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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1 18:53:26

아르노 기욤 드 바르바잔

성명 아르노 길헴 드 바르바잔
Arnault Guilhem de Barbazan
생몰년도 1360년경 ~ 1431년 7월 2일
출생지 프랑스 왕국 바르바잔
사망지 프랑스 왕국 불뉴빌
아내 시빌 드 몽토
자녀 잔 드 바르바잔
직위 바르바잔 영주, 기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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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아르마냑파의 일원으로서 샤를 7세를 지지했고, 부르고뉴파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2. 생애

바르바잔의 영주로, '나무랄 데 없는 전사(chevalier sans reproches)'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아르마냑파와 부르고뉴파의 내전이 발발했을 때 아르마냑파의 편에 섰고, 1412년 부르고뉴파가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를 끌고 가서 부르주를 포위 공격했을 때 끝까지 항전한 끝에 지켜냈다. 이후 도팽 샤를의 고문이자 첫번째 시종이 되었으며, 1419년 몽뜨흐 다리에서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을 살해하는 데 함께 해 부르고뉴 파의 비난을 받았다. 1420년 잉글랜드군에 맞서 멜룬을 수비했으나 끝내 함락된 뒤 사로잡힌 후 사토 가이야르에 갇혀 옥고를 치르다가 1429년에 풀려났다.

이후 부르주로 돌아온 그는 1430년 라 이르의 부대에 가담해 샹파뉴의 샬롱 인근 크루아제트에서 잉글랜드-부르고뉴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했다. 1431년 1월 25일 로렌 공작 샤를 2세가 사망한 뒤 앙주 공작 르네와 보데몽 백작 앙투안 드 보데몽이 로렌의 상속을 놓고 전쟁을 벌였을 때, 샤를 7세는 르네가 자신을 지지하고 앙투안은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를 지지하는 것을 고려해 르네를 돕기로 하고 아르노를 파견했다. 그러나 1431년 7월 2일 볼뉴빌 전투에서 참패했고, 그는 전사했다. 르네는 이 전투에서 생포된 뒤 프랑스콩테의 돌(Dole) 성채에 감금되었다. 하지만 르네의 아내 이자벨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앙투안을 상대로 분전했고, 결국 선량공 필리프는 1432년 5월 1일 르네를 석방하는 대신 르네의 아들 장과 루이를 인질로 받고 거액의 배상금을 받는 조건으로 평화 협약을 맺었다.

샤를 7세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신하였던 아르노의 전사에 무척 슬퍼했고, 그의 장례식을 왕을 위해 마련되는 국장 형식으로 치르게 한 뒤, 생드니 대성당에 안장하도록 했다. 그는 생전에 시빌 드 몽토라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외동딸 잔 드 바르바잔을 낳았다. 잔은 아스타락 백작 장 3세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