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11:04:37

루치오 바티스티

<colbgcolor=#000><colcolor=#fff> 루치오 바티스티
Lucio Battisti
파일:battisti-656x463-U2012863883356QH-121x95@Gazzetta-Print-Nazionale-kycH-U32201909145900ByG-656x492@Corriere-Web-Sezioni.jpg
출생 1943년 3월 5일
라치오 리에티 포조부스토네
사망 1998년 9월 9일 (향년 55세)
롬바르디아 밀라노
국적
[[이탈리아 왕국|]][[틀:국기|]][[틀:국기|]] →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장르 아트 팝, 프로크레시브 팝, 팝 록, 프로그레시브 록, 신스 팝

1. 개요2. 생애3. 디스코그래피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싱어송라이터.

1960년대 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던 뮤지션이다. 이탈리아 팝 음악계에서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사로잡으며 당시 큰 인기를 누렸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많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많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뮤지션이다.

2. 생애

라치오 북부 출신인 바티스티는 커리어 초기 부터 이탈리아 내 나폴리, 로마, 밀라노 등 주요 도시는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유럽 국가들을 전전하면서 커리어를 쌓았다고 한다. 많은 국가들과 문화들은 바티스티의 음악 스타일을 더욱 다양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모골(Mogol)[1]이라는 작사가에게 발굴되어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여러 대회에 참가하며 이름을 점차 알린 바티스티는 1969년 첫 정규 앨범 Lucio Battisti를 발매한다. 이 앨범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바티스티는 곧바로 이탈리아의 최고 뮤지션 중 한명으로 우뚝 섰고, 이후 1970년대 주기적으로 앨범을 발매하며 Il mio canto libero (1972), Il nostro caro angelo (1973) 등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탈리아 내는 물론, 빌보드에서도 1972년 바티스티를 "올해의 이탈리아인"으로 선정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 역시 쌓아나갔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바티스티의 앨범들 중 현재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을 뽑으라고 하면 바로 Anima latina (1974)라고 할 수 있을텐데,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70년대 바티스티의 앨범들 중 대중적으로는 "비교적"[2] 성공하지 못했던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바티스티가 조금 더 프로그레시브 록 적으로 작품을 접근하며 이전 작품들 보다 더욱 실험적이고, 곡 전개 면에 있어서 정말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현재는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히며, 현재까지도 많은 이탈리아 팝/록 뮤지션들에게 교본 급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바티스티는 이전에도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을 자주 하는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1980년 이후에는 더 이상 공연과 인터뷰를 통해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며, 오직 음악으로써만 소통할 것임을 선언하며 더욱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는 긴 기간 이어졌던 모골과의 협업을 끝내고, 더욱 자기에 초점을 맞춘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에 집중했다.[3] 바티스티 후기의 음악들은 점점 신스 팝에 가까워지더니 극 후반에는 거의 전자 음악에 가까운 앨범들을 발매했으며, 이 시기의 음악 스타일에는 많은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나 역시나 많은 매니아층 사이에서 사랑받는다.

1994년 앨범 Hegel을 이후로 바티스티의 새로운 음악 작품 소식은 끝이 났으며, 오랜 기간 동안 소식이 없다가 1998년 밀라노의 한 병원에서 사망 소식이 갑작스럽게 알려지며 큰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원인은 암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음악계의 큰 별이었던 바티스티의 죽음은 이탈리아 사람들로 부터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바티스티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던 뮤지션 중 한명임을 떠나,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탈리아 팝/록 음악계가 현재보다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거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뮤지션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실제로 데이비드 보위는 바티스티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명으로 손꼽기도 했으며, 이외에도 많은 세계적인 인사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고, 현재도 그의 많은 곡들이 수 많은 뮤지션들로 부터 리메이크 되는 등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바티스티의 사후, 21세기에는 바티스티의 여러 컴필레이션들이 만들어지며 미공개곡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3. 디스코그래피



[1] 본명은 줄리오 라페티(Giulio Rapetti) [2] 70년대 당시 바티스티의 인기는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바티스티의 작품들 중 비교적 성공을 못했다 해도 이탈리아 1975년 앨범 판매 순위 8위에 기록되어 있다. [3] 모골은 이 이후 수 년 동안 바티스티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