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F3E46,#000><colcolor=#f7f7f7,#dddddd> 로베르토 두란 Roberto Durá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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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베르토 두란 사마니에고 Roberto Durán Samaniego |
별명 |
돌주먹 Manos de Piedra("Hands of Stone") |
엘 촐로 El Chol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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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1년 6월 16일 ([age(1951-06-16)]세) |
파나마 과라레 | |
국적 |
[[파나마| ]][[틀:국기| ]][[틀:국기| ]] |
복싱 전적 | 119전 103승(70KO) 16패(4KO) |
신장/리치 | 170cm / 168cm |
체급 | 슈퍼 페더, 라이트, 라이트 웰터, 웰터, 라이트 미들, 미들, 슈퍼미들, 라이트헤비급 |
스탠스 | 오소독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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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나마의 권투선수.1970년대~1980년대 중량급을 장악한 위대한 4명의 복서인 F4 중 한명으로, 넷 중 홀로 非 흑인 선수다.
꾸준한 증량을 통해 WBA/WBC 라이트급, WBC 웰터급, WBA 슈퍼웰터급, WBC 미들급 챔피언 등 4체급을 석권했다.
2. 어린 시절
1951년 6월 16일, 파나마 과라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클라라 사마니에고는 과라레 출신이었고, 아버지 마르가리토 두란은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로베르토가 태어났을 당시 미국 육군에서 파나마에 주둔하고 있었다. 파나마 시의 "라 카사 데 피에드라" 지구에 있는 엘 초리요의 빈민가에서 자랐다. 8살의 어린 나이에 네코 데 라 과르디아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시작했다.3. 커리어
3.1. 아마추어 경력
아마추어 전적 29승 3패[1]를 기록했고, 이때 3패는 첫 3경기에서 발생한 것이다. 아마추어 경력을 마친 후 1968년 2월 16세의 나이로 프로 데뷔를 한다.3.2. 프로 경력
3.2.1. 라이트급 정복
1972년 6월 26일, 21세의 두란은 켄 뷰캐넌을 13라운드에 제압하며 WBA 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13라운드 종료 후 벨소리를 듣지 못한 두란이 계속 펀치를 내뿜자, 심판이 두란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로블로가 있었다는 챔피언의 항의가 있었지만 판정은 뒤집히지 않았다. 두란은 두 개의 스코어카드에서 8-3-1, 다른 하나에서 9-3으로 앞서고 있었다.두란 VS 켄 뷰캐넌
1972년 11월 17일, 에스테반 데 헤수스와의 논타이틀전에서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하며 프로 경력 첫 패배를 당했다. 1라운드 두란은 데 헤수스의 왼손 훅에 다운을 당했다.
1973년 4월 21일, NYSAC는 두란의 뉴욕 복싱 라이선스를 정지하고, 1972년 10월 25일에 체결한 계약내용[2]을 이행하도록 90일의 시간을 주었다. 뉴욕 위원 에드윈 둘리는 두란의 매니저 카를로스 엘레타가 두란과 뷰캐넌의 타이틀전을 논의하기 위해 7월 9일에 위원회와 회동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1973년 7월 10일, NYSAC는 로베르토 듀란을 라이트급 챔피언으로 인정하는 것을 철회했다.
1974년 3월 16일, 데 헤수스에게 당한 패배를 복수하는 데 성공한다. 두란은 2차전에서도 1라운드 왼손 훅에 다운을 당했지만 11라운드 KO로 데 헤수스를 제압하며 WBA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1978년 1월 21일, 두란은 에스테반 데 헤수스와 3차전을 벌인다. 두란은 WBC 라이트급 챔피언인 데 헤수스를 12라운드 만에 제압하며 WBA, WBC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경기는 두란의 마지막 라이트급 경기로, 이후 두란은 타이틀을 반납하고 웰터급으로 월장한다.
3.2.2. 웰터급의 황제에게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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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두란 vs 슈거 레이 레너드 |
1980년 6월 20일, 두란은 슈거 레이 레너드를 상대로 15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WBC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1980년 11월 25일, 레너드와의 2차전에서 8라운드 TKO로 패해 타이틀을 상실한다. 이 경기는 8라운드 종료 후에 두란이 "No más, no más,"라고 말하며 경기를 포기해 말이 많았다. 두란은 후에 위경련이 왔다고 밝혔지만, 레너드가 경기 중 워낙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 경기를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두란 vs 레너드 2차전. 32분 00초 시점에 두란의 "No mas"가 나온다.
1982년 1월 30일, 듀란은 WBC 슈퍼 웰터급 챔피언 윌프레드 베니테스에게 도전했지만 15라운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이후 두란은 1982년 링 매거진 "올해의 이변"으로 선정된 커클랜드 레잉과의 경기에서 10라운드 스플릿 판정패를 당하며 처음으로 2연패를 기록했다.
