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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04 22:47:21

말라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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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란 말라예르.jpg

1. 개요2. 역사

1. 개요

페르시아어: ملایر
영어: Malayer

이란 중서부 하마단 주의 도시. 하마단에서 남쪽으로 55km, 나하반드 보즈노르드에서 각각 동북쪽과 북쪽으로 40km, 아라크에서 서북쪽으로 65km 떨어진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7만명으로, 다수의 루르인과 일부 페르시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 자체가 오래된 곳은 아니지만, 18세기 잔드 왕조의 초기 거점이자 발상지였다. 카자르 왕조 시기 본격적으로 창건된 도시는 본래 도울라타바드 (دولت آباد)라 불렸는데, 봉건적 지명이라 하여 혁명 후에 '불의 땅'이란 의미인 말라가르의 현지 발음이 말라예르로 변경되었다. 시내에는 별 볼거리가 없고, 동남쪽 20km 지점의 파리 (잔디예) 등 주변에 오래된 성채가 많다. 시가지 동남쪽에 말라예르 대학교, 동북쪽에는 아자드 이슬람 대학교 말라예르 캠퍼스가 있다.

2. 역사

서북쪽 15km 지점의 누쉬잔 유적 (추빈 성채)

사산 제국 이전부터 부근에 성채가 있었고, 바흐람 추빈은 현 시가지에 성채를 세우기도 하였다. 나하반드 전투 야즈데게르드 3세는 도주하며 두 성채 중 하나를 거쳐갔다. 중세가 지나며 일대의 협곡에는 루르인의 일파인 잔드 부족이 거주하였고, 그 수장 카림 칸은 말라예르를 거점 삼아 나하반드 하마단을 연이어 점령하더니 결국 잔드 왕조를 세우게 된다. 따라서 말라예르는 카림 칸이 쉬라즈를 수도로 삼기 전까지 사실상 잔드 조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다만 본격적인 도시가 세워진 것은 잔드 왕조를 멸한 카자르 왕조 대에 들어서 이다.

1809년 카자르 조의 2대 군주 파트 알리 샤의 아들이자 케르만샤 총독인 모하마드 알리 미르자 돌라트샤는 전 왕조의 주축이던 잔드 부족을 견제하기 위해 옛 추빈 성채와 잔드 (파리) 성채 사이에 도시를 세웠고, 그의 이름을 따서 도울라타바드로 명명되었다. 이후 도시는 돌라트샤의 동생 셰이크 알리 미르자의 영지가 되었고, 살라스 주의 치소가 되었다. 셰이크 알리 미르자는 자신의 도시에 모스크, 정원, 바자르, 수도교 등을 세워 발전시켰다. 근대 시기 말라예르는 농업, 축산업의 거점이자 카펫 등을 생산하는 수공업의 거점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