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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00:29:44

91식 철갑탄

수중탄에서 넘어옴
파일:attachment/91식 철갑탄/91Type-AP-Jap00001.jpg
91식 철갑탄 (九一式徹甲弾).

1. 개요2. 개발3. 문제점4. 개량5. 평가

1. 개요

91식 철갑탄은 일본 해군이 사용하던 포탄으로, 보통 수중탄으로 알려진 철갑탄이다. 91식 철갑탄은 흰 바탕에 붉은 띠를 두른 후 표면에 九一을 표기해 다른 포탄과 구별했다. 그리고 91식 철갑탄은 구경에 따라 46cm, 40cm, 36cm, 20.3cm, 15.5cm의 다섯 종류가 있었는데 가장 큰 46cm 탄은 길이 1.95m에 포탄중량 1,460kg, 작약중량 33.85kg, 최대사거리 42,030m의 위력을 가졌다.

2. 개발

일본 해군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폐기가 결정된 미완성 전함 토사(土佐) 및 퇴역전함 아키(安芸)에 실탄사격실험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40cm 포탄이 수면에 착탄한 후 수중에서 이동하여 토사의 현측에 명중, 후방 기관실 내에서 작렬해 3,000톤의 침수피해를 낸 것이 관측되었다. 이 실험 결과 목표 바로 앞에 낙하한 포탄이 수중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수평으로 직진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일본 해군은 포탄이 어뢰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뜻으로 보고 해당 실험 결과를 크게 중시했다. 때문에 일본 해군의 전함은 개장시 수중탄에 대한 방어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수중탄 효과가 강화된 철갑탄을 개발하게 되었다. 해당 신형 철갑탄은 6호 철갑탄(후에 88식 철갑탄)으로 불렸는데 포탄이 수면에 착탄하면 탄두부가 떨어져나가면서 수중에서 직진하기 좋은 형상이 된 후, 물을 뚫고 적함의 흘수선 아래를 타격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되었다.

통상탄은 수중 직진거리가 포탄 직경의 80배 정도라서 그렇게 멀리 나가지 못하는 것에 반해, 해당 철갑탄은 200배까지 직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당장 야마토급 전함의 46cm 포탄이라면 46cm × 200 = 92m가 되므로 협차로 인해 적함의 근처 바다에 떨어진 포탄도 경우에 따라서는 명중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수중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정시간을 늘린 신관까지 사용했다. 이렇게 완성된 6호 철갑탄은 시험 결과 수중탄 효과가 충분하다고 인정받으며 1930년에 제식채용되었다.

6호 철갑탄의 탄두를 연장하고 탄미 형상을 보트테일형으로 만든 철갑탄이 야마토급 전함에도 탑재된 91식 철갑탄이었다. 91식이라는 이름은 1931년(황기 2591년)에 채용되었기 때문이다. 91식 철갑탄은 6호 철갑탄보다도 공기저항이 적은 형상이었기에 같은 각도라도 사거리가 3,000m ~ 4,000m 가량 추가로 연장되는 효과가 있었다.

3. 문제점

하지만 91식 철갑탄은 실전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야마토급 전함이 해당 포탄을 실사용한 후에는 해군 내부에서 이를 개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졌다.

4. 개량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91식 철갑탄 개량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물인 1식 철갑탄은 1941년에 채용되었는데, 주요 개량점은 아래와 같다.

그러나 실사용 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포탄 강도는 91식 철갑탄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5. 평가

부가기능을 강화하려다가 도리어 원래 기능이 약해진 실패작이다.

수중탄의 개념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철갑탄의 기본 기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중탄 효과를 강화해야지 수중탄 효과를 더 강화하겠답시고 철갑탄의 기본 기능을 깎아먹는 일을 하면 안 된다. 일본군 또한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실물은 철갑탄의 기본기능을 저하시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량했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강화된 부가기능조차 통상탄과 비교했을 때 별 차이 없는 수준에 불과했으니 개발한 이유조차 사라진 셈이다.

