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014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66번 | ||||
나카타니 진 (2002~2005) |
→ |
야마토 (2006~2010) |
→ |
타카하마 타쿠야 (2011) |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0번 | ||||
쇼다 타카히로 (2008~2010) |
→ |
야마토 (2011~2017) |
→ |
키나미 세이야 (2019~)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등번호 9번 | ||||
쿠로바네 토시키 (2014~2017) |
→ |
<colbgcolor=#009dec> 야마토 (2018~2024) |
→ |
쿄다 요타 (2025~) |
|
|
<colbgcolor=#fff><colcolor=#000> 야마토 大和 / Yamato |
|
본명 | 마에다 야마토(前田大和) |
생년월일 | 1987년 11월 5일 ([age(1987-11-05)]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가고시마현 가노야시 |
신체 | 177cm, 72kg |
출신학교 | 쇼난고교 |
포지션 | 유격수, 2루수, 중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4위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스 (2006~2017)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8~2024) |
응원가 |
한신 시절[1] 요코하마 시절[2]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야구 선수.2. 선수 경력
2.1. 한신 타이거스 시절
입단 후 3년간은 2군에서 오랜 담금질을 거쳤고[3] 2009년에서야 1군 데뷔를 하게 된다. 2011년까지는 주로 내외야 대수비나 대주자로 기용되었지만 2012년부터 출전 기회가 대폭 늘어나면서 주전으로 정착. 아카호시 노리히로가 불의의 은퇴를 당한 후 혼돈의 시기를 달리던[4]한신 외야 속에서 뛰어난 수비력으로 중견수 자리를 차지하며 입지를 굳혔다.2013년과 14년 2년간 규정타석을 도달하고 한신이 일본시리즈에 진출한 14년에는 외야수 골든글러브도 차지하는 등 수비력을 인정받으며 주전자리를 굳히는 듯 했으나 2015년부터 타격 부진에 빠지면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고, 데뷔 초창기처럼 빠른 발과 내외야 어디든 지킬 수 있는 수비력을 활용해 대수비, 대주자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2016년에도 15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결국 타격 부진을 타파하기 위해 스위치 히터 전향을 시도한다.
스위치 히터로 전향하고 맞이한 2017년에는 다시 타율을 .280까지 끌어올리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비록 규정타석을 충족하진 못했으나 스위치 히터로 전향하면서 좌우 투수를 가리지 않는 준수한 타격을 선보였기에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시즌 종료 후 시즌 도중 취득했었던 국내 FA자격을 행사했고 요코하마와의 3년 계약에 합의했다.
2.2.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시절
입단 후 유격수로 주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는 기존의 유격수였던 쿠라모토 토시히코의 수비가 매우 나빴기 때문. 스위치 히터로 괜찮은 타격까지 보여줬기에 구단이 거는 기대가 상당했지만 시즌 초반 타격 침체에 빠지는가 하면 수비에서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 쿠라모토랑 다를게 없다며 까이기도 했다. 결국 4월 8일자로 스위치 히터를 포기하고 다시 우타석에 전념하는 것을 선언했다.이후 수비에서 안정감을 되찾고 8월에는 3할 후반대의 맹타를 휘두르며 1번 타자로 정착하는 등 어느정도 반등에 성공하며 이적 후 첫 시즌을 마쳤다.
2019년에는 개인 1시즌 최다인 137경기 490타석에 들어섰지만 전년도보다 성적이 오히려 내려갔다. 하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클러치 히팅과 그럭저럭 준수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에 기여한 시즌.
2020년에는 타격이 다시 좋아지며 호조를 보였지만 9월 자신이 친 파울타구에 왼 무릎 타박상을 입고 한동안 엔트리에서 말소되며 85경기 출전에 그쳤다. 타격에서 타율 .281 4홈런으로 개인 최고 성적을 내고 있었기에 아쉬웠던 시즌.
2021년에는 2루수 출전이 잦아지는가 하면 시바타 타츠히로와의 플래툰으로 유격수 자리를 번갈아 맡고 있다. 구단에서 밀어주는 유망주 모리 케이토의 유격수 출전 비중 또한 늘어나고 있어 점점 플래툰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시즌. 시즌 후 FA자격을 재취득 했지만 선언 후 잔류를 택하며 요코하마에 남게 되었다.
2022년에도 시바타와 모리의 플래툰으로 주로 출전하였으며 찬스에 강한 점을 살려 대타로도 종종 출전했다.
30대 중반이 된 2023년, 유격수를 맡아줘야 할 젊은 선수들이 부진하면서 중견급인 쿄다 요타와 플래툰으로 유격수 자리를 양분하고 있다. 이외에도 1루 대수비를 들어가는 모습도 나오고 있다.
