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도시 | |||
반다아체 Banda Ace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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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인도네시아 | ||
지역 | 아체주 | ||
면적 | 61.36 km² | ||
인구 | 252,899(2020년 측정) | ||
시장 |
Bakri Siddi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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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 | UTC+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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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단에 있는 아체 지방의 주도이자 아체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2. 역사
수마트라 끝자락에 위치한 반다 아체는 오랫동안 인도양 동부의 전략적, 교통 및 무역 허브였다. 유럽인의 기록상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292년 마르코 폴로와 그의 원정대가 이 도시를 방문 했을 때 나온 것으로, 이전에 그곳에 존재했고 아라비아와 인도에서 인도네시아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논리적인 첫 번째 기항지로 기록 된 Lamuri 왕국의 'Lambri'라고 한다. 또한 이븐 바투타는 14세기 중반에 북부 수마트라의 당시 지배적이었던 무역 왕국인 사무드라파사이 술탄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이 도시를 방문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파사이족은 15세기 초 말라카를 점령한 후 대부분의 지역을 점거한 포르투갈인과 경제여건 침체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로 설립된 아체 술탄국의 통치자 술탄 알리 무가야트시아는 1520년대에 이 지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했으며 이 지역에서 파사이 술탄국과 다른 멸종된 왕국의 유적 위에 술탄국을 세우고, 수도인 반다아체에 자신의 이름인 'Kutaraja'나 '왕의 도시'로 명했다.술탄의 오랜 통치 끝에 아체는 18세기 후반에 네덜란드 및 영국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에 말레이 반도의 아체 지역, 즉 크다와 플라우 피낭이 영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1871년 네덜란드는 아체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1873년 3월 26일 네덜란드는 공식적으로 아체에 선전포고를 했다. 네덜란드인은 그 해에 수도를 포격하고 도시에 있는 술탄의 궁전을 점령하여 아체인의 항복을 가져오려고 했다. 이 지역에서 영국인의 상당한 지원은 도시의 현대화와 요새화를 주도했으며 해안 지역이 손실되는 동안 네덜란드인은 도시의 방어를 과소 평가했다. 네덜란드 원정대의 사령관 요한 쾰러 장군도 시 주변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전사하여 첫 번째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2차 침공을 일으킨 네덜란드는 1874년 1월 반다아체를 점령했고, 1904년에는 아체 술탄국을 멸망시켜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병합했다.
이후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 아체 주의 주도가 되었다. 2004년 12월 26일에 발생한 인도양발 규모 9.3의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도시를 강타했을 때는 60,000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도시 건물의 60% 이상이 무너졌고 이후 복구되었다.
3. 관광
다소 엄숙한 분위기만 감수한다면, 반다아체는 수마트라 도시 가운데 메단, 파당과 함께 역사가 깊고 관광하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반다아체의 대표 관광지는 다음과 같다.- 바이투라만 대모스크(Mesjid Raya Baiturrahman)
- 반다아체 국립박물관(Museum Negeri Banda Aceh): 특히 아체 전통 가옥을 보여주는 루마 아체(Rumah Aceh)가 유명하다.
- 아체 쓰나미 박물관(Museum Tsunami Aceh)
- 케르크호프 묘지(Kherkhof Poetjoet): 바로 옆에 박물관이 있다.
- 구농안(Gunongan): 역사에 큰 관심이 없다면 지나쳐도 좋지만, 아체 술탄 이스칸다르 무다가 파항 공주 출신 왕비를 위해 지은 기념물이다.
- PLTD 아풍 1(PLTD Apung 1): 쓰나미 당시 해변에 있어 쓰나미가 덮쳐 해안 안쪽으로 끌려와 망가진 선박. 당시 배가 가옥과 충돌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늘날 배 자체가 기념물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