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안토닌 푸치 Antonín Puč |
출생 | 1907년 5월 16일 |
사망 | 1988년 4월 18일 (향년 80세)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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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프라하 이노니체지구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5cm / 74kg |
소속팀 |
SK 스미호프 (1925) SK 슬라비아 프라하 (1925~1938) FK 빅토리아 지슈코프 (1938~1940) SK 스미호프 (1940~1941) |
감독 |
SK 누슬레 (1943~1944) 체히 카를린 (1945~1946) |
국가대표 |
60경기 34골 (
체코슬로바키아 / 1926~1938) 1경기 1골 (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 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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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1]
1.1. 선수 생활
1.1.1. 클럽 경력
푸치는 유스 시절을 보헤미아 스미호프(Bohemia Smíchov)와 SK 스미호프에서 보냈고 1군 데뷔도 SK 스미호프에서 했다.하지만 푸치의 스미호프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리그의 강호였던 SK 슬라비아 프라하가 18살의 푸치를 영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푸치는 슬라비아 프라하의 첫 시즌에 팀의 센터 포워드로서 16골을 넣어 팀을 기쁘게 했다.
1932년, 블라스티밀 코페츠키가 새로 슬라비아 프라하에 입단하면서 푸치는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1938년까지 슬라비아 프라하에 남아 팀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푸치는 1938년에 슬라비아 프라하 생활을 정리하고 빅토리아 지슈코프(Viktoria Žižkov)로 이적했다. 빅토리아 지슈코프에서 보낸 2시즌동안 푸치는 20경기에서 11골을 기록했고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데뷔팀인 SK 스미호프에서 보냈다.
1.1.2. 국가대표 경력
푸치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1926년 6월 28일의 유고슬라비아전이었다. 푸치는 전반 43분에 팀의 5번째 골이자 자신의 데뷔골을 넣었고 체코슬로바키아는 6대2로 대승을 챙겼다.이후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하는 공격수 중 하나가 된 푸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2차례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고 특히 1934년 월드컵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4경기에 모두 출전해 2골을 넣었다. 특히 결승전에서 푸치는 후반 26분에 선제골을 넣어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을 역사상 FIFA 월드컵 우승에 가장 가까이 이끌었지만 이탈리아에 연장 혈투 끝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푸치는 1938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 뛰었고 1939년 11월 12일에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대표팀으로 1경기에 참가해서 1골을 넣은 적이 있다. 이것이 푸치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푸치가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 기록한 34골은 체코슬로바키아가 분리되기 이전 대표팀 내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기록이 체코로 승계된 현재 3체코 대표팀 내 최다 득점자는 55골의 얀 콜레르이다.
2. 수상
2.1. 클럽
- 체코슬로바키아 1부리그 우승 7회: 1928-29, 1929-30, 1930-31, 1932-33, 1933-34, 1934-35, 1936-37( SK 슬라비아 프라하)
- 중부 보헤미안 컵 우승 6회: 1925–26, 1927, 1927–28, 1929–30, 1931–32, 1934–35(SK 슬라비아 프라하)
- 체코슬로바키아 1부리그 준우승 6회: 1925-26, 1927, 1927-28, 1931-32, 1935-36, 1937-38(SK 슬라비아 프라하)
2.2. 국가대표
2.3. 개인
- 체코슬로바키아 1부리그 득점왕 2회: 1926-27, 1928-29( SK 슬라비아 프라하)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