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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21:03:42

독안룡 마사무네(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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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 (1987)
独眼竜政宗 / Dokuganryū Masamune
파일:external/senndai-tabi.up.n.seesaa.net/01-736f4.jpg
방송 시간 매주 일요일 밤 8시 00분
방송 기간 1987년 1월 4일 ~ 1987년 12월 13일
방송 횟수 50부작
제작 파일:NHK 로고.svg 일본방송협회
채널 파일:NHK G 로고.svg NHK 종합
제작진 <colbgcolor=#1b1b23><colcolor=#FEEB8B> 제작 나카무라 카츠시(中村克史)
연출 히구치 마사히로(樋口昌弘)
극본 제임스 미키(ジェームス三木)[1][2]
음악 이케베 신이치로(池辺晋一郎)[3]
감수 다테 야스무네
원작 야마오카 소하치 《다테 마사무네》
출연 와타나베 켄, 미우라 토모카즈, 사이고 테루히코, 사쿠라다 준코, 사와구치 야스코, 사나다 히로유키, 이카리야 쵸스케
해설 카사이 세이지(葛西聖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시놉시스3. 마케팅4. 등장인물
4.1. 다테 가문
4.1.1. 마사무네와 그의 가족4.1.2. 카타쿠라 가문4.1.3. 오니니와 가문4.1.4. 엔도 가문4.1.5. 다테 가문의 가신
4.2. 모가미 가문4.3. 도요토미 가문
4.3.1. 히데요시와 그의 가족4.3.2. 히데요시의 가신
4.4. 도쿠가와 가문
4.4.1. 이에야스와 그의 가족4.4.2. 이에야스의 가신
4.5. 그 외 인물
5. 평가
5.1. 비판

[clearfix]

1. 개요

오프닝
1987년에 제작 및 방영한 NHK 대하드라마. 이 시리즈의 25번째 작품. 일본 센고쿠 시대 에도 시대의 무장 다테 마사무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1567년부터 1636년까지, 공간적 배경은 전국시대 에도 시대 당시 일본 전 지역이다.

2. 시놉시스

히데요시 이에야스도 한 눈에 둔 호기의 사나이, "독안룡"이라고 두려워해 지혜와 재치로 센다이 62만석을 일대에 만들어 낸 다테 마사무네의 생애를, 현대적인 터치로 낭만 풍부하게 그렸다. 대하드라마 역대 최고 평균 시청률 39.8%를 기록.[4]
NHK 홈페이지 소개글

3. 마케팅

파일:vol25_postcard.jpg
공식 포스터
파일:external/www.jidaigeki.com/title_201309_dokuganryu.jpg
파일:external/images.keizai.biz/1397040415_photo.jpg
홍보물 및 극중 장면

4. 등장인물

4.1. 다테 가문

4.1.1. 마사무네와 그의 가족

4.1.2. 카타쿠라 가문

4.1.3. 오니니와 가문

4.1.4. 엔도 가문

4.1.5. 다테 가문의 가신

4.2. 모가미 가문

4.3. 도요토미 가문

4.3.1. 히데요시와 그의 가족

4.3.2. 히데요시의 가신

4.4. 도쿠가와 가문

4.4.1. 이에야스와 그의 가족

4.4.2. 이에야스의 가신

4.5. 그 외 인물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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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8.4 / 10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사상 가장 히트한 작품으로, NHK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대극으로 꼽혔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테 가문을 소재로 한 시대극으로는 에도 시대의 다테 가 내부 소동을 다룬 1970년작 '전나무가 남은' 이후로 두 번째 작품이다.

