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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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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진의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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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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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진
徐昊辰 | Seo Hojin
파일:서호진.jpg
출생 1983년 6월 11일 ([age(1983-06-11)]세)
대구직할시[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졸업)
감삼중학교 (전학) 신목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스포츠지도학 / 학사)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2])
계명대학교 대학원 (사회체육학 / 박사[3])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주종목: 1000m, 1500m[4]
신체 176cm, 74kg
1. 개요2. 선수 경력
2.1. 2001-02 시즌2.2. 2003-04 시즌2.3. 2004-05 시즌
2.3.1. 국가대표 선발전 및 국제대회2.3.2. 2005 동계유니버시아드 및 폭행 논란
2.4. 2005-06 시즌
2.4.1. 국가대표 선발전2.4.2. 월드컵 시리즈2.4.3.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3. 은퇴 이후4. 수상 기록
4.1. 주요 국제대회 성적4.2. 월드컵 성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남자 쇼트트랙 선수이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5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이다.

2. 선수 경력

2.1. 2001-02 시즌

경기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2001-02 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안현수에 이어 종합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예비 명단에 들었고 대표팀에 결원이 나서 승선이 유력했지만, 빙상연맹 추천제 선발로 당시 빙상연맹 회장 박성인과 당시 비한체대의 수장이었던 유태욱이 안현수를 추천선발 선수 명단에 포함시켰다.[5] 시즌이 종료된 이후 2002-03 시즌 선발전에서는 대표팀 승선에 탈락했다.

2.2. 2003-04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한번 실패를 맛봤지만, 부상으로 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못해 연맹 추천선수로 선발되었던 김동성 김기훈과의 갈등 이후 대표 차출을 거부함에 따라 대한빙상연맹 특별 추천 선수 자격으로 대신 추가 선발되었다.[6] 유일하게 출전했던 경기는 ISU 결과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6차 월드컵 1000m로 예선에선 1위로 준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준준결승 1조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와 함께 패널티를 받았다. 당시 준준결승 1조의 선수들은 샤를 아믈랭, 서호진, 리자쥔, 아폴로 안톤 오노 였다. 그리고 계주에 참가했기 때문에 동메달을 가져왔다. 이후 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다.

2.3. 2004-05 시즌

2.3.1. 국가대표 선발전 및 국제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무려 최종 2위로 선발되었다. 국제대회로는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 모두 계주에 각각 한번씩만 참가해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2.3.2. 2005 동계유니버시아드 및 폭행 논란

파일:동계올림픽서호진2.png
파일:external/file.starnnews.com/20150512104142_55515a5611055_1.jpg
경희대학교 학생 자격으로 2005 인스브루크 동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했다. 1500m에서는 안현수 송석우에게 밀려 3위로 동메달, 500m에서는 송석우에게 다시 밀리며 은메달을 땄다. 이후 1000m에서 '그 사건'이 벌어졌다. 대표팀 코치를 통해 안현수한테 금메달을 양보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경기 도중 본인 앞에서 스케이트하던 안현수에게 "야 비켜!"라 소리쳤고, 안현수는 마지못해 코스를 내줬지만 성시백에게 끝까지 타라고 했고, 성시백도 서호진에게 1등을 내주지 않고 금메달을 가져가면서 서호진의 금메달 승부조작은 무산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은 후배들인 안현수와 성시백에게 헬멧을 쓰고 본인에게 오라고 요구했고 헬멧을 착용시킨 상태에서 (안현수가 훗날 '두들겨 맞았다'라 표현할 정도로) 머리를 때렸다. 2015년 빅토르 안의 증언에 의하면 본인보다도 1위를 끝내 내주지 않고 실력대로 탄 성시백이 더 많이 맞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제대로 된 내용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세 가지 루머가 존재했었는데 첫번째는 새벽 2시까지 거의 8시간 동안 폭행을 했다는 것, 두번째는 성시백이 서호진을 말리려다 안현수를 보호한다면서 같이 폭행을 당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호석이 서호진이 안현수를 구타를 할 동안 망을 봤다는 것이다.

