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사원으로 향하는 길거리 | 2015년 신자르 수복 공세, 일대 지형이 나타난다. |
1. 개요
아랍어 سنجار쿠르드어 شنگال (슁갈)
이라크 서북부 니느위 주의 도시. 주도인 모술에서 서쪽으로 120여 km 떨어져 있고 시리아 국경과 불과 30여 km 거리이다. 시가지는 야지디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약 50km 길이의 신자르 산지 동남쪽 기슭에 지금은 말라버린 개천의 양안에 조성되어 있다. 전쟁 전 인구는 약 9만명이었고 아랍인, 야지디인, 쿠르드인과 수니/쉬아 이슬람, 야지디교, 기독교 등이 어울려 살아가는 도시였다. 그러나 2014년 ISIS의 강점으로 수천의 야지디인들이 학살당하였고 이로써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어 이듬해 비교적 이른 시일에 탈환되었다. 2017년 신자르로 돌아온 야지디인들은 자치 정부 수립을 선포, 이에 쿠르드 병력은 철수하였다. 현재까지 이라크 정부의 지지 하에 자치 정부가 유지되고 있으며, 야지디 깃발이 휘날린다.
2. 역사
신자르는 고대의 중요한 요새 도시 '싱가라'에서 기원하였다. 싱가라는 아미다 (디야르바크르), 니시비스 (누사이빈), 다라, 하트라 등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주요 거점이었고 수차례 로마와 페르시아의 수중을 오갔다. 당시 성벽 일부가 시가지 북부에 남아있다. 12세기 들어 신자르는 장기 왕조의 번국 중 하나의 수도가 되어 '작은 다마스쿠스'로 일컫어질만큼 번영하였다. (1170 ~ 1220년) 이후 아이유브 왕조, 룰루 왕조, 일 칸국, 티무르 제국 등을 거쳐 오스만 제국 하에서는 동명의 산작의 치소가 되었으나 쇠락하여 마르딘 혹은 모술 산작의 일개 도시가 되었다.1170년 누르 앗 딘, 조카 장기 2세에 신자르 하사
1182년 모술의 마수드, 형 장기 2세와 알레포-신자르 교환
1183년 살라딘, 알레포-신자르 점령. 장기 2세에 재차 신자르 하사
1197년 장기 2세 사망, 아들 쿠트브 앗 딘 무함마드 계승
신자르는 학문적으로 번영하였고 아미르 쿠트브 앗 딘 무함마드는 우카일 왕조 때의 성벽에 외성을 추가해 방어를 강화하였다. 당시 2개의 마스지드, 6개의 마드라사, 3개의 카느카 (수피 사원), 알리 이븐 아비 탈립의 마슈하드 (사당) 등이 있었다고 함. 2개 사원 중 하나는 1201년 쿠트브 앗 딘에 의해 지어짐
1219년 쿠트브 앗 딘 무함마드 사망, 세 아들 계승. 장남 이마드 앗 딘 샤한샤
1220년 알 아슈라프 무사가 점령
1237년 알 아슈라프 무사 사망, 이후 모술의 바드르 앗 딘 룰루가 점령
1259년 키토부카의 몽골군이 점령
알 무자파르 알라 앗 딘 유수프 : 아이유브 진영 합류, 후에 알레포 총독 봉해짐
1262년 일 칸국이 2중 성벽과 알리 마슈하드 파괴, 후자는 페르시아인 총독 무함마드 알 야지디가 복원
티무르, 7개월간의 포위 끝에 신자르 점령
1507-8년 사파비 제국이 점령
1534년 오스만 제국이 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