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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균관대학교의 학생문화를 설명하는 페이지.한 마디로 요약하면 운동권의 총본산이었던 과거와, 완전히 희석된 현재. 한때 초강경한 학생운동의 중심지로 테러리스트라고 불릴 정도의 무력을 통해 과격한 행위를 일삼았던 배경으로 인해 성균관대의 과거 역사가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잘 알려져있다.
삼성재단이 성균관대학교 운영에 참가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2. 2000년대 이전
원래 성균관대학교는 과격한 운동권의 학생운동으로 여러 위법 행위와 폭력을 일으켰다. 유시민의 회고에 따르면, 이 학교가 운동권으로 유명하던 시절에는 " 서울대학교는 소셜리스트, 고려대학교는 내셔널리스트, 연세대학교는 리버럴리스트, 성균관대학교는 테러리스트"라는 표현도 유행했다고 한다. 전경들이 정문으로부터 들어와 체포 및 진압작전을 실행하면 학교 재산이자 기물이었던 학교 벽을 뚫어 도주를 시도하거나 담벼락 기왓장을 깨서 경찰에게 던지는 극단적인 폭력행위가 있었다.1980년대에는 학생운동이 매우 과격했으며, 극단적인 학생운동 단체이면서 반국가단체인 CA, 노동자해방투쟁동맹의 본산이었다. 교내에서 운동권, 노동자 집회가 자주 열렸고. 돌맹이를 모아서 경찰에게 던지는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성균관대 운동권은 가장 위험한 학교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인문학부(현 문과대학)의 특정 학과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종로경찰서에 명단이 넘어다. 해당학과 출신 학생의 말에 따르면 1997년경까지 인문학부 모 학과 학생회실에는 학생운동 과정에서 불법으로 취득한 전투경찰의 방석모와 진압봉 등 공공기물이 버젓이 벽에 걸려 자랑스레 전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신입생들이 저것이 무어냐고 묻자 자랑스럽게 "전리품"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성균관대 운동권은 여럿이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를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명원창 총학생회장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사회주의 정당을 결성하자는 삐라를 제작해서 배포하고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해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기사화되었다. #
여담으로 1990년대 학부제 실시 이전까지 전해지던 모 과의 비공식 과송의 가사를 인용해보자면,
원래 이 노래는 2절짜리 가사로 전경대를 조롱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를 포함하고 있다. 나머지 부분은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성 부분이 있으므로 생략하였다.[1] 이 노래 가사로 미루어 보건데 실제 시위 때 마주치는 전경대는 종로 서가 아니라 동대문 서 소속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외이겠지만 정치에 관심 없다고 비난을 받는 자과캠에도 전투경찰의 방패와 진압봉이 1990년대에 (그 당시)자연과학대 빌딩의 모 처에 있었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과캠 자연과학 빌딩은 미로 같은 곳이다. 진압을 위해서 들어왔다 길을 잃은 전투경찰에게서 강제 탈취했다고 나중에는 학생회관 쪽으로 옮겨 전시(?)됐었는데 2000년대 들어가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 당시 별명은 테러리스트였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성균관대 인사캠은 교문이 좁고 학교 자체가 서울 중심의 좁은 시가지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타 대학처럼 치열한 교문 공방전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1980~1990년대 운동권들이 즐겨 쓰던 아이템 꽃병( 화염병)은 더더욱 쓸 수 없다. 만일 화염병을 사용하게 된다면 주변 상인들이 피해를 입고 일대가 불바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대생들은 당시 자연스럽게 쇠파이프사용을 선호하게 되었고, 폭력적인 충돌을 격화시켰다. [2] 그래서 당시 테러리스트라는 별명 외에도 깡깡 혹은 꽝꽝, 에스꽝꽝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성대 운동권 지금으로 치자면 영화 300에 버금가는 무력충돌이었다고 한다.
또한 성균관대학교는 종로구에 위치한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로, 서울 중심부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다. 이로 인해 성균관대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학생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으로서 강력한 대응이 필요했던 곳이었다. 서울대학교가 관악으로 통합·이전한 이후로는 성균관대의 이러한 특성이 더욱 두드러졌다.