3.2.3. 화려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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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두란 vs 피피노 쿠에바스 |
1983년 1월 29일, '턱 분쇄기'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를 4라운드 TKO로 제압한 뒤 같은해 6월 16일에 32번째 생일을 맞은 두란은 데이비 무어를 8라운드 TKO로 제압하며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십에서 우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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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두란 vs 데이비 무어 |
3.2.4. 4체급 석권까지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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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두란 vs 마빈 해글러 |
1983년 11월 10일, 두란은 최초로 4체급 석권에 성공하기 위해 한 체급을 또 올려 당시 WBA/WBC/IBF 미들급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이었던 마빈 해글러에게 도전하였다. 이때 15라운드 판정패를 당하긴 했지만 점수차가 2점차 하나, 1점차 두 개였을 정도로 초박빙이었던 경기였다.
두란은 랭킹 1위 도전자였던 마이크 맥캘럼을 상대로 방어전을 치르지 않아 WBA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대신 1984년 6월 15일 WBC 슈퍼 웰터급 챔피언 토마스 헌즈에게 도전하지만 2라운드 만에 KO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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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두란 vs 토마스 헌즈 |
데뷔 후 이 시기까지 16년 3개월 동안 치른 경기가 82경기로 1년에 평균 5경기라는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경기를 치렀다. 챔피언에 등극한 뒤에도 2~3달 간격으로 논타이틀전을 자주 치렀으며 레너드와의 2차전, 헤글러와의 경기 후 헌즈와의 타이틀전 등 빅매치간의 경기 간격도 6개월이 안되는 등 상대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 헌즈와의 경기 후 1년 반 가량 경기를 쉬다가 1986년 1월 31일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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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두란 vs 아이란 바클리 |
1989년 2월 24일, 아이란 바클리를 상대로 12라운드 스플릿 판정승을 거두며 WBC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두란은 이 경기에서 승리하며 역대 세 번째로 4체급을 석권한 권투 선수가 되었다. 링 매거진은 이 경기를 1989년 "올해의 경기"로 선정했다.
1989년 12월 7일, WBC 슈퍼 미들급 타이틀을 걸고 슈거 레이 레너드와 3차전을 벌인다. 두란은 싸움이 끝나갈 무렵 레너드의 두 눈 위에 커팅을 내긴 했지만, 레너드에게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그의 실질적인 활약은 여기까지. 그 뒤 1991년 복귀했으나 커리어 16패 중 반타작인 8패를 91년 이후에 당했다. 91년 복귀 후의 전적은 18승 8패로 반타작 수준.
2001년 10월 4일, 50세의 듀란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고속도로에서 타고 있던 차가 추락한 후 갈비뼈 골절과 폐 붕괴를 포함한 부상을 입는다.
2002년 1월, 두란은 "더 이상 싸우러 돌아갈 수 없습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라며 은퇴를 발표했다.
4. 복싱 스타일
플레이스타일은 돌주먹(Hands Of Stone)답게 묵직한 강펀치를 바탕으로 스피드를 살려 경기 운영을 했다. 다만 강펀치는 꾸준히 유지했지만 나이가 들고 체급 월장을 시작하면서 스피드는 약간씩 느려지기는 했다. 물론 F4급을 만나야 단점이 드러나는 수준이었지 다른 선수들한테는 그 줄어든 스피드마저 수준급이었다.F4 중 체격이 가장 작은 선수로 신장은 5'7(170cm), 리치가 66(168cm)로 라이트급 정도가 알맞은 체격이지만 꾸준한 증량을 통해 WBA/WBC 라이트급, WBC 웰터급, WBA 슈퍼웰터급, WBC 미들급 챔피언 등 4체급을 석권했다.
5. 여담
- 1983년과 1989년에 링 매거진 올해의 컴백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선수는 두란이 유일하다.
- 1951년생으로 F4 중 가장 연장자이다. 해글러가 1954년생, 레너드가 1956년, 헌즈는 1958년생. 셋 중 유일하게 1960년대에 데뷔한 선수이며, 다른 세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하기도 전에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다. 일단 본래 체급부터 가장 낮았고 신체조건도 가장 불리했다. 두란의 신장은 170cm, 리치는 168cm로 185cm-199cm인 헌즈는 물론이고 176cm-188cm의 레너드나 175cm-190cm의 해글러와 비교해 보아도 열세가 확연하다.
- 나이와 신체조건의 열세 때문인지 F4와의 전적은 레너드와 1승 2패, 헌즈와 1패, 해글러와 1패로 상대적으로 밀리는 편. 하지만 ESPN 선정 올타임 랭킹에서 6위, 블리처 리포트 선정 올타임 랭킹에서 7위, 그리고 야후 스포츠 선정 올타임 랭킹에서 5위로 모두 F4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선정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복서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F4간 맞대결에서 가장 전적이 좋은 레너드에게 유일하게 1패를 빼앗아온 사람도 두란이다.
- 1999년 AP통신은 두란을 20세기 최고의 라이트급 복서이자 가장 위대한 복서 7위로 선정했다.
- 링 매거진은 2001년과 2002년 두란을 각각 역대 최고의 라이트급 복서, 지난 80년간 최고의 복서로 선정했다.
- 두란은 2006년에 세계 복싱 명예의 전당에, 2007년에는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 2016년 8월, 그의 일대기를 극화한 영화 'Hands of Stone' #이 개봉됐다. 베네주엘라의 배우 에드가 라미레즈가 두란 역, 로버트 드 니로가 트레이너 레이 아르셀 역으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