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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3 20:09:48

시메온 우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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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FF>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제9대 데스포티스
Симеон Урош | 시메온 우로시
파일:시메온 우로쉬.png
칭호 데스포티스
출생 1326년
사망 1370년 (향년 43~44세)
재위기간 1359년 ~ 1370년
왕조 네마니치 왕조
시메온 우로시(Симеон Урош)
시메온 우로시 팔레올로고스(Συμεών Ούρεσης Παλαιολόγος)
아버지 스테판 우로시 3세 데찬스키
어머니 마리아 팔레올로기나
배우자 토마이스 오르시니
형제 옐레나 네마니치 수비치, 테오도라 네마니치(친형제), 스테판 두샨(이복형제)
자녀 조반 우로시
스테판 우로시
마리아 앙겔리나 두케나 팔레올로기나
종교 정교회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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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제9대 데스포티스.

2. 생애

세르비아 국왕 스테판 우로시 3세 데찬스키의 아들이며, 요안니스 팔레올로고스의 딸이자 미하일 8세의 손녀인 마리아 팔레올로기나가 그의 어머니이다. 이복형인 스테판 두샨 1348년 이피로스와 아카르나니아를 공략한 뒤, 그는 그 일대의 통치자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피로스의 전 통치자였던 조반니 2세 오르시니의 딸 토마이스와 결혼하고,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데스포티스를 칭했다. 1355년 스테판 두샨이 갑자기 사망한 뒤, 그는 차르를 자칭하며 스테판 우로시 5세에 대항했다. 그러나 1356년 니키포로스 2세 오르시니가 이피로스로 돌아오자, 귀족들이 대거 그쪽으로 가담하는 바람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카스토리아로 도주했다. 그는 그곳에서 세르비아인 로마인의 차르로 자처했지만,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했다.

1358년 제타를 공격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세르비아의 왕위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1359년 니키포로스 2세가 알바니아군을 상대로 아이톨리아의 아켈로오스 전투를 치르다 전사하자, 그는 재빨리 테살리아로 진격하여 그곳의 귀족들로부터 통치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이피로스로 진격해 알바니아군의 침략에 직면한 몇몇 도시로부터 데스포티스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보데나의 라도슬라프 흐라펜은 의붓아들인 토마 프렐류보비치를 대신하여 테살리아를 침략하려 했다. 시메온은 카스토리아를 라도슬라프에게 넘기고 딸 마리아 앙겔리나를 토마와 결혼시키는 것으로 그를 달랬다. 그 대신 라도슬라프는 시메온의 종주권을 일정 부분 인정했다.

시메온은 알바니아 부족들이 대부분 점거하고 있는 이피로스를 직접 다스리기는 어렵다고 보고, 이피로스를 잘게 쪼개어 르타와 앙겔라카스트론은 알바니아계 족장들에게 데스포티스 칭호를 주어 봉신으로 삼고, 자신은 테살리아를 다스렸다. 1366년 이피로스의 마지막 소유지였던 북부 요안니나를 사위인 토마 프렐류보비치에게 줬다. 1370년 테살리아에서 사망했고, 아들 조반 우로시가 그의 뒤를 이어 테살리아를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