성균관대학교는 타 대학에 비해 학생운동 정파가 여러 갈래로 분포되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연세대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각 정파가 난립했으며, 특정 정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던 다른 대학들과 달리 성균관대는 학생 조직의 계열이 많았다. 1990년대 초반 성균관대에는 NL, PD, 국제사회주의, 우익[3] 등등 등 수십 개의 정파와 모임이 난립했다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이 난무한 학생운동은 학교 안밖으로부터 비판을 받아 9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서서히 학운에서 사라져갔다.
3. 2000년대 이후
3.1. 전반적 비권화
2000년에 일어났던 '600주년 기념관 점거 사태' 이후 성균관대학교의 운동권은 급 버로우. 당시 삼성이 '우리 재단 나가버릴겨'라고 이야기하는 통에 전 학교가 화들짝 놀라 비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당시 학교 측은 이 점거를 주도했던 학생 2명을 출교 처분할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 사건 이후 성대 운동권은 거의 초토화돼, 그 이후 현재까지도 운동권 성향의 총학생회 선본은 단 한번도 당선되지 못했다. 당선된 총학생회들은 그 이후 한 번도 남김없이 비운동권. 아니 반운동권. 아니 실은 그저 학교 말 잘 듣는 쪽(...) 사실 당시의 점거도 일부 학생회 임원의 독단이 아니라 멀쩡히 학생 투표까지 한 다음에 그 투표가 성사되자 실행한 거였는데, 사건 전후의 학교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라 점거자 자신들도 어안이 벙벙했을 듯.인사캠과 자과캠의 정치적 분위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인사캠은 운동권과 비권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었다면 자과캠은 비권과 권을 나누기 전에 일단 정치에 관심이 적다. 특히 재단인 삼성그룹에 대한 입장 차가 양 캠퍼스의 분위기 차를 설명해준다. 애초에 자과캠은 삼성의 투자로 설립되었고 장학금이나 시설 등의 투자가 상당해서 정권의 비호를 받는 삼성 재단의 수혜를 받는 상황이라 어찌 보면 이권의 중심이 달라진 것. 그냥 배부른 상황이라 불만이 사라진 것이다.
현재는 막상 인사캠 학생들도 실질적인, 즉 피부로 와닿는 불평은 딱히 없는 편이다. 장학금도 적지 않고, bk사업단이나 hk사업단도 비교적 잘 운영 중이라, 교수도 많이 채용하는 편이고 교수들의 목소리를 막는 것도 거의 없다. 다만 학교에서 알아서 긴다는 게 흠이라면 흠...
여기에 더불어 이제는 일부 남초 학과나 동아리를 제외하고는 개인주의 학풍이 느껴진다.
3.2. 인사캠의 분위기
현재는 인사캠 계열의 문과대와 사회대, 사범대 등에서 비교적 운동권 분위기가 잘 보존(?)된 편이고, 이들이 총학생회에 대한 주된 반발 세력이다. 즉 인사캠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비권 성향의 총학생회, 운동권 성향의 단과대'라는 독특한 조합이 형성된 것.물론 인사캠에서도 법대, 경영대, 경제대 같은 단과대는 삼성에 우호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법대의 경우 법학관에 운동권 관련 대자보를 붙이는 것조차 학생/교수 할 것 없이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글로벌경영, 글로벌경제, 글로벌리더 등도 대체로 삼성에 대해 우호적이며, 역시 비권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글로벌리더학부의 경우 전신이었던 자유전공학부 시절엔 학교 측에서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자유전공학부생들이 재단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글로벌리더학부로 명칭을 변경하고 모집 단위를 유지하는 데 합의한 이후로는 반재단 분위기는 사그러들었다.