우선 성시백도 같이 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안현수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7] 서호진이 양보를 청탁하려고 실력이 뛰어났던 두 명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던 것인데 그 둘이 바로 안현수와 성시백이었던 것이다. 허나, 이호석이 망을 봤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 알려진 것 루머였고 안현수도 "호석이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라고 직접 증언을 했다. 당시의 이호석은 성인팀에 소속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주니어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중이었고, 2005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호석이 성인 대표팀에 합류한 것은 2005-06 시즌 선발전 이후였다. 물론 둘이 한 때 불화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당사자들끼리 이미 화해한 지 오래되었다. 이후 3000m 슈퍼파이널에서 마저 안현수가 0.106초 차로 서호진보다 먼저 골라인을 통과해 우승을 했다. 결국 유니버시아드 개인전에서 금메달이라도 챙겨보려고 했던 그의 작전은 실패했다. 그나마 후배들 덕에 계주 금메달은 챙겼다.[8]

이 파문으로 인해 그는 당연히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간부에게 300만원을 주고 국가대표팀에 복귀를 시켜줬다.

또한, 빙상경기연맹의 다른 간부도 그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조건으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4차례에 걸쳐서 총 2,1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 하지만, 본인들은 선수 해외연수자금을 지원을 받은 것이라고 부인했다. 아무튼 다시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고 2005 세계선수권 계주 경기에도 참가해 은메달을 땄다.

2005년 대한빙상연맹은 체육발전 유공자로 그에게 체육훈장 거상장을 수여한다.

2.4. 2005-06 시즌

2.4.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 1500미터 4위, 500미터 2위, 그리고 슈퍼파이널에서 무려 1위를 기록해 총 60점을 획득하며 종합 2위를 기록했다.[9] 약 5개월 후 열린 2차 선발전에서는 유력한 선발 후보였던 이승재가 부진하며 탈락한 가운데, 서호진은 각종 운과 인생경기를 펼쳐서 무려 안현수보다 윗순위인 1위로 선발이 되었다. 당시의 선발전 순위를 보면 올림픽의 개인전 출전을 할수 있는 자격은 충분히 되었다.[10] 하지만 당시에는 빙상연맹 고위 관계자들이 정하는 선수 특별 추천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의 개인종목 모두의 출전권은 2005-06 토리노 올림픽 시즌 빙상연맹 특별추천선수였던 이호석이 얻게되었다. 그리고 2006년 올림픽 500m의 개인전 출전권은 송석우가 뛰기로 되어 있었는데 올림픽 당시 송석우의 스케이트 날의 문제로 서호진에게 출전권이 갔다. 이와 관련해서 당시 약간의 논란이 있었고, 이준호 전 쇼트트랙 코치이자 해설가를 통해 2014년 다시한번 이때의 출전권과 스케이트 날 문제가 언급되기도 하였으나 진실은 알수 없다. 선발전 순위로만 보면 서호진이 500m를 뛰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단, 송석우가 500m에서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냈었기 때문에 서호진처럼 예선탈락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은 서호진 대신 선발전 후순위였던 오세종이 얻었다.

2006년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다음과 같이 이때의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1 #2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 때문에 탈락한 것도 아쉬웠지만 네티즌들의 추측성 댓글에 마음이 아팠다. 서호진이 비난 받는 상황에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는 출전을 양보한 송석우다. 송석우는 '정말 제가 출전할 여건이 되지 못해서 출전하지 못했던 것 뿐인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호진이의 성적도 좋지 못해 속상하다'고 말했다

2.4.2. 월드컵 시리즈

1차에서는 모든 개인전 종목에 출전했으나 전 개인종목 결승 진출 실패한다. 3차에서는 1500m에만 출전해 결승 진출했으나 마지막 순위인 6위를 기록한다. 4차 월드컵 1500m 준결승에서는 니콜라 로디가리 러스티 스미스 등을 만나 고전했고 5위를 기록해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최종적으로 개인전에서 단 한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한다. 계주에서는 안현수 이외에도 이호석의 합류로 막강해진 전력 덕분에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획득했다.

2.4.3.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500m가 주종목이며 출전이 유력해 보였던 송석우 대신 서호진이 출전하게 된다.[11] 예선에서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와 만나 고전이 예상되었지만, 서호진의 라인 배정은 2번, 트랑블레는 4번이라 승산이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1번 자리에서 1위로 튀어나간 데라오 사토루에 이어 서호진은 2위로 레이스를 시작해 스타트를 좋게 끊었다. 그러나 3바퀴가 남았던 상황에서 아웃코스로 크게 타며 추월을 노려봤지만 속도가 제대로 붙지 않아 선두로 치고 나가는데 실패하고, 마지막 바퀴에서 결국 트랑블레에게 추월당하는 과정에서 임페딩을 범했고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실격당하며 조기 탈락했다.
5000m 계주 준결승에 3번 주자로 출전한다. 4번 주자인 오세종이 초반에 넘어지는 바람에 앞서가던 캐나다와 독일과 많은 격차가 벌어지고 만다. 중간중간에는 오세종과 터치하는 과정에서 불안한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고 이호석 안현수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결승에도 못 올라갈 뻔했다.

