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 작전 | |||
날짜 | <colbgcolor=#fff,#191919> 1975년 4월 | ||
장소 | 베트남 공화국의 수도 사이공 | ||
결과 | 철수 성공 | ||
대치 세력 | |||
대한민국 베트남 공화국 |
북베트남 베트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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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공화국의 패배가 확실시된 상황에서 한국이 베트남에서 마지막으로 실시한 철수 작전.2. 전개
자세한 내용은 프리퀀트 윈드 작전 문서의
한국의 철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사이공을 제외한 주변 지역이 북베트남군에게 점령된 상황에서 주남베트남 한국 대사관에 마지막으로 떨어진 임무는 한국인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그 이후 해군 LST 2척을 파견하였는데 한국 교민 250명 포함해서 월남인, 중국인, 필리핀인까지 도합 1,335명을 탑승시킨 후 4월 26일 밤에 떠났다. 그러나 탑승하지 못한 한국 외교관들과 나머지 한국 교민들은 근처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쳐 한국으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북베트남군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수천 명의 남베트남 피란민들이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난리통에 외교관들은 제대로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언제 사이공까지 도착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기다리던 그 때 새벽에 미국 대사관에 헬기가 뒤이어 계속 도착했다. 그 헬기에 나머지 한국인과 월남인이 탑승한 후 떠나갔지만 아직도 탈출하지 못한 한국인 외교관 3명( 이대용 공사 포함)은 헬기가 더 올 때까지 기다렸고 30분 후에 마지막 헬기가 도착했을 때는 오히려 대사관에 있던 미군들과 미국 대사가 모두 탑승하고 떠나려 시도했다. 이때 남베트남인들이 그것을 보고 대사관으로 뚫고 들어가려 하자 미군들은 최루탄을 던지고 떠나 버렸다.
이후 탈출하지 못한 월남인들과 한국 외교관들은 절망에 빠졌고 낮에 북베트남군의 전차가 사이공에 입성했다. 당시 한국인 외교관들은 북베트남군에 체포된 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3. 이후
베트남 교도소에 체포된 한국 외교관들은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마당에 북한의 요청으로 북한 공작원들이 파견을 와 외교관들을 설득하고 조사했으며 심지어 북한으로 가자고 협박까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베트남이 통일되었고 베트남의 바로 옆나라인 캄보디아와 전쟁이 터졌다. 이른바 캄보디아-베트남 전쟁.이때 북한은 베트남이 아닌 캄보디아를 지원했고, 이에 반발한 베트남 정부는 한국 외교관들을 석방, 귀국시켰다. 이에 따라 모든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