으로 착각하고, 이윽고 교토에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서로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야마무라는 첫 팬레터를 보낼 때도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 유부녀였다. 이 두 사람의 콤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가 탐정 야마무라 미사'라는 2차 창작 드라마 시리즈도 있다.

딸인 모미지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어머니와 니시무라 원작의 드라마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꽃꽂이 다도, 일본무용은 취미생활 정도를 넘어서 사범 자격까지 가졌다. 특히 난초를 좋아했다.

항상 화려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화려한 고급 저택에서 뭐든지 일류 물품을 지니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다고 한다.

상복이 없는 대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욕심이 있어서, 책 표지도 서점에서 눈에 띄고 잘 보이기를 원해 화려하고 타이틀도 큼직하게 보이기를 원해 출판사 측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왜 표지를 이 정도밖에 못 만드느냐."라고 따졌다고 한다. 그래서 책 표지가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얼굴 그림과 화려한 디자인과 색깔과 큼직한 타이틀이 달린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추리소설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저명인사인데도, 한국에서는 다루는 소재가 소재라서인지, 무슨무슨 유명한 상을 받은 수상작이라는 선전 문구를 달 만한 요소가 없어서인지, 한국에서 일본 추리소설 번역에 관심을 가진 1990년대 중반에는 이미 사망하고 유행이 흘러간 옛날 작가 취급해서인지 여태까지 제대로 번역이 된 적도 없고, 인지도도 낮다.

1993년에 한국에서 펴낸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이라는 단편 모음집에 '살의의 축제'가 번역 소개 된 적이 있다. 감상글 그리고 1990년에 불륜여행 살인사건과 이혼여행 살인사건, 1993년에 춤추는 주사위, 1998년 비밀의 방이 번역 출판되었다.

1981부터 1985년까지 에도가와 란포가 창설한 일본추리작가협회의 이사장을 맡았다.

4. 작품

일본 위키피디아 작품 목록 참조

집필시간은 많을 때는 하루 20시간을 글을 쓰고, 다작이라 작가 생활 22년간에 장편과 단편을 합쳐 364편의 작품을 남겼다. 게임으로 만들어진 작품 또한 다수 있다.
[1] 일본인 학교였고 해방 이후 건물은 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사용했다. [2] 상이라고는 생전에 딸랑 이것을 포함해서 2개만 받았다. [3] 에도가와 란포도 생전에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추리소설에게 주는 문학상 자체가 없었다. 1955년부터 시작된 에도가와 란포상은 그 첫 회의 상금은 에도가와 란포 본인이 후원금을 부담해서 태어난 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