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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게레로/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블라디미르 게레로
1. 개요2. 몬트리올 엑스포스
2.1. 1996 시즌2.2. 1997 시즌2.3. 1998 시즌2.4. 1999 시즌2.5. 2000 시즌2.6. 2001 시즌2.7. 2002 시즌2.8. 2003 시즌
3.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3.1. 2004 시즌3.2. 2005 시즌3.3. 2006 시즌3.4. 2007 시즌3.5. 2008 시즌3.6. 2009 시즌
4. 텍사스 레인저스
4.1. 2010 시즌
5. 볼티모어 오리올스
5.1. 2011 시즌
6. 이후, 은퇴7. 연도별 성적

1. 개요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몬트리올 엑스포스

원래는 LA 다저스 캠프 소속의 선수였다. 형인 윌튼 게레로가 다저스 캠프에서 훈련받을 때, 매일 점심을 나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될 거라고 확신했고, 실제로 LA 다저스 훈련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다저스는 그의 맏형인 엘리시에 게레로의 실패를 보면서 엘리시에와 많이 닮았던 블라디미르를 잡는데 망설였고 도미니카 캠프에서 다리 부상을 당한 채로 장타를 뻥뻥 날리는 대활약을 하고도 그에게 풀타임 계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30일 계약을 제시하며 체크하겠다는 반응.

화가 난 블라미디르는 1993년 3월 1일에 몬트리올 엑스포스[1]에서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테스트 자리에서 블라디미르는 송구와 달리기만 했는데, 몬트리올의 스카우트는 그 툴을 보고 다른 테스트를 생략하고 바로 입단시키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3할을 넘는 타격을 보이며 뛰는 레벨마다 MVP를 타내면서 마이너리그를 초토화, 일찍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으로 점쳐졌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2위에 선정되었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2.1. 1996 시즌

그리고 마침내 1996년 9월 19일에 메이저리그 타석에 섰고, 5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이틀 뒤인 1996년 9월 21일 애틀랜타와의 경기에서 애틀랜타의 마무리 투수 마크 월러스를 싱대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터뜨렸다.

2.2. 1997 시즌

1997년에는 부상으로 고전하며 90경기 325타수에 그쳤지만 타율 .302 11홈런 40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2.3. 1998 시즌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풀타임 시즌을 뛰기 시작했으며 이 해에 38홈런을 기록하며 괴수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2.4. 1999 시즌

그 뒤로는 쭉 몬트리올의 주포로 군림했다. 1999년 타율 0.316 42홈런 131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투수들의 공포로 군림했다. 뛰어난 컨택 능력 때문에 온갖 코스의 공을 다 공략하는 신기를 보여주면서 위력을 떨쳤다.

2.5. 2000 시즌

2000년에는 더 미쳤는데 타율 0.345 44홈런 123타점에 OPS 1.074로 리그를 호령하며 그야말로 내셔널리그 투수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2.6. 2001 시즌

2001년에는 34홈런-37도루를 기록하며 30-30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34홈런에 그쳐 5년 연속 35홈런 이상이라는 대기록의 꿈이 무산되고 말았다. 다만, 이 시기 몬트리올이 팀 전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PO과 인연은 한번도 맺지 못했지만, 게레로의 위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2.7. 2002 시즌

2002년에는 206안타를 기록하며 안타왕을 차지했고 OPS도 1을 넘었다. 39홈런-40도루를 달성하여 2년 연속으로 30-30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런데 2002년 당시 홈런 한 개가 오심으로 인해 2루타로 판정되어(엄격하게 보자면 2루타가 맞긴 함) 아깝게 40-40 클럽에 가입하지 못하고, 이후 주루 능력이 격감했다. 인조잔디구장인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오랜 시간 뛰며 무리한 주루플레이를 자주 하다가 척추와 무릎에 무리가 가서 몸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결국 이 때문에 주루 능력이 급감한 것.