2024년에도 대타로 중용되긴 하였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은 아니었다. 결국 시즌 막바지 전력 외 통고를 받으며 요코하마와의 동행을 마무리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타격보단 수비에 특화된 선수이며 깡마른 체구에서 알 수 있듯 장타력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통산 타율도 2할 5푼대로 평범하고 최대 기대 타율은 2할 8푼 정도인 수준. 다만 요코하마 이적 후에는 한 시즌 최대 4홈런을 칠만큼 미약하게나마 장타력이 생겼다. 이외에는 좌투수에 강점이 있고 뜻밖의 클러치력을 종종 발휘하는 타자.수비력은 골든글러브 1회 수상(2014, 외야수)이 전부지만 현장 평가가 상당히 좋았다. 수비의 명수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을 정도로 출중한 수비력을 자랑했는데 한신 시절에는 중견수와 2루수를 주로 맡았고 요코하마 이적 후에는 유격수로 주로 출전하는 중. 센터라인의 중핵 포지션들을 고루고루 맡아온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 유틸리티 플레이어이다.
다만 요코하마 이적 후에는 수비 능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적 후 2년간은 주전 유격수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했는데 이는 요코하마 유격수들[5] 의 수비력이 얼마나 못 미더웠는지를 보여주는 꼴이나 다름 없었다. 2020년 들어서는 2루수 출전 비중도 다시 늘어나고 있는데 이제 나이도 30중반을 향해 가기 때문에 팀에서 밀어주는 코어 유망주 모리 케이토가 주전으로 정착하기 전까지 내야 준주전으로 활동하게 될 전망이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NP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6 | 한신 | 1군 기록 없음 | ||||||||||||||
2007 | ||||||||||||||||
2008 | ||||||||||||||||
2009 | 66 | 72 | 11 | 3 | 0 | 0 | 1 | 12 | 3 | 3 | 7 | .177 | .215 | .226 | .441 | |
2010 | 62 | 50 | 12 | 0 | 1 | 0 | 4 | 19 | 8 | 4 | 8 | .273 | .327 | .318 | .645 | |
2011 | 47 | 62 | 12 | 1 | 1 | 0 | 6 | 13 | 5 | 3 | 6 | .235 | .263 | .294 | .557 | |
2012 | 128 | 349 | 80 | 13 | 3 | 0 | 26 | 29 | 17 | 15 | 46 | .257 | .300 | .318 | .618 | |
2013 | 104 | 454 | 105 | 12 | 3 | 0 | 21 | 51 | 19 | 27 | 40 | .273 | .334 | .320 | .654 | |
2014 | 121 | 481 | 105 | 17 | 1 | 1 | 24 | 54 | 0 | 24 | 80 | .257 | .310 | .332 | .643 | |
2015 | 123 | 293 | 56 | 5 | 0 | 0 | 12 | 25 | 5 | 12 | 35 | .225 | .272 | .245 | .517 | |
2016 | 111 | 259 | 53 | 16 | 1 | 1 | 20 | 24 | 3 | 12 | 53 | .231 | .270 | .323 | .593 | |
2017 | 100 | 252 | 65 | 6 | 0 | 1 | 16 | 25 | 2 | 18 | 37 | .280 | .331 | .319 | .650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18 | DeNA | 113 | 435 | 96 | 24 | 3 | 2 | 27 | 54 | 10 | 24 | 73 | .244 | .293 | .335 | .628 |
2019 | 137 | 490 | 104 | 17 | 2 | 0 | 37 | 42 | 3 | 34 | 75 | .237 | .300 | .285 | .585 | |
2020 | 85 | 225 | 56 | 7 | 1 | 4 | 23 | 23 | 3 | 20 | 28 | .281 | .342 | .387 | .729 | |
