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선 경기 1872.11.30.(토) 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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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크레센트 (스코틀랜드, 파틱) | ||
주심: 윌리엄 키이 (스코틀랜드) | ||
관중: 5,000명 이상 | ||
0 : 0 | ||
스코틀랜드 | 잉글랜드 | |
- | 득점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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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72년 11월 30일에 열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축구 경기. 세계 최초의 공식 국가대표 축구 경기이다.2. 경기 전
1870년 3월 5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첫 번째 축구 경기가[1] 런던의 케닝턴 오벌에서 열렸다. 잉글랜드 FA의 주도 하에, 잉글랜드의 주장 찰스 윌리엄 앨콕이 팀을 선발하고, 스코틀랜드 팀의 선수 아서 키너드가 제임스 커크패트릭을 주장으로 앞세운 팀을 꾸려 경기를 치렀다.첫 골은 스코틀랜드가 득점했는데, 후반 30분 잉글랜드의 골키퍼가 공격 가담을 위해[2] 골대를 비우고 올라온 것을 놓치지 않은 스코틀랜드 팀의 로버트 크로포드가 빈 골대에 공을 넣어 팀에 리드를 안겼다. 그리고 경기 종료 직전인 후반 44분에 잉글랜드의 알프레드 베이커가 동점골을 넣으며 첫 경기는 1-1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약 8달 뒤인 1870년 11월 3일, 잉글랜드 FA의 비서가 된 찰스 앨콕이 글래스고 헤럴드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에든버러 등 지역 신문을 통해 11월 10일 토요일에 있을 2차전을 예고하였다.
650명의 관중이 방문한 2차전 경기는 1870년 11월 19일에 열려, 전반 10분 잉글랜드의 로버트 워커가 결승골을 넣으면서 잉글랜드가 1-0 승리를 가져갔다.
앨콕은 스코틀랜드 지역 신문에 3차전, 4차전, 5차전까지 광고를 띄워 경기를 치렀고[3] 3차전은 1871년 2월 25일에, 4차전은 1871년 11월 18일에, 5차전은 1872년 2월 24일에 열려 잉글랜드가 비공식 전적에 2승 1무[4]를 추가하였다.
그러나 팀을 조직할 때, 스코틀랜드 팀에는 잉글랜드 출신의 선수들도 다소 포함되어 있어 스코틀랜드인들의 불만이 컸다. 그러나 당시 스코틀랜드의 선수들은 FA가 규정한 축구 규칙대로 뛰지 않고 있어서 공식적인 A매치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에 FA에서는 스코틀랜드 축구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그들이 자신들의 규칙에 대해 흥미를 가지도록 할 목적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을 스코틀랜드로 보내게 된다. 이에 스코틀랜드의 축구팀 퀸즈 파크 FC[5]에서 선수 11인을 선발, 공식 스코틀랜드 대표팀이 잉글랜드 대표팀과 맞붙게 되었다.
3. 경기 상세
3.1. 라인업
스코틀랜드 선발명단 (2-2-6) 감독: 스코틀랜드 F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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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로버트 가드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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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조셉 테일러 |
LB 윌리엄 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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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 제임스 스미스 |
HB 제임스 J. 톰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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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6px -11px;" |
FW 데이비드 워더스푼 |
FW 제임스 B. 위어 |
FW 빌리 M. 맥키넌 |
FW 알렉산더 린드 |
FW 로버트 레키 |
FW 로버트 스미스 |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FW 윌리엄 메이너드 |
FW 존 B. 브록뱅크 |
FW 찰스 클레그 |
FW 아놀드 K. 스미스 |
FW C. 오터웨이 |
FW 찰스 J. 체너리 |
FW 찰스 J. 모리스 |
}}} | |||||
HB 레지널드 C. 웰치 |
HB 프레데릭 채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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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어니스트 H. 그린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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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로버트 바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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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선발명단 (1-2-7) 감독: 잉글랜드 FA |
스코틀랜드의 라인업은 주장인 로버트 가드너가 선발했으며, 잉글랜드의 라인업은
스코틀랜드는 원래 아서 키너드와 헨리 레니텔리우르를 라인업에 넣으려 했으나 사용할 수 없었으며, 잉글랜드의 경우에는 골키퍼 1번 옵션인 알렉산더 모르텐이 경기에 나올 수 없게 되어서 로버트 바커가 기용되었다. 이전 5개의 경기를 모두 소화한 앨콕은 부상으로 인해 이 역사적인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3.2. 경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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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 크레센트(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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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블을 하는 스코틀랜드 선수(상)과 킥을 처리한 잉글랜드 선수(하)[6] |
스코틀랜드 대표팀은 스코틀랜드의 국화인 엉겅퀴가 박힌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빨간 두건을 쓴 채로 뛰었고 잉글랜드 대표팀은 하얀 유니폼에 모자를 쓰고 경기를 치렀다.
스코틀랜드의 선수들은 모두 같은 팀인 퀸즈 파크 FC에서 뛰고 있었기에 서로의 플레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로버트 레키를 비롯한 포워드들의 영리한 드리블로 시작된 공격이 지속되며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를 가두고 패기도 했고, 수비수인 윌리엄 커는 아예 자기 진영부터 상대 진영까지 드리블 쳐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스코틀랜드의 경기력은 최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잉글랜드는 전반전에 완전히 두들겨 맞으면서 삐걱거리는 모습을 연출했으나, 후반전에는 골키퍼이면서 포워드도 가능한 로버트 바커가 포워드로 올라가고, 포워드이면서 골키퍼도 가능한 윌리엄 메이너드가 골키퍼를 맡으면서 스코틀랜드와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해밀턴 크레센트 경기장은 평평한 땅이 아닌 약간 경사진 땅이었는데, 스코틀랜드가 진영을 먼저 선택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유리한 진영을 선택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스코틀랜드 선수들은 날렵하게 움직이며 무거운 잔디 체감 속에서 경기하는 잉글랜드 선수들에 우위를 점했다.
스코틀랜드는 2명의 수비수와 2명의 하프백을 배치하여 잉글랜드의 공격수들을 방어하였고, 잉글랜드는 수비수 1명, 하프백 2명[7]을 배치하였다. 당시의 규칙으로는 온사이드가 2번째 수비수 뒤에 있어야 성립되는데, 잉글랜드의 포메이션 상 하프백 1명만 올라가도[8] 손쉽게 상대가 오프사이드를 범할 수 있게 하는 오프사이드 트랩의 형태를 띈 수비 전술로 경기에 임했다.
3.3. 경기 평가
"It was allowed to be the best game ever seen in Scotland."
"스코틀랜드에서 본 최고의 축구 경기라 평가받을 만 하다."
애버딘 저널
"스코틀랜드에서 본 최고의 축구 경기라 평가받을 만 하다."
애버딘 저널
비록 경기는 득점 없이 끝났지만, 경기력은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경기가 끝났을 때 크레센트의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22명의 선수가 모두 퇴장할 때까지 열렬한 환호는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