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토스 왕에 대한 내용은 미트리다테스 4세(폰토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5D3462 0%, #611594 20%, #611594 80%, #5D3462); color: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아르사케스 1세 | 아르사케스 2세 | 프리아파티오스 | |
제4대 | 제5대 | 제6대 | |
프라아테스 1세 | 미트리다테스 1세 | 프라아테스 2세 | |
제7대 | 제8대 | 제9대 | |
아르타바노스 1세 | 미트리다테스 2세 | 고타르제스 1세 |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미트리다테스 3세 | 오로데스 1세 | 시나트로케스 1세 |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프라아테스 3세 | 미트리다테스 4세 | 오로데스 2세 |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
파코로스 1세 | 프라아테스 4세 | 티리다테스 1세 | |
제19대 | 제20대 | 제21대 | |
프라아테스 5세 | 무사 | 오로데스 3세 |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
보노네스 1세 | 아르타바노스 2세 | 티리다테스 2세 | |
제25대 | 제26대 | 제27대 | |
바르다네스 1세 | 고타르제스 2세 | 메헤르다테스 | |
제28대 | 제29대 | 제30대 | |
보노네스 2세 | 볼로가세스 1세 | 바르다네스 2세 | |
제31대 | 제32대 | 제33대 | |
파코로스 2세 | 볼로가세스 2세 | 아르타바노스 3세 | |
제34대 | 제35대 | 제36대 | |
볼로가세스 3세 | 오스로에스 1세 | 파르타마스파테스 | |
제37대 | 제38대 | 제39대 | |
미트리다테스 5세 | 볼로가세스 4세 | 오스로에스 2세 | |
제40대 | 제41대 | 제42대 | |
볼로가세스 5세 | 볼로가세스 6세 | 아르타바노스 4세 | |
아케메네스 · 셀레우코스 · 사산 | }}}}}}}}}}}} |
파르티아 제국 14대 샤한샤 𐭌𐭄𐭓𐭃𐭕 | 미트리다테스 4세 |
||
제호 | 한국어 | 미트리다테스 4세 |
파르티아어 | 𐭌𐭄𐭓𐭃𐭕 | |
영어 | Mithridates IV | |
존호 | 샤한샤 | |
생몰 년도 | ? ~ 기원전 54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57년 ~ 기원전 54년 |
[clearfix]
1. 개요
파르티아의 제14대 샤한샤.2. 생애
프라아테스 3세의 아들로, 기원전 57년 형제인 오로데스 2세와 함께 아버지를 시해했다. 이후 메디아에 본거지를 두고 통치했으나, 오로데스 2세를 통치자로 추대한 귀족들에게 밀려났다. 로마 역사가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귀족들에게 잔학한 짓을 많이 해 그들의 신임을 잃고 쫓겨났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고귀한 신분에 유능한 지휘관 수레나스가 오로데스 2세가 망명지에서 돌아와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미트리다테스 4세는 시리아 총독 아울루스 가비니우스에게 망명한 뒤 로마군의 힘을 빌려 왕위를 되찾으려고 했다. 가비니우스는 분견대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까지 갔지만, 더 많은 자금을 제공한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파라오로 복위시키기로 마음먹고 이집트로 향했다.미트리다테스 4세는 오르사네스라는 고위 인사와 함께 가비니우스의 진영에 머물렀고 나바테아인과의 전투에도 참가했지만, 로마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자 단독으로 파르티아로 귀환해 바빌로니아와 셀레우키아를 공략하고 티게 여신을 묘사한 동전을 발행했다. 그러나 오로데스 2세가 곧바로 반격을 가하여 셀레우키아를 탈환했고, 뒤이어 바빌론을 포위했다. 바빌론은 오랜 포위 끝에 기근을 버티지 못하고 기원전 54년에 항복했다. 미트리다테스 4세는 자비를 구했지만, 오로데스 2세는 그를 형제가 아닌 정적으로 간주하고 가차없이 처단했다. 이후 오로데스 2세는 셀레우키아에서 미트리다테스 4세가 주조한 동전을 다시 주조해, 셀레우키아가 굴복하여 무릎을 꿇고, 자신이 오른손을 뻗어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새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