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田児童連続殺害事件
1. 개요
2006년 일본에서 발생한 어린이 연쇄 살인 사건. 범인의 정체가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점과 범인과 피해 아동의 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기도 하다.2. 사건 경위
2006년 4월 9일 오후 7시 45분경 아키타현 야마모토군 후지사토정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하타케야마 아야카(당시 9세)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각 수색에 들어갔으나 아야카는 다음날인 4월 10일 자택에서 남쪽으로 약 10km 가량 떨어진 노시로시 시내의 하천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아야카의 시신이 발견된 후 아키타 현경에서는 수사본부를 신설하여 사건과 사고 양쪽에 모두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진행했으나, 당시 시신이 발견된 하천은 유속이 빨라서 익수 사고가 잦은 곳이었기 때문에 당초에는 경찰도 사고사로 결론 짓고 조기에 수사를 종결했다.아야카가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난 5월 17일 오후 3시경 이웃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요네야마 고우켄(당시 7세)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고우켄의 친구가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도 약속 장소에 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고우켄의 집을 찾아갔지만, 하교 도중에 헤어진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오후 6시 20분경 고우켄의 부모는 경찰에 아들이 실종되었다고 신고했고, 즉각 수사가 개시되었다. 그러던 중 다음날인 5월 18일 약 12km 떨어진 하천변에서 조깅을 하던 남성이 도로변 풀숲에서 고우켄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아키타 현경에서는 고우켄의 시신에서 삭흔(索痕)[1]이 발견됨에 따라 살해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재차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부검 결과 고우켄의 사인은 목 졸림에 따른 질식사로 판명되었다. 후지사토정 자체가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기 때문에 이 작은 마을에서 짧은 기간 동안 어린아이가 2명이나 연달아 사망했다는 점은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야카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시점부터 아야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암암리에 돌았다고 한다.
두 번째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2주가 지난 6월 4일, 경찰은 수사 도중 첫 번째 피해자 아야카의 집에서 발견된 혈흔과 고우켄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을 유력한 증거로 하여 밤 11시경 아야카의 친엄마 하타케야마 스즈카를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했다.[2] 조사 과정에서 하타케야마 스즈카는 고우켄을 살해했음을 암시하는 진술을 시작했고, 결국 고우켄 살해를 인정했다.
7월 14일 하타케야마 스즈카는 4월에 발생한 아야카의 익사 사건에 관해서 기존에 "딸이 고우켄에게 인형을 보여주러 간다고 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진술을 번복, "강에 물고기를 보러 같이 나갔다가 아이가 다리 위에서 떨어졌다. 너무 놀라서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라고 증언했다가, 후에 다리에서 밀어 떨어뜨렸다고 다시 진술을 바꾸었다. 이에 경찰은 아야카 살해 혐의를 추가하였다.
3. 재판과 결과
2006년 7월 18일 아키타 지방검찰청은 하타케야마 스즈카를 요네야마 고우켄 살해 혐의로 기소하였고, 8월 9일 아야카 살해 혐의로 추가 기소하였다. 추가 기소 전날 하타케야마 스즈카는 지금까지의 진술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사건 발생 1년 후인 2007년 9월 12일 아키타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하타케야마 스즈카는 법정에서 고우켄의 살해 혐의는 인정했지만 아야카 살해는 완강히 부인했고,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을 노린 것인지 고우켄 살해에 대해 당시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2008년 3월 19일, 아키타지법은 1심에서 하타케야마 스즈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변호인과 검찰 양측이 항소했으나 2009년 3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양측의 항소가 모두 기각되고 변호인 측만 다시 상고를 제기했다. 그러나 5월 19일 변호인 측이 상고를 취하하면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4. 범인에 관하여
하타케야마 스즈카는 1973년생으로 인근의 노시로시 출신으로 알려졌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의 학대 속에서 자랐으며, 그 영향으로 비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가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이지메를 당하기 시작했고 중학교 시절에는 이름 대신 '병균', '심령사진'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한층 더 심각하게 이지메를 당했다고 한다.이런 이지메는 갈수록 심해져서, 하타케야마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 실린 롤링 페이퍼에는 그녀를 저주하고 비방하는 동급생들의 글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해당 앨범에 적힌 글들은 대략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3]
"지금까지 괴롭힘 당한 만큼 강해졌지. 우리한테 감사해라."
"만나면 죽여버린다."
"빨리 전쟁에나 나가버려."
"온천에 들어갔다가 불어터지지나 말라구."
"다시는 아키타에 돌아오지 마."
이 외에도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장래에 대해 "
자살,
사기,
강도, 전국
지명수배,
변태 대상, 여배우,
살인, 야생화"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쓰여 있었는가 하면,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재판 당시에는 학교에서 도난 사건을 일으켜
정학 처분을 받은 사실이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만나면 죽여버린다."
"빨리 전쟁에나 나가버려."
"온천에 들어갔다가 불어터지지나 말라구."
