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곤잘보의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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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로드리게스 (1947~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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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곤잘보 (1951~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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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로드리게스 (1953~1954) |
이름 |
마리아 곤잘보 이팔콘 (Marià Gonzalvo i Falcon) |
생년월일 | 1922년 3월 22일 |
사망년월일 | 2007년 4월 7일 (향년 85세)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스페인 왕정복고 모예트 델바예스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169cm | 71kg |
소속팀 |
CE 에우로파 (1938-1940) FC 바르셀로나 (1940-1941) 레알 사라고사 (1941-1942) FC 바르셀로나 (1942-1955) UE 예이다 (1955-1956) CD 콘달 (1956-1957) UE 피게레스 (1957-1959) |
국가대표 | 16경기 1골 (1946-1954) |
가족 | 형 주제프 곤잘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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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마리아 곤잘보의 형제로는 같은 축구 선수였던 형 줄리오(Julio)와 주제프가 있었고 통상 줄리오는 곤잘보 Ⅰ(프리메로), 주제프는 곤잘보 Ⅱ(세군도), 마리아노는 곤잘보 Ⅲ(테르세로)로 불렸다.
2. 생애[1]
2.1. 어린 시절
곤잘보도 그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CF 몰레트에서 유스 선수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2.2. 선수 생활
2.2.1. 클럽
곤잘보는 1940년부터 FC 바르셀로나의 선수가 되었지만 그가 본격적인 바르셀로나의 멤버가 된 것은 레알 사라고사에 다녀온 1942년 이후였다. 1944년에는 작은형 주제프, 1945년에는 큰형 줄리오가 바르셀로나에 합류했고 바르셀로나에 가장 오래 남은 선수는 마리아였다.곤잘보는 13시즌동안 블라우그라나 유니폼을 입었고 리그 우승 5회,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 3회를 기록했다.
곤잘보는 1955년에 UE 예이다로 떠나며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는 1959년에 은퇴했으며 1962년에 바르셀로나 구단은 CA 페냐롤을 초청해 그의 은퇴를 기념했다.
2.2.2. 국가대표
곤잘보는 형 주제프와 함께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1950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곤잘보는 총 5경기에 출전, 스페인의 4위에 기여했다.곤잘보는 195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 참가했다. 스페인은 터키에 최종전[2]에서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곤잘보에게는 이 최종전이 그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3. 뒷이야기
- 곤잘보는 1950년, 수페르가의 비극 이후 팀 재건을 목표로 하던 토리노 FC의 이적 제안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들은 곤잘보에 800만 페세타를 들여 이적을 추진했지만 바르셀로나 보드진이 제안을 거부했다.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 라리가 우승 5회: 1944-45, 1947-48, 1948-49, 1951-52, 1952-53( FC 바르셀로나)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 3회: 1951, 1952, 1952-53(FC 바르셀로나)
- 코파 에바 두아르테 우승 3회: 1949, 1952, 1953(FC 바르셀로나)
- 라리가 준우승 3회: 1945-46, 1953-54, 1954-55(FC 바르셀로나)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준우승 1회: 1954(FC 바르셀로나)
[분류:스페인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