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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09:01:05

뷜렌트 에켄

파일:Bülent Eken.jpg
이름 뷜렌트 에켄
(Bülent Eken)
생년월일 1923년 10월 26일
사망년월일 2016년 7월 25일 (향년 92세)
국적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출신지 메르신
포지션 수비수
신체조건 173cm
소속팀 갈라타사라이 SK (1942-1950)
US 살레르니타나 1919 (1950-1951)
팔레르모 FC (1951-1952)
갈라타사라이 SK (1952-1955)
국가대표 13경기 1골 (1948-1954)
감독 베요을루스포르 (1956-1959)
파티흐 카라귐뤼크 SK (1959-1960)
이즈미르스포르 (1960-1961)
파티흐 카라귐뤼크 SK (1961-1962)
베요을루스포르 (1962-1963)
튀르키예 대표팀 (1963)
괴즈테페 SK (1963-1964)
카르스야카 (1964)
베요글루스포르 (1964-1965)
알타이 SK (1965-1966)
베파 SK (1966)
갈라타사라이 SK (1967-1968)
아다나스포르 (1970-1971)
시바스스포르 (1972-1973)
베이코즈스포르 (1974-1975)
오르두스포르 (1975)
괴즈테페 SK (1976-1977)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감독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4.2. 감독
4.2.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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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에켄은 1942년, 갈라타사라이 SK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는데 이 결정에는 그의 형 다냘(Danyal)이 먼저 갈라타사라이에서 뛰고 있었던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에켄이 선수 생활을 할 때에는 쉬페르리그 창설 이전이라 튀르키예 축구계는 여러 지역 리그로 나뉘어서 운영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 갈라타사라이가 속해있던 이스탄불 풋볼 리그가 최고로 평가받았다. 에켄은 1942년 10월에 데뷔했고 팀내에서 점차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1948-49 시즌에 갈라타사라이는 이스탄불 풋볼 리그에서 우승했고 이것이 에켄의 선수 생활 중 유일한 우승 기록이었다.

갈라타사라이와 튀르키예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1940년대 후반 무렵에는 여러 이탈리아 클럽들이 에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에켄은 1950년, US 살레르니타나 1919에 진출해서 한 시즌을 뛰었다. 에켄은 팔레르모 FC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내고 1952년에 갈라타사라이로 돌아왔다. 갈라타사라이로 돌아온 에켄에게 팔레르모, FC 낭시 등 다른 유럽 구단들이 갈라타사라이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에켄은 갈라타사라이를 떠나지 않았다.

1954년 월드컵 이후에 갈라타사라이가 에켄을 다른 팀으로 매각하려 하자 에켄은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2.1.2. 국가대표

갈라타사라이 SK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에켄은 1948년, 튀르키예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의 데뷔 경기는 4월 24일의 그리스전이었고 1948년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에켄은 튀르키예의 2게임에 모두 출전했지만 튀르키예는 8강에서 유고슬라비아에 1:3으로 패했다.

에켄은 1949년 11월 20일의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 시리아전에서 득점을 올리며 튀르키예의 7:0 압승에 기여했다. 시리아와 최종 라운드 상대였던 오스트리아가 모두 기권해서 튀르키예는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이었지만 튀르키예 역시 소련과의 전쟁 위기가 오자 기권했다.

에켄은 이 2년간 튀르키예 대표팀의 고정 멤버였지만 1950년 이후론 대표팀과 멀어졌고 1954년 월드컵 지역 예선 스페인전이 그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다. 튀르키예는 스페인을 동전 던지기 끝에 이기고 사상 최초로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에켄도 1954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2. 감독

이탈리아에서 코칭 과정을 수료하다 중단하고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에켄은 1956년 여름에 귄뒤즈 클르츠를 대신해 갈라타사라이 SK에서 감독직을 맡을 것이라는 루머의 주인공이 되었다. 에켄은 이 루머에 대해 제안이 들어온 것은 없지만 만약 제대로 된 제안이 들어오면 받아들일 것이고 몇 주 후에 이탈리아에서 코칭 과정이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956년 8월에 갈라타사라이의 임시 감독이 되었다가 조지 딕이 감독으로 선임되자 코치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딕은 건강 이상으로 불과 4일 만에 갈라타사라이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클르츠가 그 시즌을 다시 맡게 되었다. 그리고 9월에 에켄은 갈라타사라이의 코치직을 사임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건너가 코칭 과정을 마무리지었다.

