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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3 17:21:31

성경모

<colbgcolor=#000,#000><colcolor=#fff,#ddd> 성경모
成京模 | Sung Kyung-Mo
파일:성경모.jpg
생년월일 1980년 6월 26일 ([age(1980-06-26)]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 80kg
범죄 승부조작
학력 경희중 - 경희고 - 동의대
포지션 골키퍼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 (2003~2004)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5~2010)
광주 FC (2011)

1. 개요2. 프로 생활3. 승부조작 적발과 그 이후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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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였으며 동시에 승부조작의 가담자. 현역 시절에는 골키퍼로 뛰었다.

2. 프로 생활

경희중, 경희고를 거쳐서 동의대에 진학했다. 동의대를 졸업한 이후 성경모는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했다. 당시 전북에는 주전이었던 이광석이 군 입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용발, 김이섭 정도의 경쟁자들이 있었는데,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보니 성경모는 단 한 차례도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한 채 2003년을 보냈다. 2004년에는 김이섭이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떠났으나 이광석이 복귀하면서 여전히 데뷔전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2005 시즌을 앞두고 성경모는 서동원과 함께 인천의 최광훈, 성경일과 트레이드되어 인천으로 이적했다. 이 이적은 이후 인천이 상당히 이득을 본 트레이드로 평가받았는데, 서동원은 주전으로 급부상했고 성경모도 김이섭의 경쟁자로 한동안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데 비해 최광훈과 성경일은 별 활약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 시작부터 주전은 아니었지만, 김이섭이 흔들릴 때 기회를 잡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며 꾸준히 경쟁 기회를 얻었고 2006년에는 주전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장기 부상을 당한 이후 성경모는 본래의 페이스를 잃었고, 설상가상으로 새로 들어온 송유걸에게까지 밀려나면서 3순위 골키퍼가 됐다. 2010년에는 시즌 내내 1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노종건과 함께 재계약에 실패하며 오랫동안 뛰었던 인천을 떠났다.

2011 시즌에 성경모는 신생 구단 광주 FC에 입단했다. 그러나 광주에서 4경기 동안 11실점을 기록하는 참사를 일으키며 폼이 상당히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3. 승부조작 적발과 그 이후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광주에서 승부조작을 시도했음이 밝혀졌다. 즉,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것. 광주에서의 충격적인 부진이 여기서 나온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 게다가 주변인들까지 승부조작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한 인물인 것까지 드러나면서 거대한 비판에 직면했다. 당연히 영구 제명 징계를 받으며 선수 경력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했다.

징계가 확정된 이후, '히말라야 달팽이 원정대'에 참여하여 히말라야 원정 자원봉사를 떠났다. 장애인들을 도와 새 세상을 경험시켜주는 취지의 자원봉사인데, 성경모의 변호사가 제안한 것을 성경모 본인이 수락한 것. 다른 연루 선수 신준배도 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성경모는 떠나기에 앞서 한 인터뷰에서 다시는 그라운드에 밟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우며, 이 사건으로 인해 자살한 정종관의 소식을 들었는데 잘못되는 것을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도운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봉사활동을 통해 속죄하며 살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실제로 이 자원봉사의 과정이 TV에 나올 때 잠깐 얼굴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강수일이 중심이 되어 하는 축구 관련 봉사 활동에 다른 전, 현직 인천 선수들이 참여할 때 함께하는 등 봉사 자체는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작범들 중에서도 정말 무거운 죄를 지었는데, 그나마 축구계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스스로 참회의 시간을 가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은 다행인 부분. 성경모에 대해서는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열심히 살기를 응원해주는 팬들도 많다.

4. 여담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