경영대, 경제대, 법대와 달리 문과대, 사회대-단 글로벌리더학부는 예외-, 사범대, 유학대 등의 단과대에서는 상당한 반(反) 삼성 정서가 유지되어 있다. 특히 유학대학은 성균관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학대학이 한때 해체 후 유학동양학부로 통폐합됐었던데다 건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에 더더욱 심하다. 성향에 따라서는 교수들도 수업에서 삼성 관련 극언을 할 정도. 본래 인문학 전공자들이 권력이나 자본에 대해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하려는 성향을 보이긴 하지만 이러한 실질적인 이유와도 겹쳐서 비권 후보에게도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비권과 운동권의 경선으로 치러진 2014년 총학선거에서는 자과캠 쪽에서 촉발된 운동권 선본에 대한 논란이 만연했음에도 인사캠에서 52% VS 48%로 운동권 선본측이 승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논란이 발생했던 자과캠에서는 운동권 측이 35% 가량의 득표율을 받아 합산 결과 비권 선본이 당선되었다. 당시의 논란에 대해서는 선본 측에서 학생회의 정책 및 활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요소들에 대해 유권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그 사안이 논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의견과 그런 것들은 입장을 밝혀야 할 대상이 아니며, 위의 비판은 색깔론에 불과하다라는 의견이 있었다. 어찌되었건 이 논란이 당시 투표에 영향을 준 요소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4] 다만, 이 당시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총학생회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그 다음 선거는 15년 총학(스XX)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 있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교내 페미니즘 단체의 활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페미니즘 세력이 미미했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는 교내 대자보, 집회, 시위, 학회, 토론회 등이 자주 보일 정도로 페미니즘 세력이 커졌다. 문과대에서는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페미니스트 학생도 꽤 자주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학생회가 아닌 일반 학생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학생 간의 갈등은 없었지만 2018년, 회칙에는 존재하지만 10여년간 공석이었던 총여학생회에 출마하고자 하는 학우가 생긴 것을 계기로 총여학생회의 존재와 회칙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일부 학생을 중심으로 생겼다. 결국 '총여를 폐지한다'라는 안건에 대한 학생총투표가 발의되었다.[5] 총여를 지지하는 사람 중 일부가 극단적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이 그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근거로 드러났다. 글로벌리더학부 학생회장에 대한 투표를 보이콧하는 학우의 언어적 위협이 있었던 것도 확인되었다. 이 두 사건은 총여 폐지 찬성측에 여론이 기우는 이유가 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학우들 가운데에서 극단적 페미니즘 세력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2018년 10월 15일에 학생총투표로 총여학생회 폐지가 확정되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문과 캠퍼스 정문 앞에 술집이 꽤 많았고 시험 기간까지도 늘 술을 마시는 학생들로 붐비곤 했었다. 술 강요까진 아니지만 선배나 동기가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버스와 지하철이 끊긴 시간에도 술을 마시는 학생,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점점 술을 덜 마시는 분위기가 되고 있고, 문과 캠퍼스 정문 앞에 있던 술집 몇 곳은 손님이 줄어들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차가 끊기기 전에 집에 돌아가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그리고 캠퍼스 근처 치킨집, 호프집의 생맥주가 점점 맛없어지고 있다. 생맥주의 생명은 신선도인데, 판매량이 떨어져 회전율이 떨어지니 예전에 비해 맛이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학기 중엔 먹을만 하지만 방학 시즌엔 병맥주를 시켜먹는 게 나을 정도. 맛있는 생맥주를 먹고 싶다면 대학로까지 나가는 게 낫다.
3.3. 자과캠의 분위기
삼성 재단 시대가 열린 이후 자과캠은 상당히 많은 지원을 얻었다. 공대와 같은 기존 학과는 말할 것도 없고 의예과, 반도체시스템공학과 등의 신설 학과들이 대표적이다.[6] 때문에 삼성에 대한 불만은 인사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 아무리 불만이 많은 학과라 해도 유학대학이나 문과대학의 불만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적다.현재 자과캠 학생들의 대부분은 학생회에 관심이 없다지만 그래도 삼성에 비교적 우호적인 것은 사실이다. 자과캠이라고 학생들이 '오오 삼성 오오' 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졸업 후 삼성에 취직하는 쪽으로 진로를 잡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7] 삼성 취업을 노리는 학생들은 절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삼성을 공격하려고 하진 않는다. 삼성 취업을 노리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도 딱히 친삼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삼성을 공격하려 할 정도로 정치 이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적다.