에켄은 1956년 10월, 베요을루스포르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3시즌간 팀을 맡았다. 당시 에켄은 튀르키예 축구계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축구 코칭 과정을 수료한 지도자였다.

1959년, 에켄은 파티흐 카라귐리크 SK로 팀을 옮겼는데 이는 베요을루스포르가 새로 창설된 쉬페르리그에 참가하지 않고 기존 지역 리그에 머무른 것 때문이었다. 카라귐리크는 당시 쉬페르리그에서 자금력이 꽤 좋은 팀이었지만 에켄이 8위라는 자금력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음에도 에켄에게 코치직으로 재계약을 신청했다.

1960년 10월, 에켄에게 이즈미르스포르의 감독직 제안이 들어왔다. 에켄은 이즈미르로 이사했지만 이즈미르스포르는 7위에 머물렀고 에켄은 9위팀이자 작년에 자신이 맡았던 카라귐리크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엔 에켄과 구단간에 급여 문제로 인해 다소 마찰이 있었지만 합의하고 카라귐리크의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카라귐리크가 15위로 마치자 에켄은 재계약 제안을 받을 수 없었다.

에켄은 1961-62 시즌을 마치면 베요을루스포르의 감독직을 맡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1962-63 시즌에 다시 베요을루스포르의 감독직을 맡았지만 강등을 면하는 성적에 그쳤다. 이 시기에 에켄은 튀르키예 대표팀 감독도 맡았었다. 그러나 이때 치러진 1964년 유로 예선에서 튀르키예는 이탈리아에 0:6으로 참패했고 감독은 사임한 상태였다. 에켄은 2차전을 맡았지만 0:1 패배로 스코어를 줄이는 데에만 만족해야 했고 언론으로부터 에켄의 수비적 전술은 어마어마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에켄은 1963-64 시즌에 괴즈테페 SK의 감독이 되었지만 시즌 중이던 1964년 2월에 괴즈테페에서 사임하고 카르스야카의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즌에 카르스야카는 강등당했고 에켄은 물러났다.

에켄은 1964년, 2부 리그 소속이던 베요을루스포르에 3번째로 부임했지만 승격에 실패 후 1965년에 알타이 SK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알타이는 이 시즌에 6위로 쉬페르리그를 마감했다.

에켄은 알타이의 라이벌 베파 SK의 감독이 되었지만 1966-67 시즌 개막 후 4경기에서 전패하자 바로 잘리고 말았다. 이 시즌에 휴식을 취한 에켄은 1967-68 시즌에 갈라타사라이 SK의 감독이 되었다. 당해의 갈라타사라이의 프리시즌 준비 과정은 실망스러웠지만 첫 스타트는 괜찮았다. 그러나 12월쯤 되자 팀의 경기력이 나빠졌고 갈라타사라이는 코치진에 추가 인선을 가했지만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에켄은 다른 감독으로 교체되었다.

1969년 여름, 에켄은 괴즈테페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보내면서 1970년 튀르키예 쿠파스 우승을 맛보았다. 1970년에 2부 리그 아다나스포르의 감독으로 취임한 에켄은 1970-71 시즌에 아다나스포르의 2부 리그 우승으로 쉬페르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켄은 클럽 수뇌부에 전력 강화를 위해 선수를 더 사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갈등을 빚어 감독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1971년에 에켄은 새로 승격된 기레순스포르의 감독직 취임을 놓고 팀과 조율했지만 취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1972년, 에켄은 트라브존스포르의 감독으로 취임할 뻔했지만 대신 시바스스포르의 감독이 되었고 승격에 실패하자 팀은 에켄에게 재계약 제안을 하지 않았다.

에켄은 이후 베이코즈스포르, 오르두스포르, 괴즈테페 SK의 감독직을 거쳐 말년에는 갈라타사라이의 보드진으로 일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에켄은 주로 수비수였지만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다 뛰어본 경험이 있다.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4.2. 감독

4.2.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