2.8. 2003 시즌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물로 성장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잡을 능력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몬트리올에게 없었고, 그는 FA가 되는 2004년 초대박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이면 FA를 앞둔 2003 시즌,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오랫동안 뛰어온 피로누적으로 인한 등 부상으로 인해 고작 112경기에서 타율 .330 25홈런 79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친 것. 부상을 안고도 이 정도 성적을 낸 것 자체는 놀라웠지만 이때의 부상은 커리어를 위협할 정도로 고질병이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런 큰 부상 경력으로 인해 몸값이 떨어졌다. 여기에 공교롭게도 2004년 FA 시장은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지나친 연봉 인플레에 대한 조정심리 때문에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다. 결국 연평균 1,500만 달러 이상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와는 달리 계약 말년에나 1,500만 달러를 받았을 정도로 나름 염가 연봉을 받고 LA 에인절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 안타까운건 딱 한시즌 지나고 나자 조정심리따위는 없었고 시장은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보다 연봉 인플레가 더 심해졌다.

3.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2004년 1월 14일에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합류했다. 계약 기간은 5년으로, 총합 7000만 달러를 받는다.

3.1. 2004 시즌

어쨌거나 2004년 에너하임 에인절스에 입단한 후에도 꾸준한 실력을 발휘하며 건재함을 과시하며 팀의 타선을 이끌어 나간다. 입단 첫 해인 2004년 129득점으로 득점왕에 오름과 동시에 156경기 0.337 39홈런 126타점 15도루 OPS .989을 기록하며 2003년의 떨어진 성적이 단순히 부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특히 9월에 타율 .371 24득점, 2루타 6개, 10홈런, 23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시즌 마지막 7경기 동안 6홈런 11 타점을 기록하면서 팀도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찾아온 상승기를 놓치지 않고, 오랜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고[2],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3]

3.2. 2005 시즌

2005년 시즌 초반에는 행크 애런, 지미 폭스, 미키 맨틀, 에디 매튜스, 하먼 킬러브루, 멜 오트, 프랭크 로빈슨, 알렉스 로드리게스, 켄 그리피 주니어 와 함께 30세 이전에 통산 300번째 홈런을 기록한 12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 뒤로도 LA 에인절스의 주포로서 맹활약하였으며,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141경기 타율 .317 32홈런 108 타점 13도루 OPS .959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시즌에도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뉴욕 양키스를 상대한 디비전시리즈에서는 .333 2도루를 기록하면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여기서 5경기 동안 20타수 1안타 타출장 모두 .050 .100 OPS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팀의 탈락을 막지 못했다.

3.3. 2006 시즌

3년차였던 2006년에는 156경기 타율 .329 156경기 33홈런 116타점 15도루 OPS .934를 기록하면서 지난 시즌 작은 부상으로 약 20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더욱 건강하게 보낸 시즌이었다. 하지만 게레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는 게레로가 에인절스에 6년 동안 머문 기간 중 유일하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시즌이 되었다. 한편, 7월 15일 경기에서 타점을 뽑아내면서 MLB 커리어 1000타점을 기록했다.

3.4. 2007 시즌

2007년부터는 주루 능력이 쇠퇴하면서 천하의 게레로도 서서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그 외에 타격은 여전했다. 그리고 올스타전 홈런더비에도 나와 503 피트짜리 홈런을 터뜨리는 등 홈런더비 우승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시즌 내내 기복없이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어 정규시즌에 15ㅔ0경기 .324 27홈런 125타점 OPS .950을 기록하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3전 전패로 광탈한 데 이어, 게레로 본인도 10타수 2안타 타율 .200을 기록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게레로는 2004-2005-2007 세 포스트시즌 모두 부진하면서, 가을 야구에 약한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많았다.

3.5. 2008 시즌

한편, 게레로는 쇠퇴한 주루 능력으로 인해 기존에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던 수비력마저 더더욱 나빠지면서 수비에 나서는 빈도가 2008년부터 서서히 줄었고 나이가 들며 점차 잔부상이 늘어서 2008년 0.303 27홈런 91타점으로 쇠퇴의 기미가 보였다.

