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루돌프 디젤
Rudolf Dies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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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루돌프 크리스티안 카를 디젤 Rudolf Christian Karl Diesel |
국적 |
[[독일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858년 3월 18일 |
프랑스 제2제국 파리 | |
사망 | 1913년 9월 29일 (향년 55세) |
영국 해협 | |
학력 | 뮌헨 공과대학교 졸업 |
배우자 |
마르타 플라셰 Martha Flasche |
자녀 |
오이겐 디젤 Eugen Dies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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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기계공학자. 디젤 사이클의 정립과 해당 사이클을 구동원리로 채택한 엔진인 디젤 엔진의 개발자이다.2. 생애
독일인 부모가 프랑스 파리에서 낳은 아들이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로 디젤의 가족은 독일에 정착하였고 뮌헨 공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좋아했던 그는 직업적으로는 공학자들이 흔히 걷는 길을 걸어서 디젤 엔진을 발명하기 전에도 기포 없이 투명한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였고 이것으로 명성을 얻는다. 1893년부터 1897년까지 MAN AG와 함께 식물부산물을 연료로 가동하는 압축착화 방식의 새로운 엔진을 실용화하고자 연구와 시제품을 제작하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실용화에 성공한다. 세계 각국에서 특허도 낸다. 디젤의 기술을 Sulzer와 Krupp가 라이센스를 받아가면서 디젤은 거부가 된다.디젤 엔진의 발명과 성공으로 거부가 되었고 역사에 남은 인물이지만 개인사는 불우하였다. 우울증은 디젤의 삶의 원동력을 꺾었고 결국 공장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한다. 1913년 9월 29일에 영국으로 여행을 가던 디젤은 갑자기 배에서 실종되었다. 실종 2주 뒤에 노르웨이 북해에서 디젤의 시신과 유류품이 발견되었는데 시신은 부패가 심해서 수습하지 못하고 신원 확인을 위해서 유류품만 끌어올렸다. 투신자살이 디젤의 사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디젤의 재산을 노리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미리 작성한 유서에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말이 적혔기에 투신자살이 디젤의 사인으로 확정되었다. 디젤이 작성한 유서에는 "내가 할 일이 없기에 나는 살아갈 뜻이 없다."라는 자조적이고 우울한 내용이 가득하여 디젤의 우울증이 심각하였음을 보여준다.
3. 기타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
- 우표에 그려진 엔진은 1893년에 디젤이 MAN에서 제작한 실험용 단기통 엔진이다.
- 독신으로 잘못 알려진 인물인데 결혼하여 1889년에 아들인 오이겐을 낳았다. 오이겐은 성장하여 작가로 활동하였고 아버지인 디젤에 대한 글도 서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