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21:05:48

베르타 벤츠


<colbgcolor=#000,#000><colcolor=#fff,#ddd> 베르타 벤츠
Bertha Benz
파일:베르타 벤츠.jpg
출생 1849년 5월 3일
뷔르템베르크 왕국 포르츠하임
사망 1944년 5월 5일
나치 독일 라덴부르크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직업 발명가

1. 개요

[clearfix]

1. 개요

독일의 발명가. 카를 벤츠의 아내이며 최초로 장거리 드라이브를 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베르타 벤츠는 자신의 물건에 자신이 없는 남편의 물건을 홍보하기 위해, 몰래 새벽에 남편의 자동차 발명품 중 하나인 모델 3(Modell 3)를 가지고 두 아들(15살인 오이겐 벤츠, 14살인 리하르트 벤츠)과 함께 만하임(Mannheim)에서 친정이 있는 포르츠하임(Pforzheim)까지 남편의 도움 없이 직접 몰고 갔다 왔다. 베르타는 1879년 12월 31일의 첫 성공까지 계속해서 남편의 시동 테스트를 지켜봤고,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도록 격려했으며, 차량의 구조와 가동 절차도 전부 숙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자동차가 당시 처음 만들어진 물건임에도 직접 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하임에서 친정인 포르츠하임까지 가는 거리는 104km, 만하임까지 되돌아오는 길은 90km의 거리였다. 현재야 100km/h로 2시간이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고속도로는커녕 자동차 전용도로라는 것이 있을 리 없었고, 근대 유럽을 다룬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듯이, 짐마차나 겨우 다니던 비포장 시골길을 털털거리며 왕복한 것이다. 게다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20km/h도 되지 않았으며, 이 자동차는 갓 개발한 제품이었고, 당연히 현대와 같은 품질 보증 공정은 안 거친 물건이라, 중간에 말썽도 많이 일어나서(브레이크 마모, 연료관 파열, 냉각수 증발, 연료 부족 등) 만하임에서 친정까지 가는 데만 편도 12시간을 몰아야 했다.

그러나 베르타도 공학적 지식이 있어서, 연료관이 막히면 머리핀으로 후벼파서 뚫고, 가터벨트를 뜯어서 점화 플러그의 전선을 절연 처리했으며, 냉각수가 다 떨어지면 일일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식혔다. 오르막길을 만나면 작은 아들에게 핸들을 맡기고, 본인은 큰 아들과 함께 차를 밀어올리는가 하면, 브레이크 패드가 닳아 없어지면 구두방에서 가죽신을 구해다 끼우는 방식으로 때웠다. 덕분에 세계 최초의 브레이크 라이닝 발명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또한 연료가 다 떨어져서 주행이 불가능해지자, 근처를 수소문하여 찾아낸 약국에서 리그로인(벤진, 석유 에테르)을 구입해서 연료를 보충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주유소는 커녕 별도의 자동차 연료로 확립된 물질도 없었다. 약국의 이름은 비스로흐(Wiesloch) 약국인데, 이 덕분에 역사상 최초의 주유소로 꼽힌다.

이 운전은 현대에 들어서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 장거리 운행'으로 인정되고 있고, 당연히 베르타 벤츠 또한 '세계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 운전 드라이버'로 꼽힌다. 베르타가 그 동안 겪은 문제점들을 들은 카를 벤츠는 이를 참고해 개량한 뒤 3마력 엔진을 탑재한 '빅토리아'를 출시하여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카를 벤츠가 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제대로 올릴 수 있게 됐다.

이후 베르타 벤츠가 당시 이동했던 경로는 현재 기념 루트로 지정됐다. 베르타 벤츠 메모리얼 루트와 비스로흐 약국. 이 일화는 벤츠 미국법인의 여성의 날 기념 광고로도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