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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9:23

반고(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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班固
광무제 건무 8(32)년~화제 영평 4(92)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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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초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한서의 저자. 자(字)는 맹견(孟堅). 반표(班彪)의 아들이자 투필종군으로 유명한 서역도호 반초(班超)의 형, 식견을 갖추어 태고(大家)로 불린 반소(班昭)의 오빠, 아버지 반초의 뒤를 이어 서역경영에 종사한 반용(班勇: 반초의 3남)의 큰아버지다.

2. 생애

아버지 반표 또한 역사가로서 유명하여 반고보다 앞서 이미 『사기』의 『후전(後傳)』 65편을 편찬하였다. 광무제 건무 30(54)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반고는 부친의 유지를 이어 역사서를 편찬하였는데, 혹자가 "마음대로 나라의 역사를 개작하고 있다."는 모함을 당하여 투옥되었으나 동생 반초가 명제에게 상서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자 풀려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반고는 높게 평가되어 난대령사(蘭臺令史)로 임명되고, 뒤이어 전교비서(典校秘書)로 영전하였다. 반고는 나중에 『동관한기(東觀漢記)』의 일부가 되는 『세조본기(世祖本紀)』를 공동으로 편찬하였고, 이후 약 20년 동안 한서를 완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장제는 문학에 관심을 두어 유가 경전의 본문에 관해 개최된 백호관(白虎觀)에서의 논쟁의 경위를 반고에게 편찬하도록 지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백호통의다.

그 뒤 모친상으로 사임했다가 명제 영원(永元) 원(89)년에 장덕두황후의 오빠로서 외척인 대장군 두헌(竇憲)을 따라 흉노를 정벌하였다. 이때 반고는 두헌의 대승을 기념하여 「봉연연산명(封燕然山銘)」을 써서 비석으로 남겼다.

이후 화제 영평 4(92)년, 장덕두황후의 섭정을 기반삼아 전횡을 일삼고 모반하였던 두헌이 실각하였는데, 반고 또한 두헌의 일파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모반 사건에 연좌되어 옥사하였다. 이후 『한서』의 미완성된 부분인 표와 천문지는 여동생 반소(班昭; 45년? ~ 117년?)가 완성하였다.

역사서 이외에 『백호통의』, 「양도부」, 「유통부」 등의 문학작품이 『문선』 등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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