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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제18대 황제
샤 자한 4세 شاه جهان چهار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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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5D23><colcolor=#fff,#fff> 이름 |
마흐무드 샤 바하두르 محمود شاه بهادر |
출생 | 1749년 |
무굴 제국 델리 붉은 요새[1] | |
사망 | 1790년 (향년 41세) |
무굴 제국 델리[2] | |
재위 기간 | 무굴 제국 황제 |
1788년 7월 31일 ~ 1788년 10월 11일 (2개월) | |
대관식 | 1788년 7월 31일 |
전임자 | 샤 알람 2세 (제17대, 1차 재위) |
후임자 | 샤 알람 2세 (제17대, 2차 재위) |
부모 | 아버지 : 아흐마드 샤 바하두르 황제(제14대, 1725 ~ 1775)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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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굴 제국의 제18대 황제. 짧은 기간 동안 쿠데타로 옹립되어 꼭두각시 황제로 살았지만 샤 알람 2세가 다시 복위에 성공하면서 살해당했다.2. 생애
샤 자한 4세가 황위에 오를 때쯤 무굴 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처참하게 망해가는 상황이었다. 황제였던 샤 알람 2세는 삽질을 반복하면서 마라타 동맹, 영국, 두라니 왕조 등 외세에 치이면서 허울좋은 얼굴마담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샤 알람 2세가 마라타 동맹을 가까이 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굴람 카디르가 반란을 일으켰다. 굴람 카디르는 샤 알람 2세와 황족들을 처절하게 모욕하고[3] 황제의 눈을 빼 장님으로 만든 후 폐위시켰다.샤 알람 2세를 쫓아낸 굴람 카디르는 그를 대신할 새로운 황제가 필요했다. 굴람 카디르가 후임 황제로 낙점한 사람이 바로 비다르 바크트 왕자였다. 아흐마드 샤 바하두르의 살아있는 후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비다르 바크트 왕자는 펀자브의 부왕으로 살다가 1754년 6월에 아버지가 신하에 의해 폐위되고 난 후 함께 살림가르 요새에 유폐된 인물이었다. 굴람 카디르는 전 황후였던 바드샤 베굼을 내세워 1788년 7월 31일에 비다르 바크트 왕자를 '샤 자한 4세'라는 왕호를 붙여 새 황제로 즉위시켰다. 물론 샤 자한 4세는 아무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고 모든 권한은 굴람 카디르가 휘둘렀다.
하지만 샤 자한 4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하고 끝난다. 마라타 동맹 신데 가문 출신의 마하다지 신데가 군대를 몰고 델리로 침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하다지 신데가 10월 16일에 델리를 공성하는 데에 성공하자 바로 쫓겨나게 된다. 굴람 카디르는 샤 자한 4세를 데리고 델리 바깥으로 도망가 미라트 요새로 후퇴했다. 절망에 빠진 굴람 카디르는 샤 자한 4세를 비롯해 포로로 잡아간 황족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마하다지 신데를 협박했지만 중간에 호위병이 그를 배신하면서 황족들마저 놔두고 쫓겨가야 했다. 12월 18일에 미라트 요새가 함락되자 그 곳에 계속 머무르던 샤 자한 4세도 다시 포박되어 살림가르 요새에 갇혔다. 샤 알람 2세는 제 정통성에 도전했던 샤 자한 4세를 꺼림칙하게 여겨 1790년에 암살자를 보내 조용히 죽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