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그레고리 |
이명 | 박그리고리, 박기석(朴基錫), 박극리(朴克利) |
생몰 | 1896년 ~ 1929년 |
출생지 | 함경북도 온성군 |
사망지 | 만주 헤이룽장성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그레고리는 1896년경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이주해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그러던 1919년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에 가담한 콜차크 정권이 징집령을 시행하자 이를 피해 달아났고, 1920년 조선인 '독립단 군대'에 가담해 조맹선 사령관에 이어 부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달네레첸스크 일대에서 백군 및 일본군에 대항해 여러 전투를 치렀고, 1921년 3월 아무르 지역으로 이동해 사할린의 대한의용군 부대와 합세했다.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으로 대한의용군이 와해될 때 투옥되어 1년간 구금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이후 연해주 이만으로 돌아가 대한의용군사회를 재건하고 한인무장부대를 건립했다. 이후 1922년 4월 그로데코보 부근에서 만주에 있는 백군이 러시아 국경에 진입하는 걸 방어하는 전투에 참여했다.
박그레고리는 1922년 6월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가 합동하여 고려중앙정청이 결성되었을 때 위원에 선임되었다. 이후 소련군에서 근무했으나 1929년 중동로 사건 이후 벌어진 봉소전쟁에 참전해 소련군 중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박그레고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