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樂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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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악(樂) | |
명 | 양(羊)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
고향 | 위나라 안읍(安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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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국시대의 명장.2. 생애
오자병법으로 유명한 오기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 위나라(魏)의 군주 위문후(魏文侯)에게 장수로 기용되어 중산국(中山國)을 정벌했다. 그런데 당시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서 벼슬을 살고 있었던 까닭에, 출정 당시 수많은 관료들은 악양이 아들 때문에 제대로 정벌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위 문후는 그를 믿고 출정을 허락했다.악양에게 포위당한 중산국에서는 몇 차례나 그 아들을 통해 악양을 포섭하려 했지만 악양은 군사를 물리지 않았다. 다만, 항복할 기한을 조금씩 늘려주었는데 이때 당연히 본국의 신하들은 벌떼처럼 일어났으나 위문후는 듣지 않았다. 결국 기한을 넘긴 중산국에서는 아들을 인질로 삼아 협박을 했으나, 악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활을 들어 아들을 겨누었다. 질겁한 중산국에서는 아들을 끌어내렸지만 결국 어찌하지 못하고, 다만 악양을 동요시킬 목적으로 그 시체를 삶아 국을 만들어 악양에게 보냈다.
그런데 악양은 이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국을 앉은 자리에서 전부 먹어버렸다. 그 뒤 국을 배달해 온 이에게는 "식사 대접 잘 받았다. 곧 너네 군주의 국도 끓여 먹고 말겠다!"는 대답까지 들려서 되돌려 보냈다.
승리와 함께 귀환한 악양은 위 문후에게 많은 재물을 받았는데 동시에 봉해진 상자 하나도 받았다고 한다. 악양이 상자를 열어보자 그 안에는 전쟁중에 대신들이 악양을 탄핵하는 상소문이 잔뜩 들어 있었다. 사실 악양은 중산국을 단순한 피정복 대상이 아닌, 완전히 위나라와 한몸으로 삼키길 원했기 때문에 강한 군대를 이끌고도 시간을 끌면서 민심을 얻을 계획이었는데 그게 정적들에게 빌미를 준 것이다. 악양은 중산국을 멸망시킨 것이 단지 자신이 뛰어나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믿어준 위 문후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전보다 겸손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 악양은 중용되지 않았는데, 위 문후의 무덤에서 발굴된 글에 의하면 악양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은 사실이나 자기 자식에게까지 냉정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이라[1] 한 번 기용하면 족하지 오래 쓸 인물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2]
3. 여담
후에 연나라(燕)의 장수가 되어 제나라(齊)를 친 악의(樂毅)가 이 악양의 손자이다.
[1]
문후도 처음에는 "나를 위해 자기 자식 고기까지 먹다니. 이런 충신이!" 하며 껌뻑 감동받았지만, 도사찬이라는 신하가 "자기 자식 고기도 먹었는데 누구 고긴들 못 먹겠습니까?" 라며 일깨워주자 움찔해서 악양을 냉담하게 대했다고 한다. 이는 옛날
제환공에게
관중이
역아(자기 자식을 죽여 요리해서 환공에게 바친 이)를 탄핵할 때 했던 말을 비튼 것이기도 하다.
[2]
재밌는 건 악양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오기는 위문후가 죽을 때까지 중용받았다. 뒤에 쫓겨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