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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4-19 19:52:06

서채순



1. 개요2. 생애3. 장의위원회 구성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박금철의 아내.

2. 생애

1912년 함경북도 김책시 호통리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박금철과 결혼 이후 항일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31년부터 반일운동에 가담, 1933년에 갑산군에서 부녀회에 참가하여 계몽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1935년 갑산공작위원회가 결성되면서 그 산하 부녀회원으로 활동했고 이것이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발전한 후 부녀회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비밀연락 임무 및 출판사업에 필요한 기자재와 문헌 조달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1937년 10월, 남편이 체포된 후에 같이 검거되었으나 자백을 거부하였고 종신형이 선고된 남편 박금철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여 나중에 그녀의 충절을 찬양하는 영화 <일편단심>이 제작되기도 했다. 해방 후 평양시 여맹 상무위원, 여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북한의 여성운동에 참여하였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다지 활발한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그러다가 1965년 12월 16일 2시에 오랜 지병으로 인해 5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런데 이렇다할 공직도 없는 그녀를 위해 로동신문은 이례적인 큰 부고를 실었으며 그녀를 위한 국장이 거행되었다. 장의위원회 명의의 부고는 "서채순 동지는 조선 녀성 사업에 전력을 다하였으며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녀성들과 후대들을 교양하며 나라의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서채순 동지는 서거하였으나 우리 혁명 사업에 남긴 그의 업적은 길이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칭송하였다.

12월 17일, 김일성, 최용건이 화환을 보내주었으며 김일성, 리효순, 김광협, 남일, 리주연, 정준택, 박성철을 비롯하여 당정의 고위간부들이 조문하였고 북한 주재 각국 대사관도 화환을 보내왔다. 12월 18일에는 평양시 당위원장 리송운, 여맹 중앙위원장 김옥순 등이 참여한 가운데 매우 성대한 장의식이 거행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남편 박금철의 위세 덕분이었으나 박금철은 2년도 되지 않아 1967년에 숙청된다.

3. 장의위원회 구성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