방영 당시 평균 시청률 39.7%로 역대 대하드라마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톱을 자랑하며 최고 시청률은 무려 47.8%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어린 본텐마루[24]가 부동명왕 상을 보며 한 말인 "본텐마루도 이렇게 되고 싶구나(梵天丸もかくありたい)"라는 대사는 당시의 유행어 반열에 올랐고, 이후에도 쇼군에게까지 시전했던 독살 개그(...)[25]를 비롯해 '다테 가문의 명물, 정성을 담은 식사'가 개그 밈으로 정착하는 등[26] 사회현상으로까지 불거졌을 정도. 한국으로 치면 대략 허준이나 대장금 같은 빅 히트 사극과 비슷한 위상이라고 보면 된다.

2003년 NHK에서 TV 방송 50주년 기념으로 '다시 보고 싶은 그 프로그램'이라는 주제로 실시한 일반 시청자 대상 리퀘스트에서는 종합 부문 9위, 대하드라마 부문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방영된 지 한참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드라마이다. 이후 몇 차례 50화 전편이 무편집 완전판으로 재방송되기도 했다. 2020년에는 기린이 온다가 결방되고, 독안룡 마사무네가 재방송되기도 했다.

이른바 '대하드라마 버블'의 시초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방영된 1987년 당시는 한창 일본의 호황기였던 버블 경제 초기였고, 따라서 경제 호황에 취한 일본인들의 고양감이 매우 커진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마사무네의 연고지인 센다이가 정령지정도시화를 앞두고[27] 각종 지역 인프라를 구축하는가 하면, 마사무네 사후 350년을 기념해서 실시된 각종 관련 사업들[28] 등이 맞물려 유례없는 대하드라마 버블이 일게 되었다. 드라마 방영 이후 센다이 지역의 관광객 수가 무섭게 증가한 것은 물론, 독안룡 마사무네의 대히트에 자극을 받은 다른 지역 지자체들도 각자 앞다퉈 인프라를 구축하고 세트장을 건설하는 등 대하드라마 촬영 유치에 힘을 기울였지만, 상당수는 이 드라마만큼 크게 히트하지 못했음에도 무리하게 투자를 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상당수의 지자체들이 크게 피를 봤다는 후문.[29]

한편 드라마의 또다른 무대이자 모가미 요시아키의 영지였던 야마가타현 측에서는 모가미의 극중 묘사(후술)에 더해 의도가 있든 그렇지 않든 각종 이벤트가 집중된 센다이 시와 미야기 현에 관광객이 쏠리는 현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에는 야마가타 신칸센이 아직 개통되지 않았고 도로 인프라도 열악했기 때문에 야마가타 현으로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30]

특징적인 점은 오프닝 전에 실제 역사에 대한 해설이 간략하게 나온다는 것으로, 원래 이 기법은 '사자의 시대'에서 처음 도입된 전례가 있었지만 독안룡 마사무네를 계기로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비록 유골(...)이기는 하지만 대하 드라마 사상 유례가 없었던 본인 출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드라마 제작 당시 마사무네 영묘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5.1. 비판

이렇게 공전절후의 히트를 친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NHK 대하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주인공 미화와 편중된 관점 문제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고증과 자료 감수에 당시 다테 가 당주였던 다테 야스무네가 참여했던 것이 원인으로, 이 시기 다테 가는 다테 야스무네의 주도 하에 조상의 상업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 시점에 드라마 제작이 결정되었고, 이 때문에 드라마에 사용된 자료는 거의 전적으로 다테 가문 측의 자료만을 참고하게 되어 철저히 마사무네의 입장에서 극이 진행되는 편향된 드라마가 되었다.

이 때문에 마사무네의 외숙부이자 숙적인 모가미 요시아키가 실제 역사에서는 비록 모략에 능하기는 했어도 자신의 부하들과 영지의 백성, 가족들에게는 매우 따뜻하고 인간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내에서는 철저한 악역으로, 악독한 면모가 지나치게 강조된 인물로 그려지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31]

