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모습. 출처
1. 개요
Mala Spiegelman (1917~2007)브와디스와프 슈피겔만(블라덱)의 후처이자 아트 슈피겔만의 계모. 블라덱의 홀로코스트 회고록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2. 일생 및 작중 행적
말라라는 이름과 전후 소련군 진공 시절 여성 수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폴란드계 유대인이 아니라 동슬라브계 유대인에 가까워 보인다. 이 사람 역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 의붓아들인 작가 아트 슈피겔만에게 블라덱의 생활에 대해 불평할 때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아우슈비츠를 겪었지만 누구도 자네 아버지 같진 않아!"라고 단정짓는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실제로 경험해 본 장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하지만 후유증이란 것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블라덱이 이상한 것이라곤 할 수 없다. 같은 전쟁에 나갔다 와서도 누군가는 평범하게 살고, 누군가는 일상생활도 못할 정신병을 얻는 것처럼. 또 쥐를 보면 블라덱의 경험이 사실 일반적인 생존자들과는 꽤나 다르다. 보통은 그냥 죽었을 고비도 여러 번 살아나오고, 같이 온 자들이 대부분 곧 죽은 수용소에서 기술을 이용해 오래 살았으니 역설적으로 가스실이 있는 곳도 가보는 등 온갖 꼴을 다 보았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같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라 해도 저마다의 처지와 경험이 다르고, 비슷한 경험이라 해도 사람마다 그 후유증이 다르므로 말라의 이 발언을 단순히 '블라덱이 이상하다, 엄살 피우는 것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틀린 소리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중 말라의 발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본작의 주제 중에는 '피해자로써의 과거를 가진 블라덱이 이제는 자기 주변 인물들에 대한 가해자가 되어' 자식인 아티조차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 아버지는 반유대주의자들이 말하는 부정적인 유대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블라덱의 과거에 대해 공감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현재의 블라덱이 보여주는 모습은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문제는 블라덱의 참혹했던 과거가 현재의 블라덱에게 아주 강력한 영구 까방권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아주 심성이 독한 사람이 아니라면 '홀로코스트에서 거의 모든 가족을 잃고 자신도 온갖 고난끝에 겨우 살아남았으며, 겨우 함께 살아남은 아내마저도 우울증에 시달리던 끝에 자살로 잃은 노인'이 무경우한 행동으로 자신을 화나게 한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화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블라덱 자신도 이를 아주 잘 알고, 슈퍼에서 먹다남은 시리얼을 억지로 환불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에까지 이 까방권을 써먹고 있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블라덱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부담없이 지적할 수 있는 인물은 '블라덱과 같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했고, 현재는 블라덱의 억지와 비정상적인 행태를 참아내며 블라덱을 돌봐주고 있는' 말라 정도밖에 없다. 세부적인 부분에서야 어쨌건 블라덱과 동급의 경험을 가진 말라이기에 블라덱의 까방권을 뚫고 "그가 겪은 고통은 나도 알지만, 그것이 지금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해도 좋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 본작은 블라덱의 증언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나도 아우슈비츠를 겪었고 내 주변 사람들도 겪었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말라의 시선을 더함으로써 블라덱의 경험이 단지 그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시대적 참극이었다는 것, 그렇다고 블라덱이 겪은 과거의 고통이 지금 블라덱의 잘못을 가려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어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1]
아냐의 옛 친구이기도 하지만, 블라덱과 달리 큰 정신적 문제는 없다. 블라덱한테 들들 볶이지만 않으면.
블라덱의 첫번째 아내 아냐 슈피겔만이 자살한 후 슈피겔만 가문의 일을 돌봐주다가 둘 다 나이든 독신인 것도 있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해서[2] 블라덱과 재혼한다. 그러나 노랭이인 블라덱은 (말라의 말에 따르면) 말라를 ' 하녀나 간호사 내지는 더 심하게 취급'했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3] 심지어 결혼한 직후에 옷이 필요하다고 하니 죽은 전처 아냐의 옷을 보여주며 "이게 다 당신 거야"라고 했다고.
결국 히스테리가 조금씩 심해지다가,[5] '숨통 좀 트려고' 미용실에 가는 문제 등으로 작중에서 블라덱과 종종 싸운다. 결국에는 그의 재산을 갖고 도망치기에 이른다.[6][7] 그래도 돈 욕심만으로 결혼한 것도 아닌지 결국엔 돌아와서 위독한 블라덱을 돕게 된다. 돌아가자마자 내가 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하지만.[8]
사실 돈 욕심이 진짜 강한지는 미지수. 블라덱은 작중 내내 말라가 재산을 털어가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티는 딱 잘라 '말라는 안 그래요.'라고 말한다. 블라덱이 현재 시점에선 워낙에 노랭이인지라, 블라덱 사후의 생계를 위해 적정한 선을 요구하는 것뿐인데 그게 욕심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군다나 상술했듯 머리빗 하나 사는 것도 용납을 안하니 돈 문제에 더더욱 한이 맺힐 만도 하다(...).[9][10]
아티와의 관계는 좋고 서로를 이해하는 편. 사실 아티 입장에서는 완전히 구세주 수준의 인물로, 아냐의 자살 이후 아티가 블라덱을 책임져야 했다면 부자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치달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작중 아티가 블라덱을 걱정하긴 하지만 자기 체면과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것만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될 일이라고 완강하게 버틸 정도로 아버지를 못 견뎌한다. 그나마 떨어져 지내면서 관계도 회복되고 쥐라는 만화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아티는 블라덱의 재산 상당량을 말라에게 떼어주는 것도 전혀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티에게 선별 이후 끌려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증언해주기도 했고,[11] 작가의 서문에 말라에게 감사한다는 글도 쓰여져 있다. 아티는 자기가 아버지한테 시달리면서 자라서인지 가출한 말라를 되려 이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자신의 아내인 프랑소와즈가 '말라가 도망간 것 때문에 아버지 신경이 예민해지신 것 같다'고 하자 하는 말이 '그 반대야. 아버지가 너무 신경질적이라 말라가 도망간 거지.'라고 할 정도. 말라도 예술을 돈도 안 되는 일로 평가 절하하는 블라덱[12]과는 달리 지옥 혹성의 죄수를 비롯한 아티의 작업을 높이 평가하는 등,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여준다. 말라의 친척이 만화를 좋아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책 서문에 나오듯 폴란드어 자료들을 번역, 전달하여 아티를 돕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아티는 말라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쓰지 않았다.[13]
블라덱 사후( 1982년) 한참 뒤인 2007년에 사망했다. 향년 90세.