그리고 유틀란트 해전 이후 전투함 간의 전투가 근접하여 측면을 난타하는 방식에서 장거리에서 고각으로 사격하여 갑판을 타격하는 방식이 되었고, 측면은 어뢰 기뢰에 대한 대응책으로 벌지를 포함한 다양한 방어 수단이 적용되면서 수중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 시기의 신형 함선들은 피해를 입어 침수가 발생하더라도 데미지 컨트롤을 통해 함선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하는 상황이었기에 작약량의 문제로 어뢰나 기뢰보다도 타격력이 떨어질 수중탄의 효과에만 집착하는 것은 의미없는 행위였다.[2]

실제로 일본군 전함이 미군 전함을 상대로 수중탄을 사용해 공격했던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 키리시마가 일방적으로 전력계통이 마비되어 그저 떠 있는 표적 상태였던 사우스다코타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던 2차 과달카날 해전. 이 전투에서 키리시마와 휘하 순양함들은 사우스다코타에 5km까지 근접해 26발의 철갑탄을 날렸지만 유의미한 피해는 주지 못했다. 가장 대구경인 키리시마의 14인치 철갑탄조차 사우스다코타의 3번 포탑 바벳에 직격했지만 역시 관통하지 못하고 깊이 1.5인치, 직경 15인치의 폭발흔과 수직 균열 몇 개만 남겼고, 사우스다코타의 주포 기능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 외에 명중한 6인치 2발, 8인치 3발 역시 장갑 구획은 관통에 실패했고, 비장갑구획인 상부구조물은 역으로 반대편으로 빠져나가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 사항은 사우스다코타의 피해 보고서에 상세히 기록된 상태다. 보고서 하단에 첨부된 피해상황도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때 미 해군의 결사적인 반격에 직면했던 1차 과달카날 해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키리시마 이외의 함선들은 모두 철갑탄을 미리 장전한 상태였다. 키리시마도 미리 장전되어 있던 장전된 첫 포탄만 3식탄이었을 뿐 나머지 포탄은 개선된 1식 철갑탄을 사용했다. 미국의 구식 14인치 45구경 Mark 1 주포가 5,490m에서 측면장갑 437mm를 관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보다 성능이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던 키리시마의 14인치 45구경장 주포는 충분히 사우스다코타의 측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어야 했다. 미국 구식 14인치 주포 일본 14인치 주포 여기에 전함 정도 함선끼리의 교전 거리가 5km라는 점은 사실상 영거리 사격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가까운 거리라는 점,[3] 일본군의 야간시력 좋은 견시와 탐조등, 상대방은 사실상 표적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4] 호위함들과 함께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확실하게 상대 전함을 전열에서 이탈시키는 수준을 넘어 그 자리에서 격침시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리시마는 사우스다코타에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일단 명중률부터가 문제가 있는 전투였지만[5], 명중한 포탄은 장갑이 가장 두꺼운 부위 중 하나인 바벳 장갑 [6]을 때렸다. 만약 정상적인 철갑탄이었다면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었겠지만 1식의 저열한 성능 문제로 관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일부러 수중탄 효과를 노리겠다고 적함에 약간 못 미치는 수면을 조준하고 사격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명중률에 악영향을 주는 문제도 생겼다. 포탄 자체 문제만도 심각해서 명중해도 제대로 피해를 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가 효과를 노리고 스스로 명중률을 깎아먹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 그나마 물기둥을 보고 협차 여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2] 이렇게 수중탄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포탑 앙각은 높였다. 사거리를 늘릴 목적이기는 했지만 수중탄 효과는 거의 사라진다는 문제가 생겨 오히려 수중탄 효과를 노리고 개발한 포탄과 합이 맞지 않게 된다. [3] 보통 전함에 장착하는 대구경 주포의 유효사거리는 30km정도 된다. 5km라면 유효사거리의 1/6 수준으로, 보병 기준으로는 서로 50m~7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교전한 셈이다. [4] 사우스다코타가 반격으로 2~3회의 일제사격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해전의 결과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http://blog.naver.com/imkcs0425/60115105842 [5] 그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한 27발 중 명중탄은 1발에 불과했고, 모든 탄종을 합쳐도 제대로 명중한 탄은 117발 중 2발에 불과한 심각한 명중률을 보여주었다. [6] 두께 44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