일부 유학 강사 중에는 자과캠에 와서 수준 이하의 비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공대생도 유학 관련 강의를 하나는 들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한데... 강사들이 삼성만이 아니라 과학계 전반을 까는 비상식적인 행위들을 종종 행한다. 삼성을 욕하다가, 과학자들의 철학적 사상 결여를 욕했다. 심지어는 자과캠에서 영혼과 사후세계를 믿느냐고 하면서 그 생각을 강요(!)한 강사도 있다. 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유교, 불교, 도교를 끌어와 설명을 했는데, 전공자한테 물어보니 개소리라며…
자과캠의 분위기가 반권 또는 비권이라기는 애매한 게 애초에 별로 관심이 없다. 꾸준히 운동권 활동을 하는 단체들도[8] 있어서 아 이런 애들도 있었지 하는 정도지 특별히 반대 의견을 갖고 있거나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운동권도 비권도 아닌 자기 공부에 치여서 무관심해졌다는 것이 더 맞을 듯.
인사캠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연과학 캠퍼스 학생들은 친체제, 친삼성, 비권 성향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애초에 관심이 없다.
한 나이 많은 졸업생이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삼성에 빌붙어 먹고 살 생각이나 하는 너희 때문에 이 나라를 세우신 분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정신 좀 차려라'는 식의 격문을 붙인 적이 있는데… 유심히 지켜본 사람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누가 떼지도 않았다. 자연과학캠퍼스의 성향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일화.
하지만 이건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이공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이기도 하다. 굳이 성균관대가 아니더라도 이공계가 따로 캠퍼스를 꾸리는 대학에서는 이런 일이 많았다. 5공 시절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은 학생 전원이 운동권[9]이라고 칭할 시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들은 버들골 잔디밭에서 마이티[10]나 하고 시국에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관심이 없었을 정도였다.[11] 성균관대가 테러리스트로 불릴 시절에도 그 명칭은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 한했다. 삼성 재단 들어오기 전에도 자연과학캠퍼스는 시국에 관심이 적었다. 다만 관심이 없다고 해도 자연과학캠퍼스에 전경에게서 압수한 전투방패와 진압봉이 있을 정도였으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1]
사실 이 노래의 원곡 자체가 여성 비하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 의경과 군부대에서 불리던 음담패설 구전 군가 여대생 미스 리가 원곡이다.
[2]
쉽게 말하면 원거리 캐릭터와 근접 캐릭터가 섞인 게 아닌, 근접 캐릭터만 모여 있는 파티를 생각해 보면 된다.
[3]
지금 시대에는 믿겨지지 않겠지만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사회주의나
좌파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군사
독재에 반대하는 우익 또는
자유주의 운동권도 존재했다. 소위 말하는
386세대들 중에 시민운동 세력 중 온건파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 이쪽 출신들이 간혹 있다.
[4]
당시의 분위기는 그 때 작성된 성대사랑의 글들을 조금만 검색해 봐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5]
총여 폐지를 반대하는 학우들 중심으로 이 투표가 발의된 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는데, 이에 대한 총여 폐지 찬성측과 반대측의 담론은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참조.
[6]
다만 기존 학과의 성대생들은 수혜를 피부로 잘 느끼지는 못한다. 삼성학술정보관을 제외하고는... 그렇다고 기존 학과에 대한 수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수혜로 부수 이익을 얻은 화학과를 예로 들 수 있다. 반도체관을 지을 때 남는 여유분이 있었는데, 건설비를 후원으로 제일 많이 모집한 과에 대해 선착순으로 신 건물을 제공했고, 화학과가 빨라서 화학관을 얻을 수 있었다.
[7]
과장 좀 보태서 웬만한 학과들의 졸업생 절반 정도는 삼성에 간다고 보면 된다.
[8]
자연과학대학 및 정보통신대학 학생회,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몇몇 사회과학 동아리.
[9]
물론 학생 전원이 운동권 단체에 가입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그들을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정도 행동까지 같이 했기 때문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1987년 6월 항쟁 때에는 아예 명동성당으로 등교했을 정도.
[10]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하던 카드 게임의 일종
[11]
당시 서울대는 성균관대처럼 이원화 캠퍼스는 아니었으나 서울에 뿔뿔히 흩어진 다원화 캠퍼스에서 관악으로 통합된지 몇 년 안 됐을 때고 특히 공대는 현재도 멀리 북쪽에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있으며 당시에도 가장 나중인 1980년에 들어오게 돼 사실상 별개의 느낌이 강했다. 사실상 학생들의 사고 방식은 이공계가 따로 캠퍼스를 꾸리는 대학과 다름 없었던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