이 때문에 모가미 요시아키를 지역 영웅으로 홍보하는 야마가타 현 측에서 지역의 역사 인물을 지나치게 폄훼했다는 이유를 들어 항의했고, 이를 반영해서였는지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는 잔혹한 악당으로서의 묘사는 점차 줄어드는 대신 자신이 개입했던 비극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등 인간적인 면을 많이 조명해 주면서 시청자들의 평가가 달라지게 되었다. 특히 극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축생총 사건 이후로 모가미의 인물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로리콘 도요토미 히데츠구에게 하나뿐인 어린 딸 코마히메를 억지로 빼앗기는 굴욕[32]을 당한 것도 모자라 히데츠구의 모반 의혹에 연루되어 위기에 처하자, 딸을 살리기 위해 적이자 외조카인 마사무네의 정실 메고히메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고 애원하며 도움을 청했지만 당시 마사무네도 히데츠구와 가까웠기 때문에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모가미의 이런 노력은 사실상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끝내 코마히메가 다른 처첩들과 함께 참살당하자 자신이 권력에 굴하지만 않았어도 딸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노에 떠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동정을 사게 되어 평가가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1] 이후 대하드라마 8대 쇼군 요시무네(1995)와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2000)의 각본을 집필했다. 일본 대하드라마를 대표하는 각본가로, 그가 집필한 대하드라마는 모두 평가가 높다. 독안룡 마사무네 집필 2년 전에는 아사도라 미오츠쿠시의 각본을 담당해 시청률 40%가 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2] 제임스 미키는 본명은 야마시타 기요토모(山下清泉)로 1935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일하던 일본어 교사의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오사카에서 보냈고, 각본가가 되기 전에는 13년간 가수로 활동했는데 영화감독 노무라 요시타로(野村芳太郞)의 문하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각본가로 전직했다. 한국에는 그가 쓴 소설 가운데 <내 사랑 카사사기>, <제비>가 번역되어 있는데, 모두 한국인과 일본인 커플들이 시대의 흐름에 휘말려 이별하고 만나지 못하게 되는 비극들을 다루고 있다. 2006년 카지야마 토시유키의 소설( 임권택 감독의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 된 그 소설이다) 족보를 각본화하기도 했고 # 또한 9조 모임(九条の会) 산하의 「매스컴 9조 모임」(マスコミ九条の会)의 호소인을 맡기도 했다. [3] NHK 대하드라마 황금의 나날, 고개의 군상, 8대 쇼군 요시무네, 겐로쿠 요란의 음악을 담당했다. [4] 공식 소개글에서는 39.8%라고 적혀있지만, 실제 시청률은 39.7%다. [5] 일본무용가로 현재 이름은 8대 후지타 칸쥬로 [6]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의 고우히메 역을 맡았다. [7] 쟈니스 사무소 소속 그룹 오토코구미의 멤버. 사나다마루에서 모리 카츠나가 역을 맡았다. [8] 96년 히데요시에서 네네 역, 04년 신센구미!에서는 오키타 미츠 역을 맡았다. [9] 양평이형의 아버지.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는 가모 사토이에를 맡았다. [10] 당초에는 타키타 에이지가 캐스팅될 예정이었으나, 연극 무대 스케줄 문제로 강판되었다.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는 사나다 유키무라를, 무사시에서는 혼다 마사노부를 연기했다. 2022년 2월 20일 전립선암으로 사망. [11] 토시이에와 마츠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여자 성주 나오토라에서는 혼다 타다카츠를 맡았다. [12] 기린이 온다에서는 이나바 잇테츠를 맡았다. [13]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는 타치바나 무네시게를 맡았다. [14] 기존의 히데요시 상과 다르게 육중하며 중후한 보이스의 카츠 신타로를 캐스팅하여 천하인, 권력자로서의 히데요시 상이 부각되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담으로 대본을 무시하고 애드립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부분의 명장면은 반은 대본, 반은 애드립일 정도. [15] 군사 칸베에에서는 우키타 나오이에 •를, 기린이 온다에서는 이마이 소큐를 맡았다. [16] 배우 안도 사쿠라의 아버지. [17]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는 마츠다이라 타다요시를 맡았다. [18] 1983년작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도 사나다 유키무라 역을 맡았다. 