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자는 덕로(德魯).
가부(笳賦)를 바쳐 사도군모제주에 임명되었고 후에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 교서랑, 낭중령을 지냈으며, 승진하지 못하고 비서성에서 관직을 지낼 때 사망했다.
소림, 위탄, 하후혜, 손해 등과 함께 문장, 부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1]
관구검과 친했고 그의 글로는 증모구검(贈母丘儉)이 있는데, 완우의 은사와 함께 하나의 시로써 하나의 사실을 노래한 형식은 타파했지만 작법이 너무 기계적이고 딱딱하다는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좌사가 영사를 지으면서도 시의 체제는 근본으로 하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작법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을 뒤섞어 고금을 융합하고 연이어 비유를 끌어들여 영사시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했다고 한다.
[1]
위서21 왕위이유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