3.6. 2009 시즌

결국 전업 지명타자로 전향한 2009년 15홈런 50타점에 그치면서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그래도 2009년에는 8월에 통산 400홈런을 기록한 데 이어, 포스트시즌에서 9경기 37타수 14안타 1홈런 7타점 .378 .425 .541이라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4]

물론 점점 하락세를 보이긴 했어도 여전히 위력적인 타자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점 성적이 하락세라는 것과 은근히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점이 팀에게 부담이 되었다. 결국 2009년 시즌이 종료된 후 에인절스는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를 영입하였고, 게레로와는 결별했다.

게레로는 에인절스에 6년간 있는 동안 올스타, 실버슬러거 4회 수상, MVP 1회 수상, 지구 우승 5회를 기록하면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4. 텍사스 레인저스

메이저리그의 많은 선수들이 꾸준한 활약을 하거나 FA로이드 등으로 FA 대박을 터뜨리기 일쑤이나, 게선생은 마가 꼈는지 FA를 앞두고 꼭 무슨 일이 터져서 연봉대박을 못쳤다. 첫 FA를 앞두고는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염가에 계약하더니 시즌이 활황세를 타고 있는 2010년에는 본인이 부진하며 돈 복을 차 버렸다. 결국 2010년 1월 11일, 2009년 대비 연봉이 1/3정도 깎이고 1년 500만 달러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4.1. 2010 시즌

텍사스도 그리 기대하지 않고 영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입은 대박이 터졌다. 서서히 기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을 비웃듯이 팀의 중심타선에 위치하여 본인의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5월 16일까지 36경기 139타수 47안타 7홈런 31타점 .338 .373 .525를 기록하고 있을만큼 부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얼마 뒤 5월 19일, 친정팀이었던 LA 에인절스 제러드 위버를 상대로 원바운드성 투구를 후려쳐 홈런을 때려내 복수혈전을 찍었다.


5월 2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는 멀티홈런을 터뜨렸다.

6월 30일, 친정팀인 LA 에인절스를 상대로 비수를 꽂았다. 우선 멀티홈런을 포함하여 총 4타수 4안타 5타점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대학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활약을 인정받아 2007년 이후 간만에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렇게 2010년 정규시즌을 타율 3할, 출루율 .345, 장타율 .496, 29홈런에 115타점으로 마무리하며 회춘에 성공한 것이다. 참고로 이 성적조차 시즌 중반까지는 출루율 4할에 장타율 5할 중반이었던 것이 체력이 고갈되며 끌어내려진 것이다.

10월 22일, 뉴욕 양키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큼지막한 2타점 적시타를 비롯 3타점 경기를 펼치며 텍사스의 첫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텍사스 레인저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생애 첫 월드시리즈를 밟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18타석 1안타 타율 .071 OPS .196으로 망해버렸다.

결국 이 문제가 발목을 잡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10년 겨울에 FA로 풀린 선수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받은 이들 중 한 명이었으나 노쇠화의 우려 때문인지 쉽게 진로를 잡지 못했다.

5. 볼티모어 오리올스

결국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800만 달러의 1년 계약을 체결하는데는 성공했다. 계약이 성사되면 볼티모어는 일단 2011년 시즌을 앞두고 꽤 위협적인 타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5.1. 2011 시즌

4월 7일 디트로이트전에서는 볼티모어 소속 첫 홈런을 터뜨렸다. 거기에다 멀티히트를 기록하였다. 이후 4월 19일과 20일에 펼쳐진 미네소타전에서는 두 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만 4월에 볼넷이 무려 단 한차례도 없었고 이 때문에 타율과 출루율이 똑같이 .269였다.