더불어 천지인에서는 시마 사콘을 맡았다. [19] 본작에서 노련한 이미지의 이에야스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덕분에 이에야스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2000년작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도 이에야스 역을 맡았다. 다만 이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우익 성향이었기 때문에 좌익 성향의 각본가 제임스 미키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촬영에 애를 먹었다고.....라고는 하나 그 이후 8대쇼군 요시무네와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 출현한걸 보면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보기도 또 어려운듯 하다. 원래 정치적인 성향은 마주한 자리에서 드러내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함께 일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20] 1983년작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같은 역을 맡았다.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와 카케무샤 이에야스에서는 이이 나오마사를 맡았다. [21] 산토리사의 위스키 광고 모델이었던 그 배우다. TBS 대형시대극 스페셜 오다 노부나가에서 젊은 날의 이에야스 역을 맡은 적이 있다. [22] 사나다 히로유키는 이로하히메를 맡은 사와구치 야스코와는 1993년 NHK 대하드라마 태평기에서도 부부(아시카가 다카우지 - 아카하시 토코)로 분했다. [23] 극중에서 요시히메가 이걸 두고 "그대들이 다테 가와 메고히메 님 사이에 있으니 어찌 가까워질 수가 있겠는가. 그리도 그대들이 메고히메 님을 감싸고 돌고 있으니 마치 다테 가 안에 타무라 가가 동떨어져 있는 모양새가 아니던가"라고 직접적으로 꾸짖는다. [24] 마사무네의 아명 [25] 본인 항목에도 설명된 일화로, 하도 위험인물로 간주되다 보니 식사를 대접했을 때 음식에 독을 넣은 게 아니냐는 의심에 내가 반란을 일으키면 일으켰지 독을 왜 넣겠냐는 엽기적인 대답으로 주변을 기겁하게 했다는 일화. [26] 여기서 '정성을 담은 식사'가 바로 독을 담은 식사(...)를 말하는 것인데, 극중에서 마사무네 본인이 독살당할 뻔하는 시점까지만 해도 심각한 소재였던 것이 그놈의 독살 개그 때문에 다테 가문의 식사 자체가 개그소재가 되어버린 것(...). [27] 센다이는 1989년 4월 1일에 정령지정도시가 되었다. [28] 태평양 전쟁 당시 파괴된 마사무네의 영묘 즈이호우덴(瑞鳳殿) 복원, 센다이 아오바 마츠리 재개, 센다이 시 박물관 신축 등. [29] 한국에서도 드라마 하나가 히트하면 지자체마다 드라마 촬영 유치에 힘쓰고, 드라마 효과에 의한 관광 수입을 기대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세트장을 건설했다가 결국 관리 부실 등의 문제로 예산 낭비라는 비판에 시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30] 특히 토호쿠 이외의 지역에서 오는 관광객들일 수록 야마가타로 오는 데 불편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31] 물론 다테 마사무네가 주역인 만큼 모가미 요시아키가 모가미 가문의 대외적인 정책을 결정하는 부분에서만 등장하기 때문에 모략가로서의 면모가 부각되고 영민이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장면이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분량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조연이 너무 부각되는 것도 곤란하니까. 대신 간간이 나오는 인간적인 장면도 꽤 되는 편. 예를 들면 둘째 아들을 잃고 쫓겨나 반쯤 실성한 자기 여동생을 평생 보살펴 주겠노라고 다짐하는 장면이라든지. 어디까지나 주인공 마사무네의 입장에서 보자면 요시아키는 악역이 맞다. [32] 모가미 요시아키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도요토미는 비록 최고 권력자의 위치기는 했지만 근본은 가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듣보잡이나 다름없는 천한 출신이었던 반면, 모가미 가는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일문으로 유서 깊은 명문 중의 명문가였으니 요시아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굴욕이 없는 셈. 게다가 이 당시 코마히메는 고작 10살 남짓 된 어린아이였다.