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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0:46

두목(당나라)

파일:220px-Du_Mu.jpg
杜牧
803 ~ 853

1. 개요2. 생애3. 번천문집4. 여담

1. 개요

자 목지(牧之), 호 번천(樊川). 당나라의 시인이자 학자로 우리나라에선 두목이라는 이름보다는 두목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2. 생애

경조부 만년현(京兆府 萬年縣), 현 산시성 시안시 출생. 당나라의 학자이자 관료인 두우의 손자이다. 이상은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불리며[1], 또 작품이 두보(杜甫)와 비슷하다 하여 소두(小杜)로 불린다. 26세 때 진사에 급제하여, 굉문관교서랑(宏文館校書郞)이 되고, 황주(黃州) ·지주(池州) ·목주(睦州) 등의 자사(刺史:지방장관)를 역임한 후, 벼슬이 중서사인(中書舍人)까지 올랐다. 매사에 구애받지 않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당나라의 쇠운을 만회하려고 무한히 노력하였다.

시풍은 동시대의 두보와는 달리 남성적이고 호방한 편이고 천재 시인일 뿐만 아니라 용모도 준수해서 여인들과 많은 염문을 뿌린 풍류남아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후세에도 잘생긴 미남, 시 잘짓고 풍류를 즐기는 한량 풍류남의 표상으로 흔히 언급되었다.

3. 번천문집

《번천문집(樊川文集)》이라는 저서가 있는데 이 책에서 장보고· 정연의 이야기를 다룬 『장보고· 정년전』이 실려있다. 우리역사넷에 번역본이 올라와있다.《 삼국사기》의 장보고열전 또한 이 책을 참고하였는데 아무래도 타지인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쓴 책이다 보니 신라쪽 기록과는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 《 삼국사기》 편찬자도 이를 감안해 장보고열전에는 "번천집을 참고하였는데, 신라쪽 기록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언급하였다. 장보고가 신라로 돌아간 후 당나라에는 소식이 끊어졌기 때문에, 두목의 글에는 장보고가 재상이 되었다는 말만 나오고 장보고, 정연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없다.

4. 여담

항우의 성급함을 지적한 시가 고사성어 권토중래의 유래가 됐다. 항목참조.

현대중국의 교육과정에서는 소학교에서 두목의 시 3개, 중학교에서 2개, 고등학교에서 1개를 배운다.



[1] 혹은 이백+두보를 대이두, 이상은+두목을 소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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