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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 콜/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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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애슐리 콜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아스날 FC

아스날 FC 유스 출신으로 1998년 아스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 데뷔는 2000년 5월 14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였다. 

아스널의 선수진에 완전히 녹아들기 전에  크리스탈 팰리스 FC에 임대되어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14번의 리그 매치에 출장하였으며, 한 골을 기록했는데, 그 골은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의 먼 거리에서의 발리-슛이었다. 2000년 가을, 아스널의 왼쪽 풀백으로서 맹활약을 했던 브라질 출신의 선수 시우비뉴가 부상을 당하자, 애슐리 콜은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아스널로 돌아왔다. 시우비뉴가 부상을 회복한 뒤에도 애슐리 콜이 주전으로 뛰었다.

콜이 아스날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2000~2006년은 가히 '아스날 영광의 시대'였고[1], 잉글랜드 선수 더구나 유스 출신으로서 이 시대를 함께 한 콜에게 팬들은 각별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아스날 유스 출신에 실력도 월드클래스이기 때문에 차기 주장감으로 얘기될 정도였다. 애슐리 콜은 아스널에서 228차례 경기를 뛰면서, 9골을 기록했다

1.2. 첼시 FC

주급 인상 문제로 불화를 겪고 결국 2006년 8월 31일에 윌리엄 갈라스에 현금을 더한 트레이드로 첼시로 이적했다. 공교롭게도 국가대표팀 경쟁자인 웨인 브리지와 클럽에서도 같이 경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첼시와 불법접촉 논란까지 일었고, 실제로 청문회를 통해 불법접촉한게 밝혀졌다. 게다가 당시 콜은 아스날과 재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된 상황이었다. 거기에 첼시로 이적한 뒤 자서전에서 아스날 디스까지 해댔으니.. 당연히 아스날 선수와 팬들이 이를 갈 만 하다. 이후 아스날 팬들은 그를 돈슐리 콜(Cashley Cole)란 멸칭을 붙였고, 첼시와 아스날의 경기가 있을때 콜이 공만 잡으면 엄청난 야유를 쏟아냈다.

그러던 2007년 1월 31일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프리미어 리그, 3-0으로 승리한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정밀 검사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는 않았기에, 2006-07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다. 콜은 그 말대로 시즌이 끝날 때 가까스로 돌아왔는데, 그는  웸블리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007년 FA컵 결승 경기에 출장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그를 결승전 선수 명단에서 뺄 것이라고 처음에는 예상됐지만 첼시에서의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후 선더랜드와의 2008-09 시즌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첼시는 콜의 골로 3-2로 승리하였다. 다음 시즌 콜은 초반 6경기에 연속 출장했으며, 번리, 토트넘 홋스퍼,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각각 그의 3, 4, 5번째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2009년 9월 2일, 첼시와의 4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런데 2010년 여름 또 이적 문제가 불거졌다. 무리뉴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설이 터진 것. 물론 첼시는 부인했다. 사실 이 이적 문제는 돈 문제와 함께 이혼으로 인한 잉글랜드 타블로이드지들의 집착취재에 질린 나머지 스페인으로 떠나려 한 측면도 있었다. 무리뉴가 지속적으로 구애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적이 꽤 유력해 보였으나 안첼로티 감독의 설득으로 일단은 첼시에 잔류했다. 그렇게 잔류한 콜은 2010-11 시즌에도 리그에서 38경기에 출장했으며, 첼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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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발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첼시는 이 시즌 감독 경질로 시끄러웠는데 16강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존 테리가 빠진채 참여한 결승전에서는 페트르 체흐 프랭크 램파드, 다비드 루이스, 게리 케이힐 라이언 버트란드등의 선수들과 함께 을 충실히 보필했다. 4강전 바르셀로나전 수비에서 방패 역할을 충실히 실행했고 골라인에서 가까스로 걷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선 특히 마리오 고메스를 충실히 틀어막아 분데스리가 득점순위 2위인 고메스가 한 골도 넣지 못하게 막았고 가장 중요한 로베리 라인을 첼시 선수들과 잘 막았으나 후반 83분 토마스 뮐러 마킹에 실패하면서 뮌헨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으나 드록바가 동점골을 집어넣으며 연장으로 이끌었고 연장전에선 체흐의 골키퍼 원맨쇼로 승부차기 끝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2-13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2012년 12월 1일, 콜은 본인의 리그 350번째 경기에 출장하였다. 2013년 1월 22일에는 첼시와의 1년 재계약 연장에 합의하였다. 또한 이 시즌에 첼시는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두 시즌 연속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3-14 시즌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첼시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노장(?)이지만[2] 셋 중 가장 입지가 위태로운 상태다. 본인의 폼이 떨어진 것도 있고 부상당한 동안 라이트백인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가 급성장하여 레프트백 주전을 꿰찼기 때문에 경기에 나오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 그래서인지 재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있고 이적설이 간간히 돌고 있는 상태다. 소속팀에서의 입지와 함께 부동의 자리로 여겨졌던 국가대표에서의 입지 역시 심각히 악화된 상태로 레이턴 베인스에게 주전 자리를 사실상 넘긴 상태. 문제는 백업 자리마저도 신예 루크 쇼의 등장으로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에서 애쉴리 콜을 볼 수 없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 결국 베인스와 쇼에게 밀려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고,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택했다.