5000m 계주 결승[12]에서는 다시 한번 3번 주자로 출전했는데, 제대로 팀의 구멍 역할을 하며 송석우가 추격하여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주고 안현수가 역전하고 캐나다와의 격차를 벌려줄 때 그 차이를 계속 줄여주고 심지어 뒤집혀주는데 공헌을 한다[13] 그나마 4번 주자로 나온 이호석이 이를 잘 커버를 해주었기에 망정이다. 이후 송석우가 캐나다 선수의 푸싱으로 넘어질 뻔한 것을 근성으로 버텨내고 거리차를 만회해주는 분투를 해주고 이어서 2번 주자이자 마지막 주자였던 안현수의 원맨쇼 덕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여하튼 자신이 폭행했던 후배 덕분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군면제도 받았다. 한마디로 계주 경기를 하면서 그 엉성한 스케이팅으로 넘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 엄청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실력도 형편이 없어서 승부조작이나 요구하는 기량으로 부조리하게 뇌물과 빽으로 쇼트트랙 최강국의 대표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해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부끄러운 인간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이 문서에서 그의 스케이팅에 대해 '마치 1990년대에서 활동하던 선수가 21세기로 타임머신 타고 온듯한 구식 스케이팅'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본인 말로는 안현수와는 토리노 동계올림픽 시작 전에 화해했다고 카더라. 진실은 저 너머에 자기가 일방적으로 패놓고 화해했다는 인성[14] 안현수가 인터뷰에서 계주가 끝나고 한국 선수들이 안현수한테 다가가서 부둥켜 안으며 '한 형'이 자신한테 '고맙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승에서 같이 계주를 뛴 서호진 아니면 송석우라는 말이 된다. 사실 송석우 문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쪽은 안현수와는 나쁜 사이도 아니고 오히려 괜찮다고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안현수가 러시아로 떠나기 전, 그리고 소치 올림픽 이후에 했던 인터뷰에서 두번 모두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하거나 답한 걸 보면 제대로 화해를 했다고 (혹은 빅토르 안이 용서했다고) 보긴 어려울듯 하다. 진짜로 화해를 했다면, 이렇게 서호진의 행태를 폭로하는 발언을 했을 리가 없다.

이후 세계선수권에서는 계주 경기에만 참가했지만 결승에서 한국이 실격당하며 그의 커리어 마지막 국제 대회를 메달 없이 마쳤다. 그는 2005-06시즌을 끝으로 송석우와 함께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15], 몇년 간 더 선수 생활을 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병역 혜택을 받으면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예비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34개월 간 예술체육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훈련을 받고 나서 34개월 간은 무조건 선수 생활 또는 지도자 생활 등 해당 종목과 관련된 일에 종사해야 한다. 그래서 곧바로 은퇴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 경희대학교 졸업반이였다. 곧바로 강릉시청에 입단했다. 2006년 9월 2006-07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예상했던대로 떨어졌다. 서울시청으로 팀을 옮긴 후, 다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으나 역시 뽑히지 못했다. 그 후로도 서울시청 소속 일반부 선수로 계속 동계체전 등 여러 대회에 나갔지만, 국가대표는 아니라서 국제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2009-10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떨어진 후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고향 대구광역시로 내려가 바로 부친의 인쇄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쇼트트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면 대구·경북에서 무척 잘 나가는 대형 인쇄회사다. 원래부터 집안이 금수저나 다름 없었다고 한다.

이로써 사실상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되는가 싶었는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를 하고 재기한 이후 부정적인 쪽으로 주목을 받았다.

2014년 2월 18일, 위의 논란에 대한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그는 구타에 대한 소문이 모두 악질적인 루머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인터넷 상의 '자기가 안현수를 구타했다.' 등의 '루머'에 대한 삭제 요청을 하고 자기 때문에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유포자를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그는 "폭행설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설령 8시간을 폭행한다고 해서 그걸 받아들일 후배는 없다. 선, 후배 관계에서 할 수 있는 그런 체벌의 수준 정도다. 8시간 동안 감금 폭행을 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했는데, 안현수가 왜 조국을 떠나서 러시아로 귀화를 선택했는지, 귀화 후 방송에서 서호진의 행태를 폭로까지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기가 막힐 변명이나 다름 없으며 여전히 뉘우치는 눈빛조차 없다. 이 때문에 안현수가 중국 대표팀 코치 활동이나 은퇴 후 한국 복귀를 시도하는 등 국적 관련으로 계속해서 논란이 되었음에도 서호진이 재평가를 받는 일은 없었다.

