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슈테판 아우어 (Ştefan Auer) |
생년월일 |
1905년
5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아라드[1] |
사망년월일 |
1977년
10월 16일 헝가리 인민 공화국 커포슈바르 |
국적 | 루마니아 | 헝가리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6cm |
등번호 | -[2] |
소속팀 |
AMEF 아라드 (1921-1926) 콜테아 브라쇼프 (1926-1927) 우이페슈트 FC (1927-1936) 라피드 부쿠레슈티 (1936-1941) 카포슈바르 (1941-1945) |
감독 | 라피드 부쿠레슈티 (1937-1939) |
국가대표 |
2경기 3골 (1926-1927,
루마니아) 21경기 24골 (1929-1935, 헝가리) |
1. 개요
헝가리의 전 축구선수.2. 생애[3]
2.1. 선수 생활
슈테판 아우어의 부모는 독일계이다.[4] 아우어의 커리어는 루마니아의 아라드에서 시작되었고, 이 곳에서 뛸 동안 루마니아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데뷔전은 1926년 4월의 불가리아전이었고 이 경기에서 데뷔골도 기록했다. 1926년 아우어는 콜테아 브라쇼프로 이적했고 디비자 A 준우승도 기록했다.하지만 1시즌만에 아우어는 헝가리의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소속 우이페슈트 FC로 다시 팀을 옮겼다. 그는 헝가리의 잘 나가는 팀에서 날카로운 창의 역할을 했고 소속팀의 4차례 리그 우승, 1차례 미트로파 컵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1929년 미트로파 컵에서는 총 10골로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 활약에 꽂힌 헝가리 측에선 전직 루마니아 대표팀 스트라이커를 헝가리 대표팀으로 데려왔고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21경기 출전 24골을 넣어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헝가리 대표로서는 중유럽 컵과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아우어는 1936년에는 다시 루마니아에 돌아갔고 1937년부터 1939년까지 라피드 부쿠레슈티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이 기간에 아쉽게도 라피드 부쿠레슈티는 4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하는 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나마 1939-40 시즌에 디비자 A 득점왕에 오른게 위안거리.
아우어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헝가리의 카포슈바르에서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강한 힘이 장기였던 센터 포워드.4. 수상
4.1. 클럽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우승 4회: 1929–30, 1930–31, 1932–33, 1934–35( 우이페슈트 FC)
- 미트로파 컵 우승 1회: 1929(우이페슈트 FC)
- 디비자 A 준우승 5회: 1926-27(콜테아 브라쇼프), 1936–37, 1937–38, 1939–40, 1940–41(라피드 부쿠레슈티)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준우승 2회: 1931–32, 1933–34(우이페슈트 FC)
- 마자르 쿠파 준우승 1회: 1932–33(우이페슈트 FC)
4.2. 개인
[1]
아라드는 1918년
루마니아 왕국으로 넘어갔고 지금도
루마니아의 영토이다.
[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4]
인터넷에서 슈테판 아우어를 검색하면 헝가리식 이름인 어버르 이슈트반, 가장 많이 검색되는 것은 서양식 표기인 이슈트반 어버르(István Avar, 이슈트반은 슈테판의 헝가리식 표기)일 것이다. 아우어가 축구선수로 헝가리에서 남긴 족적이 가장 크기 때문에 이슈트반 어버르가 가장 많이 검색되지만 선수의 혈통에 따라 보통 헝가리식 표기를 따르지 않고 독일, 루마니아식 표기를 따라 항목을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