[1]
여담으로 이 작품에서 블라덱에 대해 비판적인 혹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아냐의 친척이자 마찬가지로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롤렉 질버베르크이다. 아트의 회고에 따르면 롤렉은 아냐하고는 사이가 괜찮았다고 한다. 다만 블라덱도 있고 아냐의 정신적 문제 때문이었는지 의지처가 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
블라덱의 변호사 말에 따르면 돈 욕심이 있는 것 같다고. 물론 이 대사는 순전히 블라덱의 시점.
[3]
블라덱이 식료품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비를 주지 않아 자신의 저금을 까먹기도 한다.
[4]
말라는 이를 두고 블라덱이 자신과 결혼한건 아냐와 옷 사이즈가 같아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소리를 했다.
[5]
아티가 어머니 일기를 찾는 와중에 서재를 어지르자 하나도 빼놓지 말고 본디 자리로 돌려두라고 빽 소리지른다. 안 그러면 끊임 없는 잔소리를 듣게 된다고 말했다.
[6]
하지만 블라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심지어 아들인 아티마저도 '그럴 만도 하지'라는 반응이었다.
[7]
이 때 아티는 아내에게 '난 두 사람이 대충 화해하고 다시 서로에게 불행을 안겨주길 바래.'라는 후레자식 발언을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같이 살기 싫어서... 그래도 사정을 보면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블라덱을 매우 싫어하는 아티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8]
아티의 후레자식 발언도 아마 이 지점을 의미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한 말라는 저 얘기 외에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날 꽉 붙잡던걸."이라고 이야기한다.
[9]
작중 언급을 보아하면 블라덱은 부동산을 제외해도 재산이 20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나중에 블라덱 자신의 거동이 불편해지고 나서야 유산을 10만 달러로 '올려' 준다고 언급한다. 블라덱 말대로 돈 욕심이 있었다기보단 애초에 진짜로 적은 액수만 주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10]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70년대의 20만 달러는 2020년 기준으로 6배 이상이며, 구매력과 경제상황을 생각하면 그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즉, 블라덱은 현대기준으론 백만장자면서도 머리빗 하나 안 사주는 천하의 노랭이다. 게다가 고작 시리얼 한 상자를 자기 못 먹는다고 개봉된 걸 환불해달라며 가게에서 난리를 치거나, 공중화장실 휴지를 죄다 뜯어와서 냅킨과 티슈로 쓰고,
성냥 아깝다고 가스불을 하루 종일 키며(가스불은 집세에 포함된 거라 공짜라나), 그 성냥도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호텔에서 가져온 거다. 이런 작자와 같이 사는 것만으로도 대인.
[11]
말라의 어머니가 선별 당일 왼쪽, 즉 수용소로 끌려갈 인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사람들은 일종의 감옥이었던 작은 아파트 네 채로 끌려가 수천 명이 그 안에 갇히고 말았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은 창에서 뛰어내려 자살까지 시도했으며, 말라는 자기 삼촌이 운 좋게 유태인 위원회에 있어서 그 곳에서 오물 닦는 일을 하면서 간신히 어머니를 그 곳에서 빼돌릴 수 있었지만 결국 그것도 헛수고가 돼서 부모님은 두 분 다 아우슈비츠에서 돌아가셨다고.
[12]
그래도 작중 시점에서는 아티의 직업을 인정하고 있다. 당장 쥐의 제작에도 협조하고 아티에게 '넌 훌륭한 만화가가 될 거다'라는 말도 해준다. 물론 워낙 오래 다투고 아티가 완강하게 진로를 고수해서 포기하는 것으로 끝낸 것에 가깝고, 작중 현재 시점까지도 아티가 인디 활동이 중심이던(아트는 전설적인 인디 만화잡지 RAW 출신이다. 하지만 이런 인디 만화 잡지는 아는 사람만 보는 타입이라 블라덱 눈엔 성에 안 찼을 것은 분명하다), 엄청나게 유명한 만화가는 아니라서 '말라나 너나 돈을 벌 줄을 모르고 쓰기만 잘한다'는 등 끝까지 아들의 능력을 신뢰하진 못한다.
[13]
앞서 말했듯이 말라 역시 생존자였고,
"쥐"에 대해서 의견을 많이 냈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블라덱과 아냐이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를 별로 쓰지 않았다. 다만 아예 없는 건 아니고 블라덱의 아버지가 죽음에 처해지던 분류의 과정에서 말라가 뇌물을 써서 어머니를 간신히 빼돌린 에피소드가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