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사성어 | ||||||
負 | 荊 | 請 | 罪 | |||
질 부 | 가시나무 형 | 청할 청 | 허물 죄 |
2. 의미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와서, 때려 달라고 청한다.3. 설명
스스로 지은 잘못의 책임을 지고 엄한 처벌을 받기를 스스로 원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석고대죄(席藁待罪)가 있고, 육단부형(肉袒負荊)이라고도 한다.4. 출전
《사기(史記)》〈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5. 유래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혜문왕은 인상여와 염파라는 신하를 두었다. 인상여는 조나라의 보물인 화씨지벽을 진(秦)나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인물[1]로, 또 민지의 회합에서 혜문왕이 진나라 소양왕의 위협에 수모를 당할 상황에 처하였을 때, 인상여가 지모를 발휘하여 이를 막아냄으로써 조나라의 위엄을 지켰다.인상여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다. 대장군 염파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인상여가 더 높은 지위에 오른 데 불만을 품고 "나는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입을 놀린 일밖에 한 일이 없는데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고 그를 만나면 반드시 망신을 주고 말리라"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인상여는 일부러 염파를 피하였다. 그러자 인상여가 염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염파는 이를 알고 득의양양하였다.
이에 인상여의 사인(私人)들이 불평을 쏟아 놓았다. “저희가 친지를 떠나 당신을 모시는 것은 당신의 높은 의기를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염파와 동렬에 있으면서 염파가 나쁜 소리를 하고 다니는데 그가 두려워 피해 숨으시며 심히 두려워하십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이거늘, 하물며 장군이나 재상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저희는 불초하여 떠나갈까 합니다.” 인상여가 이들을 만류하며 물었다.
“그대들이 볼 때 염장군과 진왕 중 누가 더 무서운 사람인가?”
“진왕만 못하지요.”
“그런 진왕의 위엄을 상대하여 나는 궁정에서 그를 꾸짖고 그 신하들을 욕되게 했다. 내 비록 노둔하나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게 되면 형세로 보아 둘 다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급한 것을 앞세우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진왕만 못하지요.”
“그런 진왕의 위엄을 상대하여 나는 궁정에서 그를 꾸짖고 그 신하들을 욕되게 했다. 내 비록 노둔하나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마리 호랑이가 싸우게 되면 형세로 보아 둘 다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급한 것을 앞세우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염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잘못을 깨우쳐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肉袒負荊)' 인상여를 찾아가서는 "비천한 놈이 장군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벌을 주시오"라고 사죄하였다. 인상여는 염파를 환대하였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하는 문경지교를 맺게 되었다.[2]
6. 유사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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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
자신이 추천한 정안평이 조나라에 항복하자 소양왕에게 자신이 추천한 정안평이 적에게 항복했으니 진나라의 법에 따라 자신을 처벌해달라고 한다.[3] 소양왕은 오히려 그런 범수를 위로하면서 앞으로 정안평의 죄를 언급하는 자는 자신에게 개기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주위에 엄명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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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축
동생 미방이 형주공방전에서 관우와 불화하고 오나라에 항복하면서 관우 패망과 죽음의 원인이 되자, 동생을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를 결박하고 유비에게 죄를 청한다. 유비는 미방의 죄는 미축과는 관계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위로한다. 그럼에도 미축은 동생의 죄를 부끄럽게 여겼고, 홧병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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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이었지만, 이후 친일민족반역자로 변절하게 된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서 다른 친일파들이 뻔뻔하게 변명하기에 급급했지만, 최린은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잠시 민족 독립에 몸담았던 내가 이곳에 와서 반민족 행위를 재판을 받는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소에 사지를 묶고 형을 집행해 달라. 그래서 민족에 본보기로 보여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친일 행위를 시인하고 솔직한 참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