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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11:39:07

서수일기

1. 개요2. 내용3. 번역4. 외부 링크

1. 개요

西繡日記. 조선 순조 22년, 1822년 3월 16일부터 동년 7월 28일까지 평안도 암행어사로 제수된 박내겸(朴來謙, 1780~1842)이 평안도 지역을 감찰하며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암행 일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서수록(西繡錄)이라고도 부른다.

경상북도 구미 출신 문신인 박래겸은 생전에 43살일 때 평안남도 암행어사직을 수행하며 그 체험을 담은 서수일기(西繡日記), 48살에 함경도 북평사(北評使) 직을 수행하며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북막일기(北幕日記), 50살에 서장관으로 심양(瀋陽)을 다녀오며 그 과정에서의 일을 기록한 심사일기(瀋使日記) 등 총 세 권의 일기를 남겼다.

이 중 서수일기는 박래겸이 1822년 3월부터 7월까지 약 4개월간 평안도 지역에서 암행어사 직무를 맡으며 기록한 일기로, 박래겸의 암행어사로서의 강직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출도 후 조사업무를 마친 저자가 고을 수령이나 순찰사가 대령한 기생과 동침을 하거나 순찰사와 더불어 배를 띄우고 유람을 다니기도 하는 등[1] 당시 부실해지고 허술해져 무너져가던 암행어사 직책에 대해서도 알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해서암행일기, 남정일기, 남행일록 등과 함께 전해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여러 암행일기 중 하나로 1800년대 시행되던 암행제도의 모습과 당대 평안도 지방의 상황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1차 사료이다.

3. 번역

2013년에 조남권과 박동욱이 번역한 책과 2015년에 오수창이 번역한 책이 있다.

4. 외부 링크



[1] 지금기준으로 보면야 말도 안될 상황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어사일을 끝내고 그 결과를 써서 이미 한양에 보냈기 때문에 그 뒤에 받는 향응(?)은 감사대상자와 감사인과의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아닌 정상적인 접대과정이었던 것이다. 물론 암행어사가 출도전에 어사임을 은근슬쩍 드러내며 저런 대접을 받았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면 당시에도 엄청난 비난을 받을 일이다. 박래겸이 스스로 어사임을 밝히기 전까지는 뇌물을 받거나 자신의 진짜신분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