2014년 7월 1일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8시즌간의 첼시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자유계약이 된 콜은 AS 로마와 계약을 맺었다.

1.3. AS 로마

이로서 AS 로마 좌측 풀백 애쉴리 콜, 우측 풀백 마이콘이라는 레전드 풀백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들이 4년만 젊었어도 엄청난 공포의 조합이었을 듯. 애쉴리 콜은 로마에서 활약하게 된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경기에서 아르연 로번에게 영혼까지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 결과 현재 조기 방출설까지 돌고있는 상황이다. 아 옛날이여.

15-16 시즌 AS로마 스쿼드에서 아예 잊혀졌다. 리그와 챔스 전부 소집되지 않으며, 구단측에서 아예 사용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또한 이 사실을 콜 본인도 잘 알고있으나 잉글랜드로 돌아가는것을 끔찍이 싫어해서 주급만 타먹으면서 1월까지 버틸 예정이며, 시즌 도중 퍼거슨 VS 베컴의 올스타 자선경기에 출전하여 나쁘지 않은 몸상태를 보여주었다. 한편 AS 로마 선수단 단체 사진 촬영 당시의 포즈가 화제가 되었다. #

1.4. LA 갤럭시

2016년 1월 27일에 스티븐 제라드의 권유로 LA 갤럭시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 프로 축구 리그에 뛰게 되었다.

2018년 3월 31일 있었던 LAFC와의 더비 경기에서 91분에 즐라탄의 데뷔 경기 두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경기를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2018년 11월 27일 재계약을 맺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019년 1월, 뜬금없이 잉글랜드 챔피언쉽의 더비 카운티와의 링크가 뜨고 있다.

BBC, 존 퍼시(텔레그래프)에서 기사가 나왔고, 램파드도 관심을 인정하며 실제로 입단할 것으로 보인다.

1.5. 더비 카운티 FC

결국 1월 21일, 6개월 단기 계약으로 더비 카운티에 합류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고 밝혔다.

2월 16일 브라이튼과의 FA컵16강 원정경기에서 0-2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상대 실수를 틈타 헤딩골을 넣었다. 하지만 팀은 1-2로 패배, 결국 더비의 조기 FA컵탈락이 확정되었다.

더비의 레프트백이 대부분 부상당한 상태에서 팀에 합류한 이후 주전으로 뛰었고, 스콧 말론이 복귀한 이후에도 번갈아 출장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3]

그리고 2019년 8월 18일,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20년의 프로 생활을 그만두고 은퇴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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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L 우승 2회(심지어 그 중 하나는 전설의 무패 우승, FA컵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회. [2] 슈왈쳐 골키퍼는 1년 단기계약이니 제외. [3] 말론이 부상 복귀 이후 폼이 떨어졌기 때문. 사실 더비가 콜을 영입한 이유는 말론의 부상으로 임대복귀시킨 맥스 로우가 부진했기 때문이었는데, 말론의 부상 복귀 이후에도 말론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콜은 팬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