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colcolor=#fff> 로버트 체스브로 Robert Chesebroug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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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버트 어거스터스 체스브로 Robert Augustus Chesebrough |
출생 | 1837년 1월 9일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런던 | |
사망 | 1933년 9월 8일 (향년 96세) |
미국 뉴저지주 스프링레이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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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화학자, 기업인 |
자녀 | 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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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화학자, 기업인. 바세린의 개발자이다.2. 생애
대영제국 런던 출신으로 미국 뉴욕시에 이주해 그 곳에서 성장했다. 고래 기름을 연구하는 화학자로 일하다가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 있는 유전에서 노동자들이 파이프에 낀 정체불명의 찌꺼기 같은 것을 일하다가 다친 부분에 연고처럼 사용하여 치유되는 것을 보았다. 1859년에 이것을 발견하였고 수백번 실험을 통하여 이를 분리, 증류, 정제하여 바셀린 젤리라는 이름으로 1872년에 상용화하였다.1875년 체스브러 제조공업을 설립하여 바셀린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생산된 자신의 발명품을 마차에 싣고 미국 전국을 돌면서 바셀린을 팔았다. 이 때 당시 의약품이 그랬듯이 여러가지 외상에 다 통하는 반쯤 만병통치약처럼 홍보를 하고 다녔다. 그래도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바셀린의 약효를 굳게 믿고 있던 그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기 몸에 일부러 상처와 작은 화상을 내어 바셀린을 바르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시연하면서 나는 바세린을 발라 괜찮다는 반응을 하는 식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무료 샘플도 나눠주며 홍보를 했다고 한다. 그것의 샘플은 지방 의사와 주부들이 타겟되었다. 그 옛날에는 주부가 작은 응급처치는 다 할 줄 아는 시절이 였기 때문에 바세린 하나로 만능이라 사랑받는 제품이 되었다.
바셀린을 하루에 한 티스푼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세린 상용화로부터 무려 61년 후인 96세까지 장수하며 바셀린의 무독성을 온 몸으로 입증했다. 판촉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인지 점차 바셀린의 보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말년엔 유럽에까지 공장이 세워질 정도로 대중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