볼티모어에서의 활약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 예년만큼의 폭발력은 아니지만, 먹튀라고 불릴 정도도 아니다. 팀의 주전 지명타자로 계속해서 출전 중이다. 거기에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첫 토론토 3연전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이틀 뒤 양키스 원정에서는 4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2011년 최종 성적은 .290 .317 .416 13홈런 63타점.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모두 풀시즌을 소화한 98년 이후 가장 낮다. 그래도 기념비적인 시즌이라고 평할 수 있는 것은 11시즌 163안타를 쳐내며 통산 2590안타를 달성, 도미니칸 야구 선수중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로 등극했다![5] 지금은 그 기록이 깨졌다. [6]

6. 이후, 은퇴

그러나 2011년 이후 새 팀을 찾지 못하며 백수가 될 위기에 처했고 게레로 본인은 일본행까지 고려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2012년 5월,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부진을 거듭하더니 방출되고 말았다.

2013년 4월에는 미국 독립리그의 팀인 롱 아일랜드 덕스와 계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선수생명연장은 더이상 힘든지 은퇴를 선언했다. 게레로의 말에 의하면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두차례 수술받은 무릎때문에 더이상 선수생활 연장은 힘들다고 판단했다.

7.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6 MON 9 27 5 0 0 1 2 1 0 0 3 .232 .264 .408 .672 -0.1 -0.1
1997 90 354 98 22 2 11 44 40 3 19 39 .302 .350 .483 .833 1.5 1.8
1998 159 677 202 37 7 38 108 109 11 42 95 .324 .371 .589 .960 6.7 7.4
1999 160 674 193 37 5 42 102 131 14 55 62 .316 .378 .600 .978 4.5 4.4
2000 154 641 197 28 11 44 101 123 9 58 74 .345 .410 .664 1.074 6.2 6.0
2001 159 671 184 45 4 34 107 108 37 60 88 .307 .377 .566 .943 4.8 4.9
2002 161 709 206 37 2 39 106 111 40 84 70 .336 .417 .593 1.010 7.1 7.1
2003 112 467 130 20 3 25 71 79 9 63 53 .330 .426 .586 1.012 3.0 3.2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4 ANA
-
LAA
156 680 206 39 2 39 124 126 15 52 74 .337 .391 .598 .989 5.9 5.6
2005 141 594 165 29 2 32 95 108 13 61 48 .317 .394 .565 .959 5.3 5.7
2006 156 665 200 34 1 33 92 116 15 50 68 .329 .382 .552 .934 3.5 3.8
2007 150 660 186 45 1 27 89 125 2 71 62 .324 .403 .547 .950 3.2 4.6
2008 143 600 164 31 3 27 85 91 5 51 77 .303 .365 .521 .886 1.9 2.4
2009 100 407 113 16 1 15 59 50 2 19 56 .295 .334 .460 .794 0.5 0.7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10 TEX 152 643 178 27 1 29 83 115 4 35 60 .300 .345 .496 .841 1.1 1.8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11 BAL 145 590 163 30 1 13 60 63 2 17 56 .290 .317 .416 .733 -0.6 0.2
MLB 통산
(16시즌)
2147 9059 2590 477 46 449 1328 1496 181 737 985 .318 .379 .553 .931 54.5 59.5


[1] 지금은 새로운 구단주를 맞이하고 연고지까지 이전하여 워싱턴 내셔널스가 되었다. [2] 2002년은 와일드카드로 PO에 진출해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3] 파일:external/imgc.allpostersimages.com/vladimir-guerrero-2004-american-league-mvp.jpg [4] 이 활약 덕분에 LA 에인절스가 2009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스윕하면서 무려 1986년부터 22년간 이어진 포스트시즌 대 보스턴전 11연패 기록을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었다. [5] 2위는 삼성에서도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의 2586안타, 3위는 약을 드신 매니 라미레즈의 2574안타다. 그 분이 약을 안 먹었더라면 1위는 그 분의 것이었겠지만.. [6] 1위는 3384안타의 알버트 푸홀스, 2위는 3166안타의 아드리안 벨트레, 3위가 게레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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