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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6 20:19:22

발해를 꿈꾸며

1. 개요2. 매체의 반응3. 가사4. 여담

1. 개요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수록곡
발해를 꿈꾸며 아이들의 눈으로 교실 이데아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영원 널 지우려 해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위 영상은 공식 버전이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당시 '굿바이 베스트앨범' VHS에 수록되었으며 1994년 첫 발표 버전에서 두 군데가 수정되었다. 아래 영상 링크 부분 참조.

<발해를 꿈꾸며>는 서태지와 아이들 3집 타이틀곡으로 앨범의 2번 트랙이다.[1] 남북의 분단 상황을 얼른 끝내고 북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싶다는 통일을 염원하는 서태지의 마음을 담은 곡으로, 서태지가 단순히 10대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가 아닌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의식 있는 뮤지션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곡이다.

<발해를 꿈꾸며>의 공연무대에 쓰인 춤 이름은 '버터플라이 댄스'로, 당시 절정에 오른 이주노의 안무역량을 가늠케 할 수 있다. 이 댄스의 동작 중 일부는 최연제의 '끊어진 반지'라든가 2000년대 이주노 자신의 '바이오닉 주노'에서 응용되기도 했다. 회오리춤이나 하여가의 안무와는 달리 액센트가 없이 느릿느릿한, 느낌이 중요한 안무로 난이도가 있어 공연에서 유독 셋끼리 호흡이 맞지 않는 춤이기도 하다.

이제는 팬덤들도 심지어 서태지 본인도(...) 신경을 잘 안 쓰는 부분이지만, 사실 이 노래는 엄연히 부제가 붙어있다. 바로 발해의 별명이었던 '해동성국'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들어있는 가사집(부클릿)에 보면 제목 옆에 인쇄되어 있다.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할 당시 무대 뒤편에 대형 태극기를 도배하는 연출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에서 저 대형 태극기를 걸어놓은 곳이 다름 아닌 철원 노동당사로 남한에 유일하게 남은 북한 유적이란 점에서 남북화해 무드영상을 찍기엔 이 만한 장소가 없다. 판문점에서 공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2011년 MBC 평화콘서트에서는 엠블랙 미쓰에이가 그 노동당사 현관 위에 또 올라가서 발해를 꿈꾸며 커버링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포인트인 대형 태극기는 안 걸었다.


서태지는 이 곡의 녹음에 대단한 공을 들였는데 1993년 전미 세션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 피어스[4]를 비롯하여 미국의 당시 톱클래스 세션으로 중무장하고 믹싱도 매우 세심하게 작업했다. 그 결과물은 서태지와 아이들 3집 8번트랙에 이 곡의 Instrumental 버전으로 남아있는데 지금 들어도 세련된 기타 리프와 쉴 틈을 주지 않는 베이스라인을 확인해볼 수 있다.

여담으로 서태지 본인의 말에 의하면 후렴구의 합창 부분에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도 아니고 당시 코러스에 참여한 세션들도 아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끼어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녹음실 괴담.

2. 매체의 반응

1994년 문화 계간지 <리뷰> 창간호 특집으로 문화 평론가 강헌과 서태지가 대담을 했는데, 이 인터뷰에 곡에 대한 설명이 있다. 링크
강헌: 우리는 랩과 레게의 흥청거리는 측면만 수입했으며 94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홍보전략의 차원으로만 얼터너티브 록을 내세워 그 본연의 정신을 모독하는 신인밴드들도 출몰하곤 한다.
음악적인 측면만으로 한정할 때 , 시애틀을 본거지로 발흥한 얼터너티브 사운드 속엔 사이키델릭과 헤비메탈, 그리고 펑크의 핵들이 녹아 흐르고 있다.
이중 사이키델릭은 70년대 초반 신중현에 의해서 시도되다가 외풍으로 인해 중도에서 표류되었고, 펑크는 아예 수입되지도 않았다. 당신이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규정한 `발해를 꿈꾸며`를 예로 들어가 보자.

서태지: 이 곡의 최대 과제는 너댓개의 모티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새소리의 효과음에 이어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서주는 청명한 하늘의 이미지를 의도한 것인데 여기에 지저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진 첼로를 동반시킴으로써 혼돈을 노렸다.
그리고 양현석의 랩적인 멜로디가 등장하면서 급격히 메틀로 돌아서며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트윈 기타가 받치는 후렴구로 상승한다.
이는 긴장-긴장-해방의 구성을 꾀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타 애드립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을 남긴 것인데 이상의 전과정의 반복 이후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내가 이 곡을 얼터너티브라고 한 것은 이상과 같은 구성과 선율, 특히 첼로의 멜로디 라인, 연주기법 등이 정통적인 록의 노선에서 이탈해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며, 가사 또한 본격적인 얼터너티브 정신으로 충만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상황에서는 개중 그래도 몸부림친 축에 든다고 본다.

인터뷰 발췌 여담으로 인터뷰 전문은 대형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진보 매체와 보수 매체에서 모두 인터뷰에 나섰다. 당시 대표적인 진보 매체 말(잡지)에 인터뷰가 실리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인 극우 매체인 한국논단 인터뷰까지 있었다. 링크 인터뷰 제목은 <내가 통일을 노래한 이유 : 내가 치마를 입은 이유>이다.

다만, 인터뷰 내용 자체는 무난하고 교과서적이다. 그래서 억까 좌빨 논란 제조기로 악명 높던 한국논단마저도 서태지는 건드리지 않았다. 당시 인터뷰는 팬들이 열심히 타자를 쳐서 PC통신 등에서 널리 공유되었으나, 현재는 대형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다(...)

3. 가사

발해를 꿈꾸며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

한 민족의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 걸
진정 너는 알고는 있나, 전 인류가 살고 죽고
처절한 그날을 잊었던 건 아니었겠지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 줘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고 우리와 나갈 길을 찾아요
더 행복할 미래가 있어
우리에겐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이 마음 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은 것으로 큰 힘인데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
치유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 줘
갈 수 없는 길에 뿌려진 천만 인의 눈물이 있어
워! 나에겐 왜 갈 수도 올 수도 없는가[5]

저 하늘로
자유롭게
저 새들과 함께
날고 싶어[6]

우리들이 항상 바라는 것
서로가 웃고 돕고 사는 것
이젠 함께 하나를 보며 나가요

4. 여담



[1]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든 정규앨범이 그렇지만 1번 트랙은 인트로격의 "Yo! Taiji"라는 짧은 곡이 들어있다. [2] 지금으로 치면 싸이나 BTS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것과 비슷한 사건이다. [3] 2000년 평화콘서트 때 아주 짧게 앞의 두 소절을 부르긴 했지만 이건 그냥 인트로 수준이라... [4] 이 사람이 세션 맡은 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다. 여담으로 여기서 베이스 치고 있는 사람은 그의 동생인 존 피어스다. [5] 앨범의 공식 가사집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 [6] 앨범의 공식 가사집에는 이 '날고 싶어' 부분이 빠져 있다. [7] 1994. 8. 13. ~ 8. 15.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8] 유득공의 발해고 등이 교과서에 실렸다. [9] 이 곡과 함께 사용된 곡은 N.EX.T Arirang. [10] 다만 12.3.내란음모 사태 당시 우리 군이 동부전선에서 국지전 유도를 계획했다는 정황증거와 증언도 있긴 하다. 하지만 오물풍선 도발은 이와 관계없이 북한이 지속적으로 저지른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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