2021 | 106 | 294 | 68 | 13 | 0 | 2 | 26 | 18 | 1 | 19 | 44 | .252 | .300 | .322 | .622 | |
2022 | 91 | 277 | 64 | 13 | 0 | 1 | 18 | 22 | 1 | 10 | 47 | .247 | .277 | .309 | .586 | |
2023 | 88 | 230 | 50 | 4 | 0 | 0 | 18 | 12 | 1 | 14 | 23 | .235 | .282 | .254 | .535 | |
2024 | 42 | 94 | 20 | 1 | 0 | 0 | 3 | 4 | 1 | 5 | 12 | .247 | .289 | .259 | .548 | |
NPB 통산 (19시즌) |
1524 | 4317 | 957 | 152 | 16 | 12 | 282 | 427 | 93 | 248 | 586 | .251 | .301 | .309 | .610 |
[1]
(行け 猛虎戦士 大和)
(유케 모우코 센시 야마토)
(가자 맹호전사 야마토)
誰しものこの夢のため
다레시모노 코노유메노타메
누구나 이 꿈을 위해
闘え大和 お前の使命
타타카에야마토 오마에노시메이
싸워라 야마토 너의 사명이다 [2] 敵はすぐ目の前だ 大いなる闘志燃やせ
테키와스구메노마에다 오오이나루토오시모야세
적은 곧 눈앞이다 큰 투지를 불태워라
響け和の魂 輝ける未来へ
히비케와노타마시이 카가야케루미라이에
울려퍼져라 화의 영혼 빛나는 미래로 [3] 이 시기에 등록명을 '야마토'로 변경하게 된다. [4] 아카호시의 이탈 이후 대체자로 데려온 맷 머튼은 타격은 끝내줬지만 중견수를 볼 수비력은 아니었고, 연속출장기록을 갱신해나가던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도저히 외야수비를 볼 수 없게 되자 좌익수행. 2013년에는 메이저에서 돌아온 후쿠도메 고스케가 우익수 자리를 차지하며 젊은 외야수들인 후지카와 슌스케, 시바타 코헤이, 이토 하야타 등과 야마토가 중견수 쟁탈전을 벌였다. [5] 프랜차이즈 스타 이시이 타쿠로가 팀을 떠난 뒤 요코하마는 '통한의 미스' 이시카와 타케히로, '쿠라모토 앞 안타' 쿠라모토 토시히코 등 서글픈 수비력을 가진 선수들이 2010년대까지 주전 유격수 자리를 맡았다. 라쿠텐에서 데려온 와타나베 나오토나 우치무라 켄스케처럼 센터 내야수 영입을 안한 건 아니지만 이쪽도 기대에 미치는 활약을 하지는 못했으며 야마자키 노리하루, 시라사키 히로유키 등 당시의 유격수 유망주들은 공수주에 있어 중대한 결점들이 있어 이들을 밀어내지 못했고 야마토 영입을 전후해 다 정리되었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았던게 후지타 카즈야 였는데 이쪽은 트레이드로 요코하마를 떠난 뒤 라쿠텐에 가서야 2루수로 기량이 만개.
(유케 모우코 센시 야마토)
(가자 맹호전사 야마토)
誰しものこの夢のため
다레시모노 코노유메노타메
누구나 이 꿈을 위해
闘え大和 お前の使命
타타카에야마토 오마에노시메이
싸워라 야마토 너의 사명이다 [2] 敵はすぐ目の前だ 大いなる闘志燃やせ
테키와스구메노마에다 오오이나루토오시모야세
적은 곧 눈앞이다 큰 투지를 불태워라
響け和の魂 輝ける未来へ
히비케와노타마시이 카가야케루미라이에
울려퍼져라 화의 영혼 빛나는 미래로 [3] 이 시기에 등록명을 '야마토'로 변경하게 된다. [4] 아카호시의 이탈 이후 대체자로 데려온 맷 머튼은 타격은 끝내줬지만 중견수를 볼 수비력은 아니었고, 연속출장기록을 갱신해나가던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도저히 외야수비를 볼 수 없게 되자 좌익수행. 2013년에는 메이저에서 돌아온 후쿠도메 고스케가 우익수 자리를 차지하며 젊은 외야수들인 후지카와 슌스케, 시바타 코헤이, 이토 하야타 등과 야마토가 중견수 쟁탈전을 벌였다. [5] 프랜차이즈 스타 이시이 타쿠로가 팀을 떠난 뒤 요코하마는 '통한의 미스' 이시카와 타케히로, '쿠라모토 앞 안타' 쿠라모토 토시히코 등 서글픈 수비력을 가진 선수들이 2010년대까지 주전 유격수 자리를 맡았다. 라쿠텐에서 데려온 와타나베 나오토나 우치무라 켄스케처럼 센터 내야수 영입을 안한 건 아니지만 이쪽도 기대에 미치는 활약을 하지는 못했으며 야마자키 노리하루, 시라사키 히로유키 등 당시의 유격수 유망주들은 공수주에 있어 중대한 결점들이 있어 이들을 밀어내지 못했고 야마토 영입을 전후해 다 정리되었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았던게 후지타 카즈야 였는데 이쪽은 트레이드로 요코하마를 떠난 뒤 라쿠텐에 가서야 2루수로 기량이 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