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주광역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
자세한 내용은 박봉석(1885) 문서 참고하십시오.2. 진도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
성명 | 박봉석(朴鳳石) |
이명 | 박봉윤(朴鳳尹), 박일(朴逸), 박적(朴赤) |
생몰 | 1903년 8월 24일 ~ 1932년 4월 16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면 교동리 |
사망지 | 오사카형무소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박봉석은 1903년 8월 24일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면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갔고 1928년 11월경 일본 오사카에서 신간회 오사카지회 간사로 활동했으며, 김지배(金地培)·박종협·김우성(金又星) 등과 함께 조선적화당(朝鮮赤化黨)을 조직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서울, 인천, 개성 등지에서 조직을 확대하다가 1929년 1월 체포되었고, 1929년 10월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오사카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2년 4월 16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봉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1년에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 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봉석
성명 | 박봉석(朴奉石) |
생몰 | 1877년 3월 5일 ~ 1932년 5월 29일 |
출생지 |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
사망지 | 충청북도 괴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대통령표창 |
박봉석은 1877년 3월 5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자 괴산군 연풍면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3월 28일 연풍면에 있는 보통학교 앞에서 조세기(趙世基)와 같이 주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4월 2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이후 괴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2년 5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박봉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