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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6:33:57

알바로 오브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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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멕시코 합중국 제46대 대통령
알바로 오브레곤 살리도
Álvaro Obregón Salido
파일:오브레곤.jpg
<colbgcolor=#006847> 출생 <colcolor=#000000,#e5e5e5><colbgcolor=#fff,#191919> 1880년 2월 17일
멕시코 소노라 주 나보호아
사망 1928년 7월 17일 (향년 48세)
멕시코 멕시코시티 산앙헬
재임 기간 제46대 대통령
1920년 12월 1일 ~ 1924년 11월 30일
직업 군인, 정치인
국적
[[멕시코|]][[틀:국기|]][[틀:국기|]]
정당 노동자당
경력 후아타밤포 시의회 의장
국방장관
노동자당 총재
제46대 멕시코 대통령 (1920 - 1924)

1. 개요2. 생애
2.1. 멕시코 혁명까지2.2. 대통령 재임2.3. 암살
3.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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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의 제46대 대통령. 멕시코 혁명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멕시코 혁명까지

소노라 주 출신이며, 아버지 대에 집안이 막시밀리아노 1세를 지지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자 어릴 때부터 고생해서 혁명 이전에 지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프란시스코 마데로 멕시코 혁명을 일으키자 오브레곤은 마데로의 혁명에 가담했고, 빅토리아노 우에르타가 일으킨 쿠데타로 1913년에 2차 혁명이 발발하자 소노라에서 다시 혁명군을 결성한 뒤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의 헌정군에 참여해서 전공을 쌓았다.

우에르타가 실각한 뒤, 혁명군의 다른 지휘관인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카란사의 대립이 격화되자 오브레곤은 중재를 시도했지만, 결렬되자 카란사와 동맹을 맺고 비야와 사파타가 결성한 아과스칼리엔테스 정부와 내전을 벌였다. 내전 초기에는 비야-사파타 연합군에게 멕시코시티를 잃었지만, 비야가 멕시코시티에서 정적을 숙청하느라 시간을 소모할 동안 베라크루스로 후퇴한 오브레곤은 병력을 모을 수 있었다.

1915년 4월 6일에서 5일에 걸쳐 일어난 셀라야 전투에서, 오브레곤은 기관총과 참호를 활용해서 비야의 주력인 기병을 봉쇄하여 승기를 잡았다. 이 전투에서 오브레곤은 비야군을 쫓다가 포격으로 오른팔을 잃지만, 비야-사파타 연합의 주력인 비야가 약화되면서 카란사-오브레곤 진영은 승기를 잡게 된다.

오브레곤은 카란사가 1917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자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카란사와의 입장 차이로 인해[1] 정적이 되어 체포 명령이 떨어지자 1920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카란사는 취임 후 개혁에 소극적이며 권위주의적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혁명가들에게 인심을 얻지 못해서, 멕시코시티를 잃고 도망치다가 배신한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카란사 사후 공석이 된 대통령직은 오브레곤의 부하인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가 물려받은 뒤, 1920년 12월 1일에 오브레곤이 승계했다.

이후 비야가 정계 은퇴를 대가로 장원(아시엔다)를 받는 조건을 받아들여 항복하자 오브레곤은 멕시코 혁명의 승자가 된다.

2.2. 대통령 재임

대통령이 된 오브레곤은 혁명의 후유증을 수습하면서 혁명의 의의를 국민들에게 알리려면 교육과 미디어가 중요하다는 걸 인지하고, 호세 바스콘셀로스를 교육부 장관에 기용하여 의무교육 확대에 힘썼다. 또한 카란사 집권과 함께 케레타로 제헌회의에서 의결된 사항 중 하나인 가톨릭교회의 토지 소유권 제한을 추진했다. 이 정책에 반발한 가톨릭 진영에서는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이 1929년까지 이어진 크리스테로 전쟁이다.

오브레곤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그의 부하 중에서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가 차기 대권을 놓고 정쟁을 벌였다. 밀려난 데 라 우에르타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자 미국으로 망명했고, 훗날 오브레곤의 다른 부하인 라사로 카르데나스가 실권을 잡자 멕시코로 귀국해서 여생을 보냈다.

2.3. 암살

1928년 대선에서 오브레곤은 4년 단임을 깨고 재선에 도전해 대통령에 당선되나, 미처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크리스테로인 호세 데 레온 토랄에게 암살당했다. 오브레곤 사후 공석이 된 당선인은 에밀리오 힐이 승계했다.

3. 참고자료



[1] 마데로처럼 대대로 대지주 출신인 카란사는 혁명 초기부터 논의되던 토지 개혁과 농민 및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오브레곤은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그의 부하들도 비슷한 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