4. 수상 기록

4.1. 주요 국제대회 성적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06 토리노 5000m 계주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은메달 2005 베이징 5000m 계주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4 베이징 단체전
금메달 2006 몬트리올 단체전
은메달 2005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체전
파일:FISU 로고.svg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3 타르비시오 5000m 계주
금메달 2005 인스브루크 5000m 계주
은메달 2005 인스브루크 500m
은메달 2005 인스브루크 1000m
은메달 2005 인스브루크 3000m
동메달 2005 인스브루크 15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1위 2002 춘천 1500m S.F.
은메달 2002 춘천 종합
동메달 2002 춘천 1000m
동메달 2002 춘천 1500m

4.2. 월드컵 성적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수상 기록
월드컵 메달 포디움
5000 m 계주 5 1 1 7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랭킹[16]
시즌 종합 500 m 1000 m 1500 m
99-2000 30위 28위 38위 36위
2000-01 43위 47위 29위 40위
2005-06 63위 76위 - 22위
랭킹기록 80% 기준 표기[17]


[1] 대구광역시. [2] 석사 학위 논문: 우수 남자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의 주요관절별 등속성 근기능 발달 특성 (2008. 11.) [3] 박사 학위 논문: 무도체육관 수련생의 선택속성이 수련만족과 재등록의도에 미치는 영향 (2023. 08.) [4] 500m가 주종목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주종목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세계 무대에서 전혀 경쟁을 할 정도의 실력은 결코 아니었고, 국내에서 그나마 강자축에 속했다. 다른 한국 선수들처럼 1000m, 1500m가 주종목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사실 주종목을 딱히 언급하기에도 종목을 불문하고 실력이 굉장히 부족했다. [5] 2002년 올림픽 추천선수로 안현수를 전명규가 발탁한것으로 잘못알려져 있는데, 전명규는 빙상연맹 회장 박성인과 비한체대의 수장 유태욱에게 소개받았던 안현수를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직관한후 올림픽 개인전 멤버로 발탁시킨거였지, 애초에 결원이 생겼을때 안현수를 대표팀에 추천한것은 박성인과 비한체대의 수장인 유태욱이었다. 유태욱은 전명규와 함께 1세대 지도자이며, 쇼트트랙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면서 한체대를 대표했던 전명규와 대척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지도선수는 이호석과 진선유, 성시백이며, 김현곤 김민정도 그의 지도를 받았다. 2010년 벤쿠버 올림픽 당시 빙상연맹의 쇼트트랙 담당 부회장이었다. [6] 당시의 빙상연맹 추천 특별선발 선수는 김민정, 김현곤, 고기현이다. 그리고 당시의 빙상연맹 부회장 편아무개이다. [7] 다들 알다시피 안현수는 이름을 말하지 않고 '선배'라고 한다. [8] 서호진의 집안은 금수저 집안이다. 단, 유니버시아드는 군면제 혜택은 없으나 연금포인트는 아시안 게임과 같다. [9] 3위를 기록한 이호석과는 무려 11점차, 선발전 우승을 차지한 이승재와는 단 4점차였다. [10] 당시 500m의 출전권은 3장이었고, 1000m와 1500m의 출전권은 2장이었다. 선발전 순위로만 따진다면 안현수를 제외한 오세종과 서호진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의 개인전 출전 자격이 되었다. [11] 1500m와 1000m는 올림픽 출전권이 2장밖에 없었기에 안현수 이호석만 출전했으나, 500m만 출전권이 3장이었기에 서호진의 출전이 가능했다. [12] 500m와 같은날 치러졌다. [13] 게다가 상대가 하필이면 당시 캐나다 대표팀 에이스였던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였다. 물론 다른 캐나다 주자였어도 서호진에게 우위를 점했을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14] 서호진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상황에서는 화해가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 게 옳은 것이다. [15] 사실 송석우도 바로 은퇴한 것은 아니고, 2006-07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정상적으로 참가했다. [16] 월드컵 랭킹 표기는 랭킹 20위까지 표기를 기준으로 한다. 20위를 넘는 성적은 전체 커리어의 상위 80%를 기준으로 기재한다. [17] 랭킹 표기: 출전을 거부했던 김동성 대신 출전했던 2003-04 6차 월드컵 1000 m 결과만 있는 2003-04 시즌을 제외한 전체 랭킹 기록 13개의 85%인 11개까지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