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내규(朴來奎) |
성명 | 박중옥(朴中玉) |
생몰 | 1885년 7월 22일 ~ 1942년 10월 5일 |
출생지 |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묘동 |
사망지 | 충청북도 영동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내규는 1885년 7월 22일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3일 오후 2시 양강면 군중 200명과 함께 면사부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경찰관 주재소를 공격하고 순사보 김영환(金令煥)을 폭행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공소했지만 1919년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그는 고등법원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고했다.“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하여 의사 발동한 것은 범죄가 아니므로 유죄판결은 부당하여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이다.”
그러나 1919년 9월 4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었고, 결국 그는 공주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영동군 자택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2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박내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