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윌리엄 스틸 (William Steel) |
생년월일 | 1923년 5월 1일 |
사망년월일 | 1982년 5월 13일 (향년 59세) |
국적 | 스코틀랜드 |
출신지 | 데니 |
포지션 |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68cm |
소속팀 |
세인트 미렌 FC (1939-1942) 그리녹 모턴 FC (1942-1947) 더비 카운티 FC (1947-1950) 던디 FC (1950-1954) |
국가대표 | 30경기 12골 (1947-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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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스틸은 지역 청소년 팀에서 축구를 했고 1938년에는 레스터 시티 FC 유소년팀에 있었지만 그를 데려온 감독이 해고된 후 레스터에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팀을 떠났다.스틸은 세인트 미렌 FC에서 데뷔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그도 커리어를 쌓을 수 없었고 1942년에 그리녹 모턴 FC 선수가 되었다. 모턴에서 스틸은 리그가 멈춘 1946년까지 대륙을 방문했고 에디 햅굿, 맷 버스비 등 유명 선수들과도 시합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1947년, 스틸은 더비 카운티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당시 더비 카운티가 모턴에 지불한 15,500 파운드의 이적료는 영국 선수 중 최고 기록이었고 스틸은 3년간 팀내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스틸은 그에 걸맞게 나름 좋은 기록을 남겼지만 더비 팀동료과 사이가 썩 원만하지는 못했다.
스틸은 1950년에 더비 카운티를 떠나 던디 FC로 이적했는데 이때 22,500파운드로 다시 영국 축구계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던디는 1952년과 1953년에 스코티시 리그컵에서 우승했고 1954년에 은퇴했다.
2.1.2. 국가대표
스틸은 1947년부터 스코틀랜드 대표팀에 소집되었고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도 참가했다. FIFA의 파격적인 특혜로 원래 1조에서 2팀까지 1950년 월드컵 본선 진출이 가능했고 스코틀랜드는 1조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1위를 하지 못하면 본선 진출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했었고 진짜로 그렇게 하고 말았다.스틸은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30경기 출전, 12골의 기록을 남겼다.
2.2. 이후
스틸은 은퇴 이후 [[미국[]에서 거주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스틸은 작지만 단단한 체구를 가졌고 뛰어난 점프력과 예측 능력, 우아함을 갖춘 선수였다. 그는 날렵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에너지와 승부욕이 있어서 상대편 선수에게 트래시 토크도 자주 시전했다. 이는 친한 동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의 플레이가 맘에 안들면 욕설을 날렸다고 한다.4. 수상
4.1. 클럽
-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 2회: 1951-52, 1952-53( 던디 FC)
- 스코티시컵 준우승 1회: 1951-52(던디 FC)
- 렌프루셔컵 우승 1회: 1940-41( 세인트 미렌 FC)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