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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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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의 황족이자 손책의 아들로 양주 오군 부춘현 사람.2. 생애
서기 200년에 손책이 26세로 급사할 당시 손소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손책은 그의 동생인 손권에게 후사를 부탁했다. 이에 따라 손책의 공식 직책이었던 회계 태수직은 손권에게 계승되었고, 당시 한나라 조정을 장악한 조조가 손권을 별도로 토로장군(討虜將軍)에 천거하는 형태로 손책 세력의 승계를 추인했다. 손책의 오후(吳侯) 작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없는데, 한나라의 열후 작위는 아들에게 상속되는 것이 원칙이었고 형제에게 상속이 이뤄질 수 없던 만큼, 손책의 유일한 아들인 손소가 계승했던 것으로 보인다. 손권이 제위에 오른 뒤 상우후(上虞侯)로 전봉(轉封)되었다.[1] 손소가 죽자, 그의 아들 손봉이 뒤를 이었다. 손봉은 나중에 손호 시대에 제위에 오를 것이라는 헛소문 때문에 결국 손호에게 죽임을 당한다.참고로 《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손권이 형 손책을 황제가 아닌 장사환왕으로 추존한 것과 손소, 손봉에게 왕작도 아닌 후작에 봉한 것을 대차게 깠다. 하지만 이는 손권 자신의 정통성 문제와 관련된 것이므로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2] 또 손책의 사위인 육손의 힘이 더 강해질 수도 있으니 이를 견제해야 하고...
[1]
《
삼국지》손파로토역전에선 손권이 황제에 오른 뒤에 손소가 오후로 책봉되었고 그 뒤에 상우후로 다시 봉해졌다고 나와 있어, 손소가 손책이 사망한 뒤에 오후 작위를 계승하지 못했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손권이 황제에 오른 뒤에도 손소의 작위가 그대로 인정되었다가 뒤에 상우후로 변경된 것으로 해석함이 옳다.
[2]
아마 손권을 까면서 비슷하게 형제 세습을 해야 했던
사마사가 황제로 추존된 거랑 비교해서 본국인 서진을 치켜세워주기 위함일수도 있다. 단, 이건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려운게 사마사는 딸만 있었지 아들이 없었으며 사마사의 후사를 이은 것은
사마소의 차남
사마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