"다시는 아키타에 돌아오지 마."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치기현의 한 온천호텔에서 일하다 1995년경, 당시 21세에 화물차 운전사인 한 남성을 만나 관계를 갖고 임신, 결혼에 이르게 된다. 이 때 태어난 아이가 바로 첫 번째 희생자인 아야카였다. 그러나 결혼 후 고향인 아키타로 돌아와서도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행실은 방종하기 이를 데 없었고, 결국 남편도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결혼한 지 불과 5개월만에 이혼했다. 이혼 후 하타케야마 스즈카는 혼자서 아야카를 양육하느라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필사적으로 일을 했지만, 그 와중에도 도박으로 거액을 쓰다 파산하는 등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조차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5. 범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적
사건 발생 및 체포 이후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화제가 되었다. 아야카가 사망했을 당시 경찰이 사고사로 결론지은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범인이 할 법한 행동이 아닌,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면서 스스로 딸을 찾는 전단지를 돌리고 다니면서 재수사를 요구한 것이었다. 경찰은 이에 대해 가족이나 친척이 사건에 연루된 경우 범죄 피해자 지원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 돈을 노리고 사고사가 아닌 사건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거나 진술을 계속 번복하는 등의 행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게다가 더 소름끼치는 것은 체포 이후 기자들이 두 번째 희생자인 고우켄 유가족들에게 할 말이 없냐고 추궁하자 "아이 한 명 죽은 것이 뭐가 문제이냐 그 집은 아이 두명이 남아 있지 않냐?" 라는 인면수심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6. 사건 이후
두 번째 희생자 요네야마 고우켄의 아버지 요네야마 카츠히로는 사건 발생 11년 후인 2017년 6월 7일 한 TV 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아들이 행방불명된 이후부터 하타케야마 스즈카가 수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사건에 공범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사건 당시 경찰관이 경찰견을 억지로 끌고 다니는 등의 행동을 보인 것에서 사건을 단순 사고로 덮고 넘어가려 했던 것 같다며, 현경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던 점에 대해서 일체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한편 사건 당시 요네야마 카츠히로와 하타케야마 스즈카가 불륜 관계였다는 악성 루머가 퍼지기도 했는데, 이에 요네야마 카츠히로는 급거 '고우켄은 왜 살해 당했나(豪憲はなぜ殺されたのか)'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흉악 사건답게 가해자 가족들의 삶도 참담해졌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범죄자와 가족에 대한 괴롭힘이 심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사건 1년 전부터 뇌경색으로 입원해 있다가 사건 1년 후 비참하게 사망했다. 죽기 직전 아내이자 스즈카의 어머니와 부부의 연을 끊었으며, "손녀를 살해한 딸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이혼 당한 부인은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4살 아래의 남동생은 누나가 체포된 지 10개월 후인 2007년 3월 말 근무하던 운전대행 회사를 그만뒀다. 친구들에 따르면 취한 손님이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동생입니까?"라고 하면서 폰카를 들이대고, 쓴웃음을 지으면 "당신이 웃으면 안 될 텐데?"하는 비난이 날아오는 일이 수도 없이 되풀이되는 걸 견디지 못하고 더는 일을 할 수 없어 그만두었다고 한다. <주간신초>에 따르면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공공직업안내소에 다니는데, 면접에서 누나의 사건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해서 일자리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기 위해 차를 팔아야 했다. 이 무렵 그를 만났던 친구는 '오랜만에 본 친구가 눈은 푹 들어가고, 몸이 많이 야위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오랜만이야. 이렇게 같이 밥을 먹으니 맛있네."라고 말하면서도 거의 먹지를 못했다고 한다. 사건 뒤 식사를 제대로 못한 탓에 위 자체가 줄어들었다고.
이 이야기는 2심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나온 기사에 실렸는데, 1심 공판에 참석했던 동생은 2심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누나에 대해 절망했던 것인지 "피해자 가족 모임은 있는데, 왜 가해자 가족 모임은 없는 것일까. 모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라고 말했다고. 그는 2010년 초에 가해자 가족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언론인 스즈키 노부모토가 보낸 취재 요청에도 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남편이 죽기 직전 이혼한 뒤로 아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전부터 다리가 안 좋았는데 1심 공판에는 아들과 함께 보러왔다.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진 후에 다리 수술을 하고 퇴원한 후에는 친정에 몸을 의탁했다고 한다.[4]
2023년 1월 4일에 있던 심야괴담회에서 디바제시카가 게스트로 참여한 에피소드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사건의 정황을 설명함과 더불어 이 사건에서 이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가 겪은 심령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신입이던 시절의 기자가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연기에 속은 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던 중, 우연찮게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집을 찍은 사진에서 아야카의 심령사진이 찍혔으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살인 사건이란 정황이 확실해진 것만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우켄의 죽음으로 인해 하타케야마 스즈카가 범인이란 건 물론 자신까지 속인 것을 알게 되자 분노와 동시에 허탈감을 느꼈고, 눈 먼 취재욕에 홀린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한 번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집을 사진기로 찍었다. 그러자...
사진에는 고우켄의 유령이 슬픈 표정으로 집 안에 갇혀있는 모습이 찍혔고, 이는 대서특필의 요소로 쓰이게 되면서 더더욱 하타케야마 스즈카의 판결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이 사진을 먼저 고우켄의 유족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이를 보여주었고, 이를 본 유족인 그의 아버지는 사진기를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쏟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