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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02 19:39:21

아이신기오로 판차


파일:청나라 군주기.svg
건주여진 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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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주여진 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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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주여진 추장
凡察 | 판차
시호 없음
아이신기오로 판차
(愛新覺羅 凡察, 애신각라 범찰)
부친 동휘호
모후 불명
생몰 ? ~ ?
재위 건주 여진 추장
1433년 ~ ?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凡察

생몰년도 미상

건주 여진 오돌리족의 추장이자 명의 건주우위지휘사, 건주좌위지휘사. 아이신기오로 먼터무의 동생으로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는 동일하다.

2. 생애

1432년 2월에 먼터무의 지시로 명나라 조정을 방문했고 1433년 2월 경술일에 도지휘사에 임명되었으며, 10월에 칠성 야인의 난이 일어나 양목답올이 공격하자 먼터무의 장남인 아구, 명 조정에서 보낸 배준과 함께 막아냈다.

그러나 양목답올이 다시 공격하면서 포위당해 먼터무가 살해당하고 판차는 겨우 몸을 피해 명 조정에 이를 알렸으며, 건주좌위를 통솔해 1434년 2월에 도독첨사로 승진해 좌위를 관장했다. 조선에서 오도리 부족 인근에 회령진을 설치하고 1436년에 석성을 쌓자 판차는 성을 쌓은 것에 대해 조선에게 따졌다.

그러나 1437년에 명 조정에서 먼터무의 차남인 충샨을 지휘사로 임명하자 건주좌위를 두고 다투면서 명 조정에 요청해 이만주의 본거지로 자신의 부족을 옮기려 했지만, 이만주의 세력이 커질 것을 염려한 명 조정에서 이를 거부했다. 판차를 충샨과 함께 도독동지로 승진하면서 좌위를 나누고 우위를 신설해 판차는 우위를 관장했으며, 그러면서 판차는 양무타우와 손잡고 명의 개원을 공격해 요동의 포로를 잡아 종으로 부리면서 이웃 여진의 부족들에게 팔았다.

5월에 조선에서 김종서에게 명령해 오도리 부족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는데, 1440년 2월에 조선의 한양에 입조했다가 4월에는 부족민들에게 조선의 병조판서가 자신들을 몰살시킬 것이라 협박해 168호를 이끌고 이만주에게 달아났다.

이 때 김종서가 판차가 파저강으로 도주하는 것을 알고 오음회 등지에 머물다가 판차가 도주한 것을 알고 오음회를 급습했으며, 김종서가 판차의 부족 사람을 통해 판차가 도망간 곳이 파악해서 추격해 